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요리교실 운영하는 김승용씨 “요리는 나에겐 위로고, 가족에겐 사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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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어머니들이 “고추 떨어진다”며 남자들에게 엄격히 출입을 금했던 부엌. 이제 부엌은 더 이상 금남의 영역이 아니다. 친구들과 여행 떠나며 아내가 끓여놓은 곰국을 데워먹기 위해서나 혼자 라면을 끓여먹으려고 투덜거리며 들어선 곳이 아니다. 자신을 위해, 혹은 가족이나 연인에게 근사한 요리를 만들어주기 위해 요리를 배우고 부엌에서 행복을 느끼는 남성들이 늘면서 요리학원은 물론 문화센터 요리강좌도 남자 수강생들로 붐빈다. 텔레비전 방송에도 ‘삼시세끼’를 비롯, 요리하는 남자들이 대세다.

3년간 200여명의 남자들에게 요리를 지도해온 김승용씨는 요리가 남자들은 물론 각 가정을 변화시키는 것에 놀라움과 기쁨을 느낀다. “남자들에게 요리는 가정 평화는 물론 고령화시대에 대비해 반드시 익혀야 하는 필수 학습”이라고 강조하는 김승용씨를 그의 부엌에서 만났다.

[유인경이 만난 사람]남자요리교실 운영하는 김승용씨 “요리는 나에겐 위로고, 가족에겐 사랑입니다”

남자들의 요리교실은 어떤 계기로 시작했나요.
“제 지인이 20여년 전 일본에서 출간된 <할아버지의 부엌>이란 책 이야기를 해준 것이 계기라면 계기일 겁니다. 우리보다 일찍 고령화가 시작된 일본에서 아내를 먼저 보낸 팔순 할아버지가 딸의 도움으로 밥과 된장국 등 혼자 쉽게 해먹을 수 있는 요리를 배워가는 과정을 그린 책이랍니다. 그분이 한국 남자들도 청년 시절부터 직접 음식을 만드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강조하더군요. 맞벌이 가정이 늘고 고령화가 되면 남자들도 자기 밥을 스스로 만들어 먹어야 한다면서요. 마침 <경향신문>에서 요청도 와서 남자들도 쉽게 만들어 먹을 수 있는 요리를 다룬 ‘미스터엠의 사랑받는 요리’란 칼럼을 시작하면서 2012년 2월 말부터 주변 남자들에게 요리법을 알려주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나이가 60세였는데 새로운 도전이 두렵지는 않던가요.
“두려움도 컸지만 그 나이가 되니 ‘남자의 요리’란 말이 가슴에 확 와닿더군요. ‘뭐 이 나이에 못할 것은 또 뭐야’란 용기도 생겼습니다. 아이패드를 구해서 조리법도 알아보고 만든 요리 사진도 찍으면서 IT 기기와도 친숙해졌죠. 제가 요리가 취미이고 부엌가구 회사를 다닌 경험도 있어서 자주 친구들을 초대해 요리를 만들었는데, 그 가운데 요리를 배우고 싶다는 이들이 있어서 6명으로 시작했습니다. 3년간 우리 부엌을 방문한 이들은 200여명이고 현재는 60명이 한 달에 한 번 요리를 배우러 옵니다. 돈을 벌거나 성공하겠다는 야심으로 시작한 것이 아니라 ‘즐거움의 공유’가 목적이어서 제 인생의 새로운 장을 열 용기가 생긴 것 같습니다.”

