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출판사 ‘6시간 노동’ 3년의 실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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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성피로증후군에 시달리던 김성재씨(48)는 6시간 노동으로 자녀 학교 부모모임에도 나가고 자전거도 배우고 이웃과도 친해졌다. 6시간 노동제 3년, 다른 회사 비교했을 때 경영상태도 나쁘지 않고 직원들 만족도가 높다.

한강을 따라 자유로를 달린다. 개성과 평양을 향해 난 도로, 접경지역 파주로 향한다. 디스플레이단지, 출판단지 표지판이 잇따라 보인다. 2006년 만들어진 LG디스플레이 파주공장. 8년 만에 직원이 1만7397명으로 4배 이상 늘었다. 파주의 인구, 신생아, 보육시설, 지방세가 모두 증가했다. LG디스플레이 비정규직 비율은 7.66%로 삼성전자(23.07%), 삼성디스플레이(18.28%)에 비해 월등히 낮았다. 군사도시 파주는 이제 살 만한 도시가 되는 걸까?

지난 1월 12일 LG디스플레이 파주공장에서 질소누출 사고로 3명이 죽고 3명이 다쳤다. 모두 하청업체 소속이었다. 사고 열흘 전 불시 비상훈련을 실시해 15분 만에 사고수습을 완료했고, 매년 1000억원에 달하는 비용을 안전에 투자했다고 자랑한 LG였다. 고용노동부 특별감독 결과 산업안전보건법 2052건을 위반했다. 비정규직이 가장 적은 대기업이 이 지경인데, 다른 재벌들은 오죽할까?

퇴근하고 비어 있는 보리출판사. / 박점규

퇴근하고 비어 있는 보리출판사. / 박점규

‘강성 노조’가 만든 파주의 ‘좋은 병원’
경기도 의료원 파주병원. 1999년부터 간호사로 일한 이은희 보건의료노조 파주병원지부장(42)이 10년 전 병원의 풍경을 떠올린다. 출근하면 병원 소파에는 노숙자들이 자고 있었다. 발 냄새와 악취가 진동했다. 술병이 나뒹굴었고, 곳곳에 오줌이 흘렀다. 청소를 하고 병원 문을 열어도 파리만 날렸다. 비가 오면 복도에 양동이를 놓아야 했다. 입원 환자들은 알코올 중독자나 치매, 중풍환자들이 대부분이었다. 고양·파주 지역의 유일한 공공병원이 오래된 요양원 같았다.

의사들은 출근시간도 잘 지키지 않았다. 군대 땜빵으로 온 공중보건의 의사들을 찾는 환자는 하루에 서너 명뿐이었다. 심지어 직원 가족들도 다른 병원으로 갔다. 월급은 체불되기 일쑤였고 복지는 동네병원보다 못했다. 노동조합은 힘을 모아 무능한 병원장과 싸웠다. 낙하산으로 내려온 4명의 병원장은 임기 2년을 채우지 못하고 모두 쫓겨났다.

2007년 파주가 고향인 김현승 원장이 새로 부임했다. 연세의대 세브란스 병원에서 정년퇴직을 하고, 고향 병원을 살려보겠다고 했다. 노조를 인정하고 대화에 나섰다. 교만하던 예전 원장들과 달리 자신을 낮췄다. 5급 이상 관리자들이 무급 순환휴직으로 3개월치 급여를 반납했다. 월급이 모자라자 원장은 의사들부터 양보하겠다고 했다. 노조는 진정성이 느껴졌다. 노조도 임금을 동결했다. 전 직원이 1%씩 떼어 휴직자 생계비를 지원했다. 중단됐던 공사가 재개됐고, 국가와 경기도 지원을 받아 병원 건물을 신축했다.

