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뒤 행복한 노동여지도를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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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노동여지도는 하청여지도였다. 발길 닿는 도시마다 하청의 설움과 비정규직의 한숨소리가 가득했다. 한국의 노동여지도는 죽음여지도였다. 손길 닿는 일터마다 죽은 원혼의 탄식이 메아리쳤다.

2014년 3월 삼성전자 기흥공장 출근길 풍경을 시작으로 연재한 ‘노동여지도’가 1년 2개월 만에 끝났다. 삼성의 도시 수원에서 출발해 책의 도시 파주까지 28번의 여행을 마치자 이고 다니던 등짐을 내려놓는 느낌이었다.

노동여지도는 힘든 여행이었다. 도시를 검색하고, 자료를 수집하고, 찾아갈 현장을 정하고, 만날 약속을 잡는 일에 적지 않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다. 여정 당일은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도시의 골목과 노동현장을 누비고 다녔다. 돌아오면 이틀은 꼬박 글을 쓰는 데 매달렸다. 격주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노동여지도 감옥에 갇혀 지낸 듯한 시간이었다.

삼성공장 기흥공장 앞에서 딸 고 황유미씨의 영정사진을 들고 있는 황상기씨. | 박점규

삼성공장 기흥공장 앞에서 딸 고 황유미씨의 영정사진을 들고 있는 황상기씨. | 박점규

삼성·현대 등 재벌이 삼켜버린 대한민국
현장에서 찾아낸 이야기, 사람 냄새 나는 따뜻한 사연이 많았는데 주어진 2쪽의 지면으로는 쉽지 않았다. 매출액과 순이익이 급증해도 일자리를 늘리지 않는 나쁜 재벌들의 정보를 전달하는 것만으로도 부족했다. 비정규직을 마구 늘리고 죽음마저 외주화한 못된 기업들의 통계를 전하기에도 바빴다. 찾아간 도시의 노동운동 역사와 투쟁 현장을 소개하기에도 빠듯했다.

삼성전자에서 딸을 잃은 아빠, 삼성전자서비스에서 아빠를 잃은 딸의 이야기를 쓰지 못했다. 울산에서 직영이냐고 물어볼까봐 맞선을 보러 나가기 싫어하는 하청노동자의 마음을 전하지 못했다. 13번째 여행지 대전에서부터 지면이 3쪽으로 늘어나 사람의 향기를 조금이라도 전할 수 있었다.

노동여지도를 시작하고 4개월쯤 지났을 때였다. 여행을 그만하고 싶어졌다. 어딜 가나 비슷했다. 삼성과 현대차가 잡아먹지 않은 도시가 없었다. 수원, 광주, 구미, 천안에서 가장 큰 회사는 삼성전자였고, 울산·아산·전주·광주·화성은 현대와 기아차의 도시였다. 재벌들이 만들어놓은 비정규직 하청노동자를 빼놓으면 쓸 이야기가 없었다. 동네 골목, 시골 어귀까지 재벌이 삼켜버린 대한민국. 비정규직 하청노동자가 넘치는 공단. 수천의 산업에서 일하는 수만의 노동을 그려보고 싶었던 바람을 이루기 힘들었다.

대한민국 노동여지도는 하청여지도였다. 전국 서비스센터의 90% 이상이 비정규직으로 운영되는 삼성전자서비스, 전국 11곳 중에 8개가 비정규직 공장인 현대모비스, 배를 만드는 생산직 노동자의 70~80%가 하청인 조선소, 정규직보다 많은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일하는 철강회사, 비정규직의 한숨소리가 가득한 연구소·공항·지하철역사·증권사…. 발길 닿는 도시마다 하청의 설움과 비정규직의 한숨소리가 가득했다.

한국의 노동여지도는 죽음여지도였다. 쌍용자동차에서 26명이 목숨을 잃고, 삼성에서 백혈병에 걸려 죽고, 현대제철에서는 쇳물에 빠져 죽고, 공장을 짓는 플랜트 노동자는 떨어져 죽고, 달리는 열차에 치여 죽고, 유독가스를 맡아 죽고, 조선소 앞바다에 빠져 죽고…. 손길 닿는 일터마다 죽은 원혼의 탄식이 메아리쳤다.

