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 박물관이 들려주는 세 줄기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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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 박물관을 설계한 건축가 리베스킨트는 시공간을 해체하려는 의도를 통해, 연속적으로 이어지는 수직적 동선 안에서 비극적인 과거와 반성하는 현재, 그리고 좀 더 나은 미래를 동시에 보여주려고 했습니다.

나치에 의한 유대인 학살을 가리키는 말 홀로코스트(Holocaust).

홀로코스트를 떠올리면, 머릿속 스크린에는 이미 로베르토 베니니 감독의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1997)의 장면들이 흘러가기 시작합니다. 더불어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주인공 귀도가 아내를 위해 틀었던 오펜바흐의 오페라 <호프만의 이야기> 중 <뱃노래>도 들리는 듯합니다. 남편 귀도를 생각하며 음악이 들려오는 수용소 창가에 다가서던, 도라의 눈물 고인 큰 눈망울이 내 눈을 마주보는 것만 같습니다. 당신은 로만 폴란스키의 <피아니스트>, 스티븐 스필버그의 <쉰들러 리스트>가 떠오를지도 모르겠습니다.

베를린 유대인 대학살 추모공원(비석의 들판)

베를린 유대인 대학살 추모공원(비석의 들판)

‘다비드의 별’ 형상화한 박물관
홀로코스트. 프리모 레비의 <이것이 인간인가>, 2002년에 노벨문학상을 받았던 임레 케르테스의 <운명>, <안네의 일기>, 아트 슈피겔만의 만화 <쥐>,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읽은 기억을 되살려보는 당신도 있겠지요. 지난 몇년간, 마음만 먹으면 닿을 수 있는 홀로코스트의 흔적을 애써 피해 다녔습니다. 홀로코스트의 기억을 따라 걷기로 마음을 먹은 후, 다큐멘터리 <크라임 스토리>를 봤습니다. 16년에 걸쳐서 홀로코스트의 주범 아돌프 아이히만(Karl Adolf Eichmann)을 추적하고 법정에 세우는 과정을 그린 영화를 보고 나니, 이제 더 이상은 피해갈 수 없게 됐습니다.

유대인 박물관부터 찾아가 봅시다. 유대인 박물관을 설계한 건축가 다니엘 리베스킨트(Daniel Libeskind)와 함께 걷습니다. 그는 1946년, 아우슈비츠 포로수용소 인근에서 태어난 유대인입니다. 미국으로 이민을 가며 폴란드를 떠났지만, 그에게 홀로코스트는 선천적 아픔으로 마음에 뿌리내린 곳이었기에, 리베스킨트의 작품에는 학살당한 유대인들을 추모하는 메시지가 녹아 있는 것이 많습니다. 그는 역사와 건축이론을 함께 공부했습니다. 잊어서는 안 되는 과거를 현재의 시간과 대등하게 놓고, 미래를 고민하게 하는 것이 그의 건축철학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연속의 계단

연속의 계단

감상자가 몸과 마음으로 홀로코스트를 기억할 수 있도록 설계된 것이 다수인데, 베를린 유대인 박물관이 그의 대표적인 작품입니다. 실험성이 강한 건축물을 주로 설계했기 때문에 리베스킨트의 설계도가 유대인 박물관 디자인 국제현상공모전에 당선되었을 때 많은 이들이 걱정과 불만을 나타냈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건축철학을 가장 잘 표현한 이 건축물로 세계적인 건축가로 인정받게 됐습니다.

참혹한 고통 속에 내던져진 유대인들의 정서를 표현하는 것이 리베스킨트의 목적이었다고 합니다. 건물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유대인의 감정에 동화되는 체험을 할 수 있는 박물관이 되길 바란 거죠. 건축물을 통해서 감정을 전달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에요. 건물을 지을 때 콘크리트와 철근, 유리와 대리석과 같은 재료를 사용하지만 짓는 사람의 철학과 역사의식이 반영돼야 하는, 설계도라기보다 잘 짜여진 시나리오가 필요한 건축물이 바로 박물관입니다. 그는 건물의 기능에만 집착하지 않고 도덕성을 살려내려고 애썼습니다.

