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극 1세대 작가 임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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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창 신재효와 진채선 한류드라마로 만들고 있어요”

우리나라 사극 1세대 작가인 임충씨(77)가 전북 고창을 대표하는 국악과 판소리의 거장 동리 신재효와 최초의 여류명창 진채선 등 조선후기 고창 소리꾼들의 이야기를 그린 드라마 <너는 내 기쁨이라(가제)>를 집필 중이다. 이제는 고유명사가 된 <전설의 고향>의 대표작가로 <하늘아 하늘아> <대왕의 길> <장희빈> 등 선 굵은 사극 드라마를 다수 집필했던 임충 작가는 <주몽> <선덕여왕> 등 격조 높은 사극을 제작해온 ‘푸른여름스토리연구소’(김태원 대표)와 손잡고 <대장금>을 능가하는 한류 드라마의 탄생을 기대하고 있다. 평생 사극을 통해 한국 역사를 공부하고 대중들에게 소개해온 그를 만나 역사를 제대로 공부하는 법, 그리고 최근 논란이 되는 국정 역사교과서 문제에 대해서도 물어봤다.

[유인경이 만난 사람]사극 1세대 작가 임충

대부분의 작품들이 다 사극입니다. 특별히 사극에 경도하는 이유가 있습니까.
“저는 1960년대 신상옥 감독이 운영하는 ‘신필름’에서 연출부 수련생으로 일을 시작했습니다. 병역을 마치느라 이틀 늦게 지원서류를 냈더니 소품의상실로 발령을 내더군요. 출연자 수십여명, 엑스트라 수백여명의 옷들과 소품을 챙기는 것은 정말 중노동이었어요. 사극의 경우엔 옷도 종류가 계급별로 다양하고, 또 소품은 어찌나 많은지…. 어린 마음이었지만 신상옥 감독이 사극을 만들면서 스토리보다는 커스튬플레이, 즉 화려한 고전의상과 배경 등에만 신경을 쓴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같은 사극이라도 좀 더 시대와 인물을 깊게 파고드는 작품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하지만 당시에 신 감독은 우상이나 종교지도자 같은 존재여서 감히 제 생각을 말씀드릴 엄두를 못 내 현대극의 시나리오만 썼습니다. 그래도 자연스럽게 사극에 대한 공부를 많이 했고, 외국에 우리 영화를 알리고 해외에 주목 받을 수 있는 무기도 우리의 것이어야 한다는 인식을 하게 됐죠. 이번에 준비 중인 작품도 명창 신재효 선생과 한국 최초의 여류명창 진채선 선생의 일생을 판소리로 그릴 예정인데, 새로운 한류 드라마가 될 것으로 기대합니다. 아이돌 스타나 싸이의 흥겨운 음악만이 아니라 우리의 정서와 한이 담긴 판소리의 매력도 충분히 세계인이 공감하리라고 믿습니다. 내년에 방영할 예정이어서 지금 부지런히 일하고 있습니다.”

현대물은 작가의 상상력에 의존하고, 또 요즘은 외국 작품을 사 와서 쉽게 리메이크하기도 합니다만, 사극은 무엇보다 역사 공부가 중요할 텐데요. 전공도 아닌데 역사 공부는 어떻게 했습니까.
“그저 닥치는 대로 책을 읽고 사료를 찾는 작업을 해야 합니다. 요즘은 역사에 관한 논문이나 역사서적이 참 많이 있지만 당시엔 참 척박한 상황이었어요. 지금은 보조작가들을 시켜 인터넷이나 도서관을 뒤져 각 인물에 대한 자료를 섭렵할 수 있는데, 전 그저 혼자 고독한 공부를 해 왔습니다. 그러나 혼자만의 시간이 도움이 되기도 했어요. 폭넓은 역사 공부를 하고, 다른 아이디어들도 얻었죠. 역사책을 읽다 보면 인물 하나하나가 제게 말을 걸어오는 듯한 느낌이 들 때가 있습니다. 드라마는 논문이나 역사책이 아니어서 재미있게 써야 하지만 사극 작가는 재미보다 어떤 이야기, 어떤 시대 정신을 그려야 할까라는 고뇌를 하고 철학을 갖고 있어야 합니다. 고증도 무척 중요합니다. 건축양식이나 복식이나 소품만이 아니라 그 인물에 대한 정확한 분석도 고증인 셈이죠.”