남녘의 노동여지도는 탄압여지도였다. 복수노조 강제 창구단일화 법안을 들고 경찰과 용역깡패로 무장한 사용자가 벌인 ‘민주노조 살해 전쟁’은 참혹했다. 경주 발레오만도에서 시작한 전투는 구미, 대구, 청주, 아산, 평택, 원주, 안산까지 이어졌다. 전국의 발전소에서, 강성노조로 찍힌 사업장에서 복수노조를 이용한 탄압은 비열하고 야비하게 진행됐다. 우애 있게 지내던 동료들을 원수로 만들었다.

노동이 존중받지 못하는 나라에서 노동을 위한 정치는 만나기 어려웠다. 국가와 지방정부가 곳간을 쏟아부어 만든 산업단지에서 대기업들은 나쁜 비정규직 일자리만 만들고 있었지만 이를 바로잡는 정치는 어디에도 없었다. 한 공장에서 열 명씩 죽어나가도 지방정부는 먼 산만 바라보고 있었다. 선거 때만 되면 여야 가리지 않고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목놓아 외치던 이들은 자신의 도시에서 어떤 노동이 이루어지고 있는지 관심조차 갖지 않았다. 지금도 지방정부가 앞장서서 비정규직 일자리를 양산하고 있다.

대한칼소닉 공장 내부 | 박점규

대한칼소닉 공장 내부 | 박점규

조용히 움트고 있는 희망과 저항의 씨앗
신음소리 가득한 도시의 뒷골목에서 희망과 저항의 씨앗은 조용히 움트고 있었다. 10년 전 현대자동차에서 시작한 비정규직의 저항은 10년 뒤 삼성전자서비스 하청기사들의 투쟁으로 이어졌다. 세계 1위 비정규직 공항에서 숨어 지내던 노동자들이 어깨 걸고 당당히 나섰고, 용역깡패가 다녀간 공장에서 다시 민주노조의 깃발이 올랐다.

군산의 타타대우상용차에서 성과급 대신에 동생들의 정규직 전환을 선택한 선배들, 군포의 현대케피코에서 식당과 청소노동자들까지 정규직으로 전환시킨 노동조합, 천안과 아산에서 비정규직 없는 공장을 만든 중소기업 노조들, 이주노동자들의 손을 맞잡은 대구의 노동자들, 부도난 버스회사를 인수해 가장 좋은 일터를 만든 청주의 노동자 자주관리기업, 아픈 청춘의 희망을 만드는 청년 노조들, 노숙자 들끓던 병원을 행복한 일터로 만든 파주병원 ‘강성노조’….

노동여지도 뒤안길에서 노동의 희망을 찾았다. 정직한 땀의 대가를 찾는 사람들을 만났다. 상처를 보듬고 연대하는 이들이 있었다. 거대한 골리앗에 맞서는 다윗의 도전과 바벨탑을 흔드는 모세의 용기도 보았다. 사람 사는 아름다운 이야기가 숨 쉬고 있었다.

1997년 구제금융 사태 이후 신자유주의 노동 유연화 17년, 정리해고와 비정규직이 할퀸 상처와 고름 투성이 도시에서 행복한 노동의 꿈을 만들어가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공단 후미진 곳을 뛰어다니며 오랜 시간 맨몸으로 노동의 역사를 써내려간 노동운동가들이었다. 행복한 노동이 피어나는 일터, 아름다운 연대가 솟아나는 도시를 만들어가고 있었다.

석유화학단지 여수, 조선소가 밀집한 거제와 통영은 찾아가지 못했다. 서산의 석유화학단지와 목포의 조선소에서 노동여지도를 그렸기 때문이었다. 2011년 88일 송전탑 농성 합의사항을 지키라며 지난 4월 9일 70m 크레인에 올라간 대우조선해양 비정규직 해고노동자 강병재 선배를 만나러 가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 북녘의 노동여지도를 대신해 개성공단을 가보고 싶었지만, 남북관계 악화로 통일의 다리에서 차를 돌릴 수밖에 없었다.

낯선 도시를 헤매는 이방인을 위해 소중한 시간을 내어 일터를 안내하고, 아름다운 사람들을 소개해준 이들, 가난한 여행자에게 잠자리와 끼니를 챙겨준 사람들, 막걸리 애호가에게 지역 최고의 막걸리를 따라준 동지들이 있었기에 힘든 여정을 기쁘게 마칠 수 있었다.

2015년 대한민국 노동여지도는 전국이 흐리고 폭풍우가 몰아친다. 10년 뒤의 노동여지도는 ‘비 온 뒤 맑음’으로 기록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비정규직 없는 세상만들기 집행위원(@ccomark)>

박점규의 노동여지도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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