일반 요리학원과는 어떻게 다릅니까.
“우선 수강생들이 현장에서 직접 요리를 하지 않습니다. 조리시설이 완벽히 갖춰진 학원이 아니라 제 집에서 하기 때문이죠. 우리집 주방에 6명 정도만 앉을 수 있어 수강생은 한 번에 6명으로 제한했습니다. 제가 요리하는 모습을 보고 설명을 듣고 몇 가지 코스 요리를 같이 맛있게 먹습니다. 당연히 앞치마도 입지 않고 칼이나 다른 조리 기구를 사용하지도 않아요. 각 음식 코스마다 어울리는 술도 곁들이는데, 소주부터 와인, 위스키까지 다양합니다. 그날 먹은 요리 가운데 핵심 요리, 메인코스 요리의 재료를 깨끗하게 손질해 각각 봉지에 싸서 나눠준 후, 집에 돌아가 요리했다는 인증샷 사진을 찍어와야 다음 수업에 참여가 가능하도록 했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수업료는 따로 없고 그날 가져갈 요리의 재료비 정도만 받아요. 제게도 공부가 되니까요.”

수강생들의 반응이나 변화는 어떤가요.
“처음에는 호기심으로 온 중년 남성들이 대부분이었어요. 요리라면 파 썰고 기름에 튀기고 계량컵을 다루는 복잡한 과정으로 생각하는 분들이 많지 않습니까. 그래서 겁 먹지 않도록 일단 마늘이나 파도 마트에서 파는 다지거나 썬 것을 사용했어요. 만들기는 쉬운데 보기에 근사하고 맛도 있는 요리들을 만들면서 흥미가 커지더군요. 무엇보다 여자들 눈치 안 보고 주변 사람 의식하지 않고 남자들끼리 모여 요리 이야기를 하는 것만으로도 즐거워합니다. 정말 부엌 근처에도 얼씬하지 않던 중년 남자들이 요리를 하니 처음 한두 번은 오히려 부인에게 구박만 받았답니다. 요리한답시고 어질러 놓고 설거지도 하지 않는다고요. 그런데 이제는 설거지도 하고 제법 맛있는 요리를 하니까 계속 다니라고 한답니다. 딸이 고3 수험생인 아버지의 경우, 아내가 아이를 학원에 데리러 갔다 오는 사이에 요리를 만들어 먹이니 딸이 엄청나게 감동하더라면서 딸이 먹는 사진도 찍어 보냈습니다. 수능시험 보러 갈 때도 아버지에게 도시락을 만들어 달라고 할 정도로 요리 덕분에 부녀 사이가 돈독해졌답니다. 20대 아들을 둔 분 이야기도 비슷해요. 아들은 이미 파스타 등 요리를 잘 만들고 취미가 있었나봐요. 아버지가 요리교실에 참가한 이후 집에서 같이 요리를 만들며 그 어느 때보다 대화가 풍부해졌다고 감사의 말을 전하더군요. 아버지와 아들이 공통의 취미를 갖는 것이 어색한 부자관계를 해소하는 데도 효과적인 것 같습니다.”

[유인경이 만난 사람]남자요리교실 운영하는 김승용씨 “요리는 나에겐 위로고, 가족에겐 사랑입니다”

자녀와의 관계도 중요하지만 부부관계에는 요리가 어떤 영향을 미칩니까.
“처음에 남편이 요리를 배운다고 하면 코웃음을 치는 부인들이 많죠. 그러다 어설프지만 가족들을 위해 이것저것 만드는 모습이 대견하기도 하고, 주말이나 생일에 특별한 요리를 만들어주는데 기분 나빠할 부인이 있을까요. 저는 아내들의 장기인 찌개, 밑반찬 등은 가르지치 않습니다. 먹기엔 너무 쉽지만 만드는 과정이 복잡해서 실컷 만들어 놓고도 허무해지니까요. 그래서 평소 아내들이 잘 안 만드는 폼 나는 요리들을 비장의 무기로 알려드립니다. 남자들끼리 모여 건전하고 건강하게 요리를 만들고 음식 이야기만 하니까 안심하고 ‘계속 다니라’고 한답니다. 저도 요리를 하면서 그동안 365일 묵묵히 끼니를 챙겨준 아내에게 감사함을 느꼈습니다.”