수많은 책 가운데 가장 영향을 끼친 책은 무엇인가요.
“제게 가장 소중한 책은 <한중록>입니다. 사도세자의 부인이자 정조의 생모인 혜경궁 홍씨가 남긴 글인데, 홍씨가 회갑을 맞던 해인 1795년(정조 19년)에 친정 조카 홍수영의 소청으로 이 글을 쓰기 시작했답니다. 네 번에 걸쳐 쓴 네 편의 글인데, 이 중 회갑 때 쓴 첫째 것이 비교적 한가로운 심정에서 붓을 든 것이고, 나머지 3편은 모두 아들인 정조가 승하한 직후부터 붓을 일으켜 어린 왕 순조에게 보이기 위해 쓴 것으로, 다분히 정치적 목적이 농후한 작품이라 할 수 있죠. 남편인 사도세자가 부왕인 영조에 의해 뒤주에 갇혀 죽은 참변을 주로 하여 당시 궁중의 온갖 사연들과 복잡미묘한 사건들의 소용돌이 속에서 칼날을 밟으며 살아온 것 같은 일생사를 순한글의 유려한 문장으로 묘사한 파란만장한 일대기입니다. 이 글을 읽으면 각 인물들의 심리와 성격묘사가 너무 탁월해서 영조, 사도세자 부자가 왜 파국을 맞았는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드라마란 결국 인간 탐구인데, 한중록을 읽은 후에 저는 역사책에서 인물의 성격을 더 열심히 관찰하고 해석하려고 했습니다.“

그저 책만 읽는다고 역사 공부가 되는 것은 아닐 텐데요.
“그럼요. 가끔 학생들에게 이런 질문을 던집니다. ‘만약에 자네가 타임머신을 타고 옛 시절로 돌아간다면 어떻게 할까?’ 그곳에서 잘 적응하려면 그 시절을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풍물과 풍속, 환경, 인심과 민심 등의 자료를 충분히 섭렵해서 제 것으로 만들면 어느 곳에 내버려져도 생존할 수 있습니다. 어느 거리에 무엇이 있고, 누가 중요한 사람이며, 사람들의 환심을 사려면 무엇이 필요한지를 알 수 있으니까요. 제대로 된 역사 공부가 그래서 필요한 것입니다.”

하지만 역사책의 집필자건 사극 드라마 작가이건, 작가의 해석에 따라 역사나 역사적 인물도 왜곡될 수 있지 않을까요. 장희빈의 경우 요부나 악녀의 대명사로 되어 있지만 어떤 작품에서는 사랑에 목숨 거는 순정녀로 묘사되어 있기도 합니다.
“제가 <전설의 고향>을 150여편 쓰다가 처음으로 도전한 대하드라마가 <장희빈>입니다. 당시 이미숙·유인촌 주연으로 엄청난 시청률을 자랑했죠. 각종 자료를 읽고 제가 해석한 장희빈은 귀여운 여자입니다. 장희빈과 숙종은 첫사랑의 연인입니다. 하지만 당시 정치적 반대세력 때문에 천하의 악녀로 알려졌고, 당시 가치관으로서는 너무 개성이 강한 성격이라 패악질을 하는 여자로 판단되었을 겁니다. 저는 사랑하고 사랑받기를 갈구하는 장희빈에게 무한한 애정이 있었는데, 제 애정이 커질수록 시청자들은 장희빈을 미워하더군요. <연려실기술>의 기록에 따르면 왕이 들어와도 본체만체해서 왕이 화를 내니 밥상을 뒤엎었다든지, 사약을 받을 때도 강하게 도리질을 치며 거부해서 숙종이 ‘한 사발 더 부어라’라고 지시한 것으로 나와 있습니다. 그런데 남편에게 배신당하고, 정치적 음모의 희생양이 된 장희빈이 사약을 보약 먹듯 꿀떡 들이키겠습니까. 어찌 보면 시대의 희생양이죠.”

최근에 영화 <사도>가 흥행에도 성공하고 화제가 되었습니다. 어느 분이 영화 <사도>와 임 작가의 <하늘아 하늘아>를 비교하며 두 부자의 갈등은 임 작가의 작품이 훨씬 설득력이 있다는 글을 썼더군요. 그 작품 외에도 유난히 영조와 사도세자를 다룬 작품을 많이 쓰셨는데, 왜 편애에 가깝게 그 부자 이야기를 하는지요.
“영국의 세계적 문호 셰익스피어가 한국에서 태어났다면 제일 먼저 다룰 소재가 영조와 사도제사일 겁니다. 그만큼 드라마틱하고 당시 왕실사, 정치의 암투, 부자 간의 갈등 등을 고루 포함했기 때문입니다. 왕비가 아닌 무수리에게서 태어나 출생의 열등감을 가진 영조는 41세에 늦둥이로 사도세자를 얻습니다. 얼마나 귀하고 사랑스러웠겠습니까. 그래서 태어나자마자 원자로 택봉하고, 가장 존귀하게 정통성을 갖춘 왕자로 만들기 위해 다른 궁에서 보모상궁들을 동원해서 키웠습니다. 생모조차도 영재교육을 위해 떨어져 지냈지요. 그러나 사도세자를 양육했던 상궁들, 측근들이 끝없이 부자 갈등을 유도하는 교육으로 세뇌를 시켰고, 아버지는 학문에 치중하는 모범생을 원했지만 아들은 그림과 무예 등에 관심이 많아 상충하는 면이 많았습니다. 몇 년 전부터 저는 사도세자가 7일간 뒤주에 갇혀 있는 상황으로 50부작 드라마를 쓰려고 구상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미 나이든 작가여서 아는 연출자도 드물고, 또 제가 작품활동을 활발히 할 당시 조연출인 사람이 이제 국장, 이사가 되었더군요. 나이든 제가 얼마나 불편할까 싶어 혼자 구상만 하고 있었는데 영화가 나왔더군요. 저는 정치적 상황을 빼고 진정한 왕실의 비극, 인간드라마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수백년 전 이야기이지만 지금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거든요. 우리의 왕실은 중국에 비해 규모는 작지만 참 아기자기하고 예쁘고 맛있습니다. 그 아름다운 모습을 현대인들에게 보여주고 싶어요.”