선과 선 사이

선과 선 사이

전시공간으로 안내하는 ‘연속의 계단’
베를린 유대인 박물관을 높은 건물에서 내려다보면, 유대인을 상징하는 ‘다비드의 별’의 형상이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날카로운 선이 아홉 번 굽이치는 형태로 나타납니다. 만든 별의 형상은 찌그러진 다비드의 별과 같다고 할까요? 금속으로 만든 외벽 패널은 날카로운 송곳으로 마구 찢어놓은 듯합니다. 유대인 학살에 대한 분노를 표출한 것 같기도 하고, 몸도 마음도 참혹하게 찢겨진 유대인들의 심정을 표현한 것 같기도 합니다.

지금부터 우리는 각기 다른 이야기를 들려줄 세 줄기의 길을 따라 걷게 될 것입니다. 먼저 ‘연속의 계단’으로 내려갑시다. 역사는 연속되는 것이듯, 우리는 홀로코스트의 흔적을 따라 걸으며 그들을 기억해야 합니다. 두 번째 길은 베를린을 떠나야만 했던 유대인들을 추모하는 ‘호프만 가든’으로 이어집니다. 마지막에는 막다른 길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대학살을 상징하는 ‘홀로코스트 타워’로 들어서는 거지요. 이 길을 걸으며 학살당한 유대인을 추모하는 것이 오늘의 시나리오입니다. 각자가 느끼는 감정은 시나리오가 의도한 것과 같을 수 없겠지만, 잠시나마 공감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추방의 정원

추방의 정원

리베스킨트는 출입구를 지하에 숨겼습니다. 건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바로 옆에 있는 바로크 양식의 옛 박물관 건물로 들어간 뒤 지하에 있는 통로를 이용해야 합니다. 자 이제 ‘연속의 계단’으로 내려오세요. 이 계단은 전시공간으로 연결됩니다. 리베스킨트는 시공간을 해체하려는 의도로 연속적으로 이어지는 수직적 동선 안에서 비극적인 과거와 반성하는 현재, 그리고 좀 더 나은 미래를 동시에 보여주려고 했습니다. 전시공간에는 유대인들의 유물이 전시돼 있습니다.

공백의 기억

공백의 기억

미로와 같은 동선, 유대인 처한 상황
‘연속의 계단’으로 내려가 전시공간을 따라 걷는 동안 길을 잃었습니다. 미로와 같이 복잡한 동선은, 걷는 이들의 마음까지 혼란스럽게 만들며 유대인이 처했던 상황을 체험하게 합니다. 비스듬한 오르막길입니다. 긴장과 불안을 조성하는 조명과 무채색 내벽, 습한 내부 공기는 유대인들의 불안한 심리를 표현하기 위한 장치인 것 같습니다. 이 길의 이름은 ‘선과 선 사이’(between the lines)입니다. 두 개의 복도는 지하에서 교차합니다. 이 복도는 독일에서 추방된 유대인들의 이민 경로를 상징한다고 해요.

복도의 끝에서 만난 대형 유리문은 ‘추방의 정원’(Garden of Exile)으로 우리를 인도합니다. 가로 1.5m, 세로 7m가량의 49개의 기둥이 서 있고, 이 곳 또한 바닥이 12도가량 기울어져 있습니다. 경사진 바닥에 기울 듯 서 있는 기둥 사이를 걸어 보십시오. 망명 도중에 죽어간 유대인들의 묘비를 연상하며 만들었다는 추방의 정원에서는 기둥 사이를 거닐며, 미로 같은 길 사이를 떠도는 추방당한 자들의 심정에 젖어 보십시오. 그리고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세요. 도토리나무가 자라고 있습니다. 도토리나무 덤불이 뜨거운 해를 가려줍니다. 추방당한 자들의 마음에 잠시나마 위안을 주고 싶은 마음이 아닐까요?

홀로코스트 타워 ‘공백의 기억’

홀로코스트 타워 ‘공백의 기억’

추방의 정원을 나오면 세 번째 길을 따라 ‘홀로코스트 타워’로 들어가게 됩니다. 학살당한 사람들이 지녔던 물건들이 전시된 길을 따라 걸으면 복도 끝에 거대한 철문이 있습니다. 그 문을 열고 들어가면 그 곳이 바로 홀로코스트 타워입니다. 쿵, 문이 닫히는 순간, 사방이 막힌 어두운 공간 속에 갇히게 됩니다. 어둡고 적막한 이곳에 천장 작은 틈 사이로 빛이 새어 들어옵니다. 어둠 속에도 희망은 있다는 메시지가 아닐까, 잠시 어둠 속에서 생각했습니다.

