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듯 친숙한 전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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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랑계의 불황은 2008년을 넘어서며 해마다 정점을 경신하고 있다. 전반적 경기 침체에도 불구하고 전년 대비 26% 이상 성장하고 있는 서구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실제로 한때 화랑계의 중심으로 통했던 청담동 일대 풍경은 을씨년스럽다. 문화 1번지로까지 각광 받던 인사동 역시 지금은 고만고만한 대관화랑들만 간간이 미동할 뿐, 불황타개라는 공동의 목표 앞에선 이렇다 할 좌표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몇몇 대형 갤러리들의 움직임이 눈에 띄지만 대개 ‘과거를 불러와 억지로 현재에 수혈하는 꼴’이기 일쑤다. 즉, 실험적이고 패기 넘치는 신진작가보다 2012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장에 깔리기 시작한 단색조회화나 원로들이 주축이 된 추상회화의 무한반복에 그치는 경우가 다반사다. 특히 신선한 작품들은 드문 대신 지나치게 대중적 취향에 읍소하는 작품들이 주를 이루는 데다, 불안정한 국내 미술품 유통구조와 신뢰도 상실 등도 미술시장 활성화에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

썩 좋지 못한 대외상황도 위기 탈출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현재 한국미술시장은 ‘아트바젤 홍콩’과 같은 주변국의 공격적인 마케팅과 조직력에 맥을 못 추고 있다. 한국화랑협회가 주관하는 국내 최대의 미술품 장터인 한국국제아트페어(KIAF)는 나이만 먹었을 뿐 적수가 못된다는 게 중론이다. 강력한 경쟁 행사 전략은 거의 없다시피 한 게 원인이다.

디황, 371a-23. 캔버스에 유채

디황, 371a-23. 캔버스에 유채

이와 관련해 미술계 일각에선 발전적 계획 없이 연속되는 퇴행성 전시 재탕 탓에 국내 미술시장이 더욱 쪼그라들고 있다며 우려하고 있다. 화랑들이 장사에 치우친 나머지 사업가로서 역할은 미미하다며, 업계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작가와 컬렉터들에 대한 신뢰회복과 거래 투명성 확보를 지적하고 있다. 일종의 ‘성찰론’이 대두되고 있는 셈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침체의 늪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는 시장과 달리 한편에선 미술사적 가치에 방점을 둔 옹골진 전시들이 꾸려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한국현대미술의 현주소를 확인할 수 있는 ‘더 브릴리언트 아트프로젝트 시즌3’전(10월 11일까지 서울미술관)을 비롯해, 페미니즘 시각에서 바라보는 동아시아 여성 미술의 현재와 그 의미를 살펴보는 ‘동아시아 페미니즘: 판타시아’전(11월 8일까지 서울시립미술관), 알찬 기획으로 인정 받아 온 현대차 시리즈 두 번째 행사 ‘안규철-안 보이는 사랑의 나라’전(내년 2월 14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등의 대형전시가 줄줄이 이어지며 관람객을 모으고 있다.

실력 있는 작가들의 개인전도 눈길을 끈다. 강남의 칼리파갤러리는 최근 깊은 철학성으로 주목 받고 있는 디황(D-Hwang) 작가의 전시회를 11월 18일부터 12월 10일까지 개최한다. 또한 스와로브스키 크리스털을 이용한 작품으로 독창적 조형언어를 구축한 김종숙 작가의 작품전이 10월 1일부터 한 달간 온유갤러리에서 열린다. 이 가운데 성북동 ‘스페이스 캔’과 문화공간 ‘오래된 집’에서 10월 26일부터 11월 5일까지 동시에 열리는 박승예 작가의 전시는 탄탄한 작품성으로 벌써부터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고 있다.

이밖에도 젊은 기획자들을 중심으로 다양한 기획들이 한창이다. 모두 낯선 듯 친숙한, 익숙한 듯 생경한 전시라는 공통분모를 안고 있을 뿐만 아니라, 비평적 관점의 생성은 물론 담론 형성의 가능성 등을 공유한다는 점에서 기대치가 높다. 특히 일부 전시들은 정신에 앞선 물질, 사유에 우선한 자본의 무게에 짓눌려 있는 우리에게 다시 한번 예술의 본질을 되물어 그 의미 또한 남다르다.

<홍경한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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