[유인경이 만난 사람]사극 1세대 작가 임충

왕실의 옷이나 소품은 아름다웠을지 모르지만, 왕실의 언행도 그랬을까요. 지금도 친박·비박, 친노·비노로 각 당에서도 분열상이 보이지만 과거에도 움모와 모략, 당파 싸움이 끊이지 않았더군요.
“제가 80여년 가까이 살고 역사를 공부하면서 느낀 것은 다른 것은 다 발전하는데 인간 그 자체는 발전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병을 낫게 하는 약이 나왔고 의술은 발달했지만, 인간의 몸은 수천년 전 그대로가 아닙니까. 특히나 인간의 오욕칠정은 하나도 안 변한 것 같습니다. 저는 다산 정약용 선생을 무척 존경하는데, 그분 이후로 그렇게 훌륭한 학자는 나온 적이 없습니다. 제 아들이 드라마 <정도전>에서 정몽주 역할을 맡았지만 그 같은 충신을 찾기도 힘들죠. 또 레오나르도 다빈치, 공자 등을 능가하는 인물도 안 나오지 않습니까. 욕망과 욕심에 눈이 어두워지는 것은 과거나 지금이나 다 비슷비슷합니다. 조선시대는 조금만 잘못해도 3족을 멸하는 시대이니 얼마나 더 자신의 것을 지키려 애썼겠습니까. 교육과 학습으로 인간성이 개조된다면 왜 지금까지 지구 곳곳에서 전쟁이 일어나고, 그렇게 많은 이들이 교도소에 가고 망신을 당하는데도 부정부패가 사라지지 않을까요. 인간 본성은 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다만 당부드리고 싶은 것은 사극은 인생을 공부하는 것인데도 자칫 역사교과서로 착각하는 이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정도전이란 드라마가 인기이면 갑자기 정도전과 관련된 책이 잘 팔리고, 드라마에서 배우가 표현한 성격을 그 인물의 참모습으로 착각하는 분들이 많은데, 그것 역시 한국인들의 왜곡된 학구열 탓입니다.”

역사교과서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국정 교과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저는 역사학자는 아니지만 한국 역사를 공부하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균형잡힌 시각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마도 지금 문제가 되는 것은 현대사 부분일 텐데요. 어느 것이 옳고 어느 것이 그르냐 등 흑백논리로 보는 것은 위험합니다. 객관적이고도 보편타당한 자료를 바탕으로 편향되지 않게 기술하는 것이 정말 중요합니다. 저는 1938년생으로 초등학교 1학년을 마칠 무렵에 해방을 맞았습니다. 독립만세를 외치는 의미조차 잘 몰랐죠. 빨치산이 처형당하는 모습도 목격했고, 한국전쟁 때는 인공치하에서 그들이 노래하며 행군하는 장면도 봤습니다. 만약 휴전선이 대동강, 청천강 부근에서 그어졌다면 어떤 상황이 되었을까요. 당시 살고 있던 지역 때문에 그토록 많은 이들의 운명이 달라진 것이 참 아이러니했습니다. 제가 한창 사극을 쓸 때 재야사학자들이 소장하던 사료들을 갖고 왔습니다. 같은 사건인데도 참 다른 시각으로 분석하고 해석한 자료들이 많더군요. 한 인물, 한 사건, 한 시대를 보는 시각이 이렇게 관점이 다양한데…. 국정 교과서가 아니라도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이들은 자신의 생각이나 정치적 입장을 강조하기보다 정말 우리 후손들의 의식에 엄청난 영향을 끼친다는 사명과 소명감을 갖기 바랍니다.”

임충씨를 인터뷰하기 위해 자료를 찾다 보니 그 어느 곳에도 언론과 인터뷰한 기록이 없다. 작가는 작품으로만 말한다는 소신 때문에 기록을 찾는 사극 작가이면서도 정작 자신은 기록을 남기지 않았다. 그는 30년 가까이 그를 고통스럽게 한 눈병에도 불구하고 다시 각종 사료를 찾아 읽고, 왕이건 명창 신재효 선생이건 왕릉이나 무덤, 고향을 찾아 그들과 영혼의 대화를 나눈다고 했다. 국정 교과서를 집필할 이들도 이런 정성은 가져야 하지 않을까….

<글·유인경 경향신문 선임기자 alice@kyunghyang.com
사진·이상훈 선임기자 dool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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