여자들끼리는 커피 한 잔 마시면서 서너 시간 수다를 떠는 것이 가능하지만, 남자들이 술을 안 마시고 음식만 먹으며 시간을 보내는 것이 가능합니까. 이 수업을 참관한 분의 이야기를 들으니 남자들의 수다도 만만치 않다던데요.
“그게 요리의 마법입니다. 처음엔 잘 모르는 사이인 이들도 있고 연령대도 20대 후반부터 70대까지 다양하니 서먹서먹하고 어색해 했어요. 그런데 요리나 음식이란 공통 주제가 있으니 각자의 추억, 경험담도 이야기하고 재료를 설명하면 곧바로 사진을 찍으면서 즐거워합니다. 최근에 다녀온 식당, 먹어본 음식에 관한 이야기도 나누죠. 각자 집에서 가족들을 위한 요리를 하지만 수강생들끼리도 직접 요리를 만들어 초대 모임을 갖는 등 연령을 초월한 우정을 나누기도 합니다. 언제 어디에서 이렇게 연령과 직업을 초월한 이들이 만나 웃고 떠들겠습니까. 정말 소년처럼 천진한 모습으로 호기심에 가득 차서 요리법을 배우고, 또 숙제 검사받듯 자신이 한 요리 사진을 찍어 제게 보내면서 즐거워하죠. 그들에게 요리는 일이 아니라 즐거움이고 이 과정이 힐링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를 선생님이 아니라 ‘멘토’라고 부릅니다. 하지만 너무 말이 많아지거나 2차 술자리로 이어지면 요리교실의 본질이 흐려져서 1시간 30분 정도의 수업이 끝나면 엄격하게 ‘끝’을 외칩니다.”

이 요리교실에서 가장 강조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신선한 식자재와 단순한 조리법이 특징인데, 조리법보다 식자재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제가 최근에 미국과 유럽 등에서 가장 인기 있는 식당을 찾아가서 유명 셰프들을 인터뷰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21세기 식당업계의 변화는 현란한 조리법이 아니라 ‘Farm To Table’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즉 요리사가 직접 계약한 농장이나 자기 텃밭 에서 경작한 야채나 닭, 우유 등 신선한 재료로 만들어 곧바로 식탁에 올리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사라진 토종 종자, 재래종을 살리는 운동도 벌이더군요. 그래서 저는 식자재를 직접 키우지는 못해도 제대로 된 재료를 구입할 수 있는 장보기 방법을 알려줍니다. 매번 할 수는 없고 계절에 한 번 정도 가락시장 투어를 합니다. 채소 고르기, 고기와 생선 고르기, 좋은 수입품 구별하기, 상인과 친해지기 등등을 알려주는데 너무너무 좋아하더군요. 싸게 사는 법만이 아니라 제철에 나는 가장 싱싱하고 맛있는 식자재를 고르는 요령을 알게 되니까요. 좋은 재료만으로도 음식 맛의 반 이상이 결정되고 영양가는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언제부터 시장을 직접 보기 시작했습니까.
“군대 다녀와 살짝 방황하던 시절, 어머니에게 야단맞을 일이 있으면 노량진 수산시장에 가서 싱싱한 도미 한 마리만 사오면 미식가인 어머니는 대부분 모든 것을 용서해주셨습니다. 하지만 결혼 후에는 시장과 인연을 끊었죠. 그러다 어머니가 칠순 무렵에 암 판정을 받았습니다. 항암 치료를 견디시려면 체력이 뒷받침되어야 하는데 영양가 있는 음식을 해드리고 싶어 시장에 가본 것이 시작입니다. 처음엔 그저 구경만 했는데 이제 시장보기의 중요성을 알았습니다. 상인들과 친해지면 그분들이 매우 유용한 정보를 주고 비밀까지 알려줍니다. 단골에게는 ‘지금은 제일 비쌀 때니 사지 말아라’ ‘이 과일은 끝물이라 맛이 없다’ ‘이 재료는 생물이나 냉동이나 맛과 영양가 차이가 크게 없으니 냉동식품을 사라’ 등등의 조언을 해주죠. 국내에 진출한 이탈리아, 프랑스, 미국 등 다국적 식품회사들도 가락시장 등 대형 시장의 상인들에게 식품 교육을 시키기 때문에 이분들은 정말 해박합니다. 저는 한여름에 허브의 일종인 바질을 싸게 박스째 구입해 갈아서 페스토 소스를 만들어 1년 내내 먹습니다. 한겨울에는 여름보다 10배나 비싸거든요. 요리의 시작은 장보기이고, 상인들과 친해지는 것의 중요함도 학생들에게 강조합니다.”