파주병원 호스피스완화병동을 소개하고 있는 이은희 지부장. 가족들의 편지와 미술치료 작품들이 보인다. / 박점규

파주병원 호스피스완화병동을 소개하고 있는 이은희 지부장. 가족들의 편지와 미술치료 작품들이 보인다. / 박점규

신뢰의 노사관계 7년. 병원은 흑자로 돌아섰다. 하루 130명이던 외래환자는 700~800명, 201개의 병실은 90% 이상 운영된다. 건강검진센터도 짓는다. 조합원은 170명으로 늘었고, 임금 체불은 사라졌다. 비정규직 20명도 모두 조합원으로 가입했고, 2년이 지나면 무기계약직이 된다. 지난 3월 1일 노조의 숙원사업이던 직장어린이집이 문을 열었다. “조금 전에 응급실 간호사가 와서 어린이집이 너무 좋다면서 아이 하나 더 낳고 싶다고 하고 갔어요. 다른 병원에서는 감히 못하는 사업을 직원 복지를 위해 했다는 것이 뿌듯해요.” 어린이집은 지역주민들도 이용할 수 있게 개방했다. 지역 엄마들도 감탄할 정도란다.

지난 일요일 50명의 직원들이 병원에 나왔다. 매월 둘째 일요일 노사가 함께하는 외국인 무료진료 때문이다. 이름은 ‘들무새’. 파주 인근 의류·청국장·장미공장과 돼지농장에서 일하는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이 찾는다. CT도 찍고 분만도 하고 수술도 가능하다. 병원 앞에 경찰서가 있어서 처음에는 머뭇거리던 이주노동자들이 지금은 다른 지역에서도 찾아온다. 매달 100여명이 진료를 받는다. 노사는 해마다 외국에 의료봉사도 나간다.

일요일 오후에는 노조에서 ‘행복한 동행 독거노인 봉사’를 했다. 파주·금촌 지역의 4가구를 방문한다. 한 달치 음식을 준비하고, 청소와 집수리를 한다. 건강상담과 치료는 기본. 이은희 지부장은 지난해 연탄가스 중독을 막기 위해 문을 뜯어내고 알루미늄 섀시로 바꾼 일이 제일 뿌듯했다고 말한다.

케이디미디어 인쇄기계. / 박점규

케이디미디어 인쇄기계. / 박점규

사계절출판사 강변구 노조분회장. / 박점규

사계절출판사 강변구 노조분회장. / 박점규

점심식사를 마친 조합원들이 노조 사무실에 들러 과자를 먹고 수다를 떨다 간다. 음식이 정갈하고 맛있다. 식당은 직영으로 운영하고, 모두 조합원이다. 병원 1층 로비, 점심시간에도 환자들로 붐빈다. 물리치료실이 오후 치료를 준비하고 있다. 단 둘이 일하던 치료실이 지금은 6명. 한종철 물리치료사는 “중풍이나 교통사고 환자가 초기 재활치료를 못하면 평생 누워서 살게 된다”며 “일산과 서울까지 힘들게 오가던 환자들이 지역 병원에서 맘껏 재활치료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말기암 환자들을 위한 2층 호스피스완화병동 입구. 가족들의 편지와 미술치료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환자와 가족이 만든 화분도 보인다. 원예요법이다. 입원환자 12명을 간호사 6명과 사회복지사가 돌본다. 주치의는 한 명이지만 병원 의사 모두가 협진을 한다. 미용 목욕 마사지와 네일아트도 받는다. 노부부의 마지막 데이트를 위해 의사와 간호사들이 몰핀 주사를 챙겨들고 카페까지 동행하기도 한다. 본인은 물론 가족들도 대만족이다. “일반 병실로는 30병상을 쓸 수 있어요. 공공병원이 아니면 이런 시설을 누가 만들겠어요?” 결혼을 앞둔 김연미 사회복지사의 얼굴에 자부심이 가득하다.