바닥에는 이스라엘 현대미술가인 메나쉐 카디쉬만(Menashe Kadisgman)의 작품이 있습니다. 이 작품은 눈이 아닌 귀로 먼저 만나게 됩니다. 입을 벌린 사람 얼굴 형상의 원형 강철 덩어리들은 단 하나도 같은 모양이 없습니다. 관람객들이 밟고 지나갈 때마다 비명 같은 차가운 울음소리가 들립니다. 관람객들이 그 얼굴들을 밟으며 걸을 때마다, 얼굴들은 각기 다른 소리로 울음을 웁니다. 소리는 높은 천장에 부딪혀 점점 더 커집니다. 앞을 향해 걸을수록 줄어드는 빛, 커지는 비명소리. 처절한 리얼리티를 청각으로 경험하게 하는 이 공간의 이름은 ‘공백의 기억(Memory of Void)’입니다.

유대인 박물관 전시 사진

유대인 박물관 전시 사진

유대인 박물관에서 나온 우리는 ‘유대인 대학살 추모공원’으로 갑니다. 브란덴부르크 문에서 포츠담 광장으로 가다보면 거대한 ‘추방의 정원’과 같은 곳이 나옵니다. 이곳이 유대인 대학살 추모공원입니다. 목숨을 잃은 수백만명의 유대인을 추모하기 위한 공원이 베를린의 한가운데 있습니다. 높이가 서로 다른 2711개의 콘크리트 비석이 펼쳐져 있는 이곳을 ‘비석의 들판’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높은 비석 사이를 걸을 때면, 비석이 주변 교통 소음을 차단해 더 고요한 시간 속을 거닐 수 있습니다. 보는 각도에 따라 높이가 서로 다른 비석들은 고요한 물결이 출렁이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나보다 키가 높은 비석 사이를 걷다보면, 거대한 미로 수용소에 갇힌 듯 암담한 마음이 밀려옵니다. 내 키보다 훨씬 높은 회색빛 비석 사이를 걸을 때면, 미로에 갇혀서 길을 잃은 심정이 됩니다. 허리 아래, 무릎 높이의 비석 사이를 거닐 때면 희생된 어린아이들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그래서일까요. 비석 미로 사이를 걷는 이들은 침묵의 순례자가 돼 걸음도 느려집니다. 베를린 관광구역의 한복판에 홀로코스트를 기억하는, 이렇게 거대한 공원이 있다는 것이 놀랍기만 합니다. 베를린을 여행하는 이들은 이 곳을 거쳐갈 수밖에 없습니다. 거대한 추모공원을 조성해 지난 역사의 과오를, 홀로코스트를 기억하려 애쓰는 독일인들의 노력을 보며 마음이 숙연해집니다.

유대인 유품 전시

유대인 유품 전시

이 곳을 부르는 이름은 여러 가지여서, 홀로코스트 기념비(Holocaust-Mahnmal)라고 기억하는 사람도 많을 겁니다. 2005년 건립된 이곳은 1만9000㎡에 달합니다. 2711개의 비석은 유대인들의 무덤이자 관이기도 합니다. 미국인 건축가 피터 아이젠만이 설계한 이 공원은 각각 다른 모양의 비석을 세우고 그 사이를 독일인들이 걸으며 명상에 잠기게 함으로써, 유대인 희생자들의 죽음을 기억하게 합니다. 2711개의 비석들은 2711개의 사연을 들려주는 것만 같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사연과 아픔을 잊지 않겠다는 다짐이 곧고 탄탄한 비석으로 서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홀로코스트의 흔적을 따라 걸으며, 잠잠한 명상에 잠길 수 있는 곳. 여기는 베를린, 해가 지고 있습니다. 내일은 다하우 강제수용소로 떠납니다. 오늘 밤에는 로베르토 베니니의 <인생은 아름다워>를 다시 한 번 봐야겠습니다. 남은 여정은 귀도와 도라, 그들과 함께 걸어야겠습니다.

<박상미 문화평론가>

박상미의 공감 스토리텔링-홀로코스트, 흔적을 따라 걷다 <상>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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