그날 파리와 서울은 닮은 듯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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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적인 사회라면 차마 꺼낼 수 없는 망언들이 곳곳에서 거침없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쯤 되면 거의 국민들에 대한 정신적 테러 수준이다. 역사를 돌이키려는 역주행은 이렇듯 광기의 모습을 띠고 있다.

그날 파리와 서울의 모습은 아주 많이 닮았다. 도시는 아수라장이었다. 마치 한바탕 전쟁을 치른 듯했다. 길바닥엔 사람들이 쓰러져 나뒹굴었고 구급차가 요란한 사이렌을 울리며 황급히 도로를 내달렸다. 경찰은 길목 곳곳을 장악하고 물 샐 틈 없는 검문검색을 실시했다. 도를 넘은 폭력에 시민들은 분노하다 못해 치를 떨었다. 민주주의와 인권의 가치는 심각한 도전과 치명적 위협에 직면한 듯했다. 그리고 정부는 끝까지 배후세력을 추적해 응징하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밝혔다. 그날 파리와 서울은 그렇게 꽤나 많이 닮아 보였다.

그날 파리와 서울의 모습은 아주 많이 달랐다. 파리에선 IS가 시민들을 테러했고, 서울에선 정부가 국민들을 테러했다. 파리는 총격에 피를 흘렸고, 서울은 캡사이신 물대포에 눈물을 흘렸다. 파리는 쓰러진 사람에게 응급조치를 취했고, 서울은 쓰러진 사람에게 또 물대포를 쏘았다. 파리의 경찰은 시민들을 안전하게 대피시켰고, 서울의 경찰은 시민들의 귀갓길까지 가로막았다. 파리의 방송은 위로와 위안으로 서로의 상처를 보듬으며 하나가 되도록 힘썼고, 서울의 방송은 늘 그랬듯이 격앙된 표정의 시사 만담가들이 격한 막말로 언성을 높이며 분열과 대립의 목소리를 내지르는 일에 하나가 되었다. 세계는 파리를 위해 애도했고, 또 세계는 서울을 향해서는 그냥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날 파리와 서울은 그렇게 꽤나 많이 달라 보였다.

11월 13일 밤, 동시다발 테러가 벌어진 프랑스 파리의 한 카페 인근에 피격당한 한 남자가 누워 있다. / AFP연합

11월 13일 밤, 동시다발 테러가 벌어진 프랑스 파리의 한 카페 인근에 피격당한 한 남자가 누워 있다. / AFP연합

국가공권력에 의한 대국민 테러
파리와 서울의 대조적인 모습은 지금 우리의 국가가 어떤 의미로 존재하고 있는지 다시금 생각하게 만든다. 박근혜 대통령은 과거 야당 대표 시절 “국가가 국민을 보호하지 못하면 그것은 국가가 아니다”라며 김선일씨 피랍 사건에 대한 노무현 정부의 대응을 호되게 비판한 바 있다. 정상적인 혼을 가진 정치인이라면 마땅히 해야 할 옳은 말이었다. 심지어 대통령이 된 이후에도 세월호와 메르스 사태에 여전히 국민을 보호하지 못한 정부를 향해 호되게 질책하는 참으로 일관된 모습을 보여주었다. 물론 이번엔 혼이 비정상인 국가지도자만이 할 수 있는 기이한 태도라는 점이 다르긴 했다.

파리에서 테러가 벌어지던 날 G20 정상회의에 참석 중이던 박근혜 대통령은 “테러는 반문명적이고 반인륜적인 범죄행위로서 어떠한 경우에도 정당화될 수 없고 용납되어서도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 역시 정말 옳은 말이다. 그리고 이 말은 국민을 보호하기는커녕 오히려 길바닥에 의식을 잃고 쓰러진 국민에게 캡사이신 물대포를 쏴대는 국가 공권력의 테러에 대해서도 유효하다.
다만 그 국가 공권력의 수장이 바로 이 옳은 말을 한 대통령 본인이며, 이 말을 한 날이 하필이면 국가 공권력에 의한 대국민 테러가 자행된 바로 그 날이었다는 사실이 그저 혼란스러운 따름이다. 대통령 특유의 유체이탈 화법은 국제무대에서도 여전했다. 아마도 “국가가 국민을 보호하지 못하면 그것은 국가가 아니다”라는 야당 대표 시절의 대통령 발언은 이제 이렇게 수정된 모양이다. “국가가 대통령을 보호하지 못하면 그것은 국가가 아니다”라고.