‘강성노조’를 이유로 공공병원인 진주의료원을 폐업하고 무상급식까지 중단한 홍준표 경남지사가 경남기업에서 1억원을 받은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게 된다는 소식이다. 파주병원 노동자들은 금촌의료원 시절부터 ‘강성노조’로 5년을 싸워 해고자들을 복직시키고, 악덕 병원장들을 쫓아내 ‘좋은 병원’을 만들었다. 노조가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파주병원 김현승 원장도 “공공의료에 대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고 하는데 의료원은 돈을 벌기 위한 조직이 아니므로 재정상태가 아니라 공공의료를 제대로 하느냐를 두고 판단해야 한다”며 “민간병원에서 돈 안 된다고 팽개치는 공공의료 부분을 의료원이 다 한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통일대교에 바리게이트가 쳐져 있다. / 박점규

통일대교에 바리게이트가 쳐져 있다. / 박점규

인쇄공 34년 만에 노조 두 번 만든 사연
파주 시내를 벗어나 빗길을 달린다. 자유로를 따라 만들어진 파주출판도시 내 케이디미디어. 연금복권, 버스 승차권 등 특수인쇄를 하는 회사다. 김춘오씨(56)는 1982년 10월 서울신문 출판국에 입사했다. 경마장 마권, 버스 회수권, 주택복권, 유가증권을 인쇄했다. 당시 15원짜리 한산도 담뱃갑도 만들었다. 월요일 출근하면 회사에서 먹고 자면서 일했다.

1988년 서울신문 모 국장이 출판국을 인수하려고 했다. 그는 영등포 산업선교회에서 노동조합을 공부하고 조합원 가입원서를 받았다. 서울신문노조가 받아주지 않았다. 50여명의 조합원이 서울신문출판노조를 만들었다. 출판부가 매각돼 1998년 대한매일문화정보가 만들어졌고, 2001년 케이디미디어가 됐다. 사업을 해보려고 회사를 나갔다가 2012년 돌아왔더니 투기자본이 회사를 ‘날로’ 먹으려고 하고 있었다. 그는 노동자들을 모아 우리의 일터를 지키자고 했다. “기업노조를 만들고 교섭을 요구했더니 콧방귀도 안 뀌더라고요. 안 되겠다 싶어 파주시청에 가서 노조 설립을 취소하고 금속노조에 가입해 설립신고서를 보여줬더니 달라지더라고요.” 1년 만에 사기꾼들을 쫓아냈고, 회사는 안정됐다. 그는 한 회사에서 노동조합을 두 번 만든 흔치 않은 사람이 됐다. 현재 직원 50명 조합원 35명. 월급이 20만~25만원 정도 올랐다. 인쇄노동자로 살아온 34년. 이 회사는 특수인쇄라 고정 물량이 많아 그나마 낫지만 단행본을 출판하는 인쇄소는 최악이다. “사람들이 책을 안 보니까 일이 없어요. 업체는 많은데 물량이 줄어드니까 단가가 떨어지고 적자는 늘어나고. 인쇄하는 사람들이 컴퓨터와 스마트폰을 없앴으면 좋겠다고 합니다.” 그는 인쇄노동자들이 뭉치면 달라질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파주출판도시 도로에 ‘2015 어린이책 잔치’ 현수막이 나부낀다. 5월 1일 노동절부터 어린이날까지 열린다. 출판도시의 정식 이름은 파주출판문화정보산업단지. 산업통상자원부가 아닌 문화체육관광부 관할 유일한 국가산업단지다. 열화당 이기웅, 한길사 김원호 대표가 출판도시의 산파 역할을 했다. 단지 내에 웅진싱크빅, 김영사, 문학동네, 창비, 한길사, 사계절 등 주요 출판사들이 차례로 들어왔다.

출판도시 방문 전날, 한 언론에 자음과모음 출판사가 편집자에게 실적을 압박하고 물류팀으로 부당 전보해 꿈을 빼앗았다는 기사가 떴다. 2013년 황석영 소설 사재기 파문을 일으켰던 출판사다. 언론노조 서울경기출판지부는 “모욕적인 언동과 불법행위에 관해 직원들에게 사과하는 동시에 경영상 월권행위를 중단하고, 민주적인 경영을 약속하라”고 요구했다. 지난해에는 <아프니까 청춘이다>로 유명한 쌤앤파커스에서 성폭력 사건이 발생했다. 출판노동자들이 항의시위를 벌인 끝에 사과와 재발방지 방안에 합의했다.