남자들에게 요리를 가르치면서 스스로도 변화를 느꼈을 텐데요.
“저는 항상 무얼 가르칠까보다 어떤 음식을 해먹일까를 궁리합니다. 정말 대한민국 남성들, 너무 불쌍하거든요. 겉으로는 회사 임원, 의사, 교수 등 전문직이라고 해도 사회란 전쟁터에서 상처받고 피흘립니다. 생존을 위한 밥이나 접대나 회식에서 눈치보며 먹는 음식이 아니라 마음을 담아 따뜻하게 데운 음식, 시원한 샐러드 등 가장 적절한 온도의 음식을 먹게 해주면 그렇게 기뻐할 수가 없어요. 그들의 표정을 보면 제가 행복해집니다. 음식은 정말 열 관리가 중요한데 달걀요리도 프라이팬에서 적당히 익을 무렵, 살짝 팬을 빼내면 달걀이 아주 부드럽거든요. 그런데 잘 모르면 계속 익혀 달걀이 딱딱하거나 퍼석해집니다. 이런 사소한 방법만 알려줘도 감탄사를 연발하고 맞장구를 쳐주니 절로 힘이 납니다. 그리고 보다 더 좋은 요리를 소개하고 싶어 세계 유력지의 요리칼럼 등을 복사해 나눠주기도 하고, 1년에 한두 번 정도 모든 학생들이 모여 송년회를 갖기도 합니다. 학생들보다 제가 오히려 더 많은 자극을 받습니다.”

아무리 요즘 셰프들이 스타가 된 시대이고 요리하는 남자가 섹시하다고 인정받게 되었지만 여전히 앞치마를 두르고 부엌에 있는 남자들은 좀 쓸쓸하거나 궁상맞게 보이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렇죠. 그런데 이제는 생각이나 관점을 바꿀 때가 아닐까요. 사회적 출세나 야망을 위해 밖에서 겉돌고 식사도 제때 못하던 남자들이 정작 집으로 돌아오면 찬밥 신세가 됩니다. 이제는 남자들도 거대한 꿈만큼이나 작은 행복을 추구해서 스스로의 기쁨을 발견해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 아내와 아이들이 각자의 일로 집을 비운 날, 혼자 뭔가 먹으려면 서글프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그저 굶주림을 면하는 것이 아니라 맛있고 영양가 있지만 만들기 쉬운 요리를 만들어 먹다보니 고독한 순간에도 행복이 느껴졌습니다. 제가 저를 위로해주고, 또 가족들에게 사랑을 표현하는 데는 음식만큼 효과적인 것이 없습니다.”

아무리 아내가 아파도 아내의 건강보다 “그럼 밥은?”이라며 자기 밥 걱정만 하는 철없는 남편. 달걀 프라이에 토마토 케첩으로 그린 엉성한 하트 모양만으로도 가정 행복은 물론 그들의 노후도 다른 풍경이 된다. 이 쉬운 것을 왜 그동안 몰랐을까, 불쌍한 남자들….

<글·유인경 경향신문 선임기자 alice@kyunghyang.com>
<사진·이상훈 선임기자 dool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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