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만장한 인생, ‘옹녀’의 재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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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여름 국립창극단이 신작으로 무대에 올려 뜨거운 반응을 불러일으키고, 창극 최초로 차범석희곡상을 수상하며 대중성과 작품성 모두 좋은 평가를 받은 <변강쇠 점 찍고 옹녀>(사진)가 다시 돌아왔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작품은 판소리 <변강쇠 전>을 기초로 하고 있지만, 작품 속 주인공은 어디까지나 ‘옹녀’다. 새로운 제목 <변강쇠 점 찍고 옹녀> 역시 변강쇠 다음에 점을 찍음으로써 옹녀라는 캐릭터에 방점을 두고, 기존에 알려진 성적인 코드와 스토리를 넘어 다음 이야기로 넘어간다는 의미가 담겨져 있다. 사실 ‘변강쇠’와 ‘옹녀’는 우리에게 상당히 익숙한 이름이다. 드라마, 영화, 광고, 소설, 만화 등을 통해 익히 접한 바 있는 이들의 이름은 그 자체로 남녀를 대표하는 정력의 상징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실제로 판소리 <변강쇠전>이 어떤 이야기인지 알고 있는 사람은 찾기 힘들다. 각색과 연출을 맡은 고선웅은 바로 이 지점으로부터 작품의 구상을 시작했다. ‘외설적’이라는 이유로 제대로 공연 기회도 갖지 못한 채, 부풀리고 왜곡된 이미지로만 알려져 온 변강쇠와 옹녀의 진짜 사정을 들려주겠다는 것이다.

[문화내시경]파란만장한 인생, ‘옹녀’의 재발견

이번 작품에서 고선웅은 상부살을 타고난 옹녀가 청석골에서 변강쇠를 만나 사랑하다가 장승동티(장승을 잘못 건드린 벌로 받은 재앙)로 남편을 잃는다는 원작의 뼈대는 그대로 두되, 후반부를 새로 쓰면서 옹녀의 주체적인 의지와 행동을 강조했다. 그 덕분에 이 이야기는 단순한 사랑놀음에 그치지 않고 당대의 시대 상황과 서민들의 애환을 담아낼 수 있게 됐다. 특히 무엇보다 도드라지는 것은 ‘옹녀’라는 캐릭터의 재발견이다. 그동안 옹녀는 주로 음란한 여인으로만 그려졌는데, 이번 작품에서는 옹녀가 왜 그런 팔자를 타고났는지 그 탄생의 내력과 시대적인 상황을 함께 보여줌으로써 옹녀에 대해 인간적인 이해가 가능해졌다.

이 외에도 변강쇠를 벌주기 위해 전국 방방곡곡에서 모인 장승들의 회의 장면, 병으로 드러누운 변강쇠를 치료하러 찾아온 의원들이 갖가지 의학지식을 늘어놓는 치료 장면, 남편을 잃은 옹녀가 ‘열녀다운’ 방식으로 전국의 장승을 모아 복수의 화염을 불태우는 장면 등 고선웅 특유의 유머와 위트가 요소요소에서 번뜩이면서 옹녀의 한 많고 정 많은 인생사가 시종일관 유쾌하고 흥미롭게 이어진다.

<변강쇠 점 찍고 옹녀>는 음악적으로도 기존 창극과는 다른, 새로운 시도를 보여주고 있다. 작창과 작곡을 맡은 한승석은 작품 안에 소리뿐만 아니라 민요, 정가, 비나리, 심지어 트로트까지 다양한 음악을 사용해 이야기성과 음악성 모두를 풍요롭게 만들었다. 특히 장승들이 무례를 범한 변강쇠에게 병을 옮기는 장면이나 의원들이 갖가지 약으로 변강쇠를 치료하는 장면에서는 빵빵한 타악 연주와 합창이 어우러져 리듬감과 에너지 넘치는 음악놀음을 펼쳐 보인다.

쉴 새 없이 쏟아지는 재담과 신나는 노래에 한바탕 크게 웃다 보면 옹녀의 파란만장한 인생살이에 고개가 끄덕여지고, 그녀의 마지막 선택에 박수를 보내게 된다. 이렇듯 그동안 단순히 외설의 상징으로만 치부된 <변강쇠전>을 새롭고도 본격적인 ‘이야기’로 풀어내고, 변강쇠와 옹녀란 캐릭터를 인간적인 감정과 의지를 지닌 인물로 새로이 인식할 수 있게 했다는 점에서, 창극 <변강쇠 점 찍고 옹녀>는 흥미롭고 의미 있는 시도라 할 수 있다. 5월 1일부터 23일까지, 국립극장 달오름극장.

<김주연 연극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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