성희롱 예방교육도 못 받는 출판노동자
출판노조협의회가 2014년 출판노동자 514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32%가 근로계약서를 작성·교부받지 않았고, 연장근로는 75%, 휴일근로는 44%가 ‘보상받지 못한다’고 답했다. 성희롱 예방교육을 받지 않았다는 답변은 48%, 교육을 받았으나 실효성이 없었다는 대답도 37%였다. 응답자 66명이 의도적인 신체접촉, 104명이 성적인 언어 희롱을 당했다고 답변했다.

“출판계에서 오래 활동하셨던 분들이 왜 요즘 사건·사고가 많으냐, 남 보기 부끄럽다는 말씀을 하시는데, 그 전에도 똑같았어요. 노동조합이 생겨서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된 거죠.” 사계절출판사에서 어린이책을 만드는 강변구 노조분회장은 “일부 출판계의 조직문화가 여느 악덕 사업장 못지않게 굉장히 비민주적”이라고 말한다. 그에게 전화 한 통이 걸려온다. 출판노조 간부다. 부당전보를 당한 자음과모음 대표 면담을 어떻게 할지 상의한다.

피존 회장처럼 쌍욕을 입에 달고 다니고 개천절에 출근하지 않았다고 회사 열쇠를 바꿔버린 대표이사, 노조가 있다고 인수를 거부한 진보 출판사, 밖에서는 존경받는데 안에서는 권위주의로 가득한 회사…. 그가 들려준 출판계의 ‘생얼’이다.

2011년부터 창비, 한겨레, 보리, 사계절 등 사회과학출판을 하다 대중화에 성공한 출판사부터 노동조합이 만들어져 현재 언론노조 출판노조협의회에 10개 분회 200여명이 가입해 있다. “출판노동자들이 모여 우리끼리 소곤대다가 성명서를 쓰고 밖으로 알리기 시작했는데, 이제는 찾아가서 시위까지 하게 됐어요.” 운동권 출신의 카리스마 강하고 엘리트 의식으로 뭉친 입지전적 사장님들 앞에 ‘이제는 말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출판계가 양극화되고 있다. 대형출판사와 작지만 창의력으로 버티는 출판사로 재편되고 있단다. 작은 출판사는 더 힘들다. 어려움을 뻔히 아는데 권리만을 주장하기 어렵다.

“노조 처음 만들 때 사장님이 노조는 회사가 어려울 때 임금 삭감도 받아들일 각오가 되어 있느냐고 물으시더라고요. 단결해서 임금 인상을 요구할 수 있는 조직이면 임금 삭감도 함께 결의할 수 있다고 말씀드렸죠.” 그는 노조가 경영의 걸림돌이 아니라 파트너라고 인식할 때 어려움에 빠진 회사를 같이 일으킬 수 있다고 믿는다. 어린이책 편집자로 살아온 10년. 어른이 만드는 어린이책의 간극을 좁히기 위한 노력처럼, 출판사 대표와 출판노동자의 거리를 줄이기 위한 노력은 어렵지만 꼭 해야 할 일이 아닐까?

보리출판사로 향한다. 4시가 조금 넘은 시간, 직원들이 하나둘 퇴근한다. 2층 보리책방은 불이 꺼졌다. 3층 영업부에는 상무이사를 포함해 4명이 남아 있다. 4층에는 10명이 일한다. 다달이 나오는 어린이잡지 <개똥이네 놀이터>를 만들고 있다. “이런 날 오셨어요? 오늘이 초절정 대박 마감일이어서 퇴근을 못했는데….” 한 편집자가 너스레를 떤다. 오늘 편집자와 디자이너들의 야근시간은 적립돼 나중에 휴가로 쓴다.