돌이켜보면 진작부터 우리 국가의 역할은 그렇게 바뀌어 있었다. 방미 중 성추행으로 물의를 빚었던 청와대 대변인은 국민이 아니라 대통령에게 사과를 하고 자리에서 물러났다. 세월호 사건 때 국민을 구조하는 데 더 없이 무능했던 국가는 성난 유가족들로부터 대통령을 보호하는 일에는 더할 나위 없이 유능함을 발휘했다. 메르스 사태 때 청와대가 제일 먼저 했던 조치는 대통령의 건강 보호를 위한 열감지기 설치였다. 대통령이 말하는 진실한 사람이란 대통령을 배신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의미로 이해되었다. 대통령의 정치적 판단이 곧 윤리의 가치 척도로까지 격상된 것이다. 게다가 이제는 대통령의 가족사를 보호하기 위해 그 많은 반대여론 따위는 가볍게 무시하고 역사교과서 국정화라는 무리수까지 강행하고 있다. 대통령의 역사인식이 곧 역사교육의 목표가 되어버린 셈이다. 이제 국민을 위한 국가는 여기에 없다. 오직 대통령을 위한 국가만 있을 뿐이다.

11월 14일, 서울에서 열린 민중대회에 참석했던 농민 백남기씨가 경찰의 물대포를 맞고 쓰러져 있다. / 공무원U신문

11월 14일, 서울에서 열린 민중대회에 참석했던 농민 백남기씨가 경찰의 물대포를 맞고 쓰러져 있다. / 공무원U신문

이권을 누리고 싶은 무분별한 준동
돌이켜보면 예전에도 대통령을 위한 국가였던 시절이 있었다. 대통령이 작사했다는 행진곡 풍의 노래가 매일 아침마다 온 나라 구석구석 울려 퍼지던 그런 시절이었다. 대통령의 하루 일정이 항상 방송 뉴스의 헤드라인을 장식하고, 극장에서 영화를 보기 전에도 대통령의 주간 일정을 먼저 관람해야 했던 그런 시절이었다. 금메달을 딴 선수는 자신의 승리와 영광에 대해 항상 대통령께 먼저 감사를 드려야 했던 그런 시절이었다. 그때 대통령 경호실은 대통령의 심기까지 경호한다며 설레발을 쳤지만 정작 위기상황에서 경호실장이 대통령을 내팽개치고 혼자 화장실로 도망쳤던 그런 어이없는 시절이었다.

그런 시절을 종식시키기 위해 오랜 시간 많은 희생을 치르며 힘겹게 여기까지 왔다. 그런데 세상은 다시 빠른 속도로 그 시절을 향해 역주행하고 있다. 이런 역주행이 오로지 대통령 한 사람의 의지만으로 가능한 일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구체제를 그리워하는 사람들, 구체제를 통해 알량한 이권을 누리고 싶은 사람들의 무분별한 준동이 점점 극단적으로 치닫고 있다.

그 사이 벌써 위수령 발동 주장이 여과 없이 방송 전파를 탔다. 민주화 이후 금기시되어 왔던 군의 정치 개입 발언이 버젓이 방송에 나온 것이다. 또 명색이 국민의 대표라며 국회의원 배지를 가슴에 달고 있는 어떤 자는 미국에서는 경찰이 총을 쏴 시민을 죽여도 정당성이 인정된다는 말까지 서슴없이 입에 올렸다. 정상적인 사회라면 차마 꺼낼 수 없는 망언들이 이렇게 곳곳에서 거침없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쯤 되면 거의 국민들에 대한 정신적 테러 수준이다. 역사를 돌이키려는 역주행은 이렇듯 광기의 모습을 띠고 있다.

다시 파리를 떠올려 본다. 이번엔 테러에 무고한 시민이 피 흘리던 2015년 11월의 파리가 아니라 절대군주로 군림하던 루이 16세를 몰아내고 시민 혁명을 이뤄낸 1789년 7월의 찬란했던 파리이다. 그날의 파리는 1960년 4월의 서울, 그리고 1987년 6월의 서울과 닮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날의 파리가 이후 나폴레옹의 쿠데타와 군주제로의 복귀라는 오랜 좌절과 혼란의 시간을 견뎌내고 마침내 오늘에 이르렀듯이, 민주화 이후의 한국도 어쩌면 지금 그런 과도기의 시간을 겪고 있는 중일지도 모르겠다. 2015년 11월의 파리와 서울은 닮은 듯 많이 달랐지만 긴 역사의 관점에서 보면 다른 듯 닮아가고 있다고 이해한다면 그래도 조금은 위로가 되지 않을까?

<민경배(경희사이버대학교 모바일융합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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