“열악한 출판사 많아서 미안한 마음”
9시에 출근해 4시에 퇴근하는 ‘6시간 노동제’를 실시한 지 3년. 휴직자를 뺀 23명의 평균 연간 근무시간은 1648시간으로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기준 24위인 스페인(1665시간)과 비슷했다. 한국의 연간 노동시간은 2070시간으로 OECD 국가 중 2위. 직원들 23명의 평가서를 받았다. 한 직원은 업무영역에 대해 “8시간 노동제 때 자주 발생한 오후시간 중 집중력 저하 현상이 현저히 줄고, 출근 및 노동에 대한 부담감이 크게 감소하여 업무의 효율성은 상대적으로 향상된 편”이라고 적었다. 개인적인 영역에 대해 “아이 둘이 아빠와 함께 놀 수 있는 4시간(2시간×2명)과 이로 인해 아내가 육아노동으로부터 한결 자유로워지는 2시간을 나의 비노동시간 2시간과 합하면 가족 전체로는 실제로 8시간의 혜택을 보게 되었다”고 썼다.

책을 만드는 일이 좋아 회사밖에 몰랐고, 만성피로증후군에 시달리던 김성재씨(48)는 6시간 노동으로 자녀 학교 부모모임에도 나가고 자전거도 배우고 이웃과도 친해졌다. 6시간 노동제 3년, 다른 회사와 비교했을 때 경영상태도 나쁘지 않고 직원들 만족도가 높다. 언론노조 보리출판 김누리 분회장도 “노동시간 단축에 따른 임금 삭감 없이 6시간 노동제를 도입했고, 추가 근로시간을 대체휴가로 사용하는 것이 일상화되어서 대체적으로 만족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회사는 6시간 노동제를 이어갈 계획이다.

보리출판사의 실험 이후 매달 마지막 주 금요일을 휴일로 정하거나 주 4일 근무제를 도입한 출판사도 생겨났다. 하지만 언론 기사에 달린 댓글은 “6시에라도 퇴근했으면 좋겠다”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성재씨는 “워낙 열악한 출판사들이 많아서 진짜 미안한 마음”이라고 말한다. “사축이라는 말을 아세요? 회사 가축이라고 일본의 직장인들이 스스로를 비하해서 하는 말이라고 해요. 지금 우리가 그렇게 살고 있어요. 열심히 일하면 인정받을 수 있고 내가 살아남을 수 있다고 생각하잖아요. 이제는 좀 멈춰야 하지 않을까요?”

자유로를 달려 임진각에 오른다. 빗줄기 사이로 보이는 북녘 땅이 흐릿하다. 통일대교 앞에 이른다. 바리케이드가 쳐져 있다. 민간인 출입이 통제된 곳, 미승인 차량은 유턴을 해야 한다. 날이 어두워진다. 개성공단에서 승용차 4대와 트럭 1대가 나온다. 승용차 2대가 개성공단으로 들어간다.

북측은 개성공단 노동자들의 최저임금을 70.35달러에서 74달러로 5.18% 인상한다고 통보했다. 남측은 일방적인 임금 인상은 수용할 수 없다며 기업들에게 종전대로 지급하라고 했다. 2004년 만들어져 2005년부터 가동한 개성공단. 2010년 3월 천안함 침몰과 11월 연평도 포격 사건으로 폐쇄될 위기에 처했고, 남북 대결로 위태롭게 운영되고 있다.

신종플루가 유행하던 2010년 겨울이었다. 파주병원 이은희 지부장은 1월 26~27일 개성공단을 방문했다. 2009년 9월부터 시작한 무료진료. 300명의 아이들이 생활하는 탁아소에 공동으로 쓰는 천기저귀도 턱없이 부족했다. 빨래집게가 없어서 바람이 불면 날아다녔다. 다음해 봄 두 번째 방문할 때 기저귀와 모기장, 빨래집게를 바리바리 싸들고 갔다. 개성공단 노동자들은 짝을 지어 다녔다. 어렵사리 만나도 “일 없습네다”라며 피했다. 체격 좋고 덩치 큰 노동자는 찾아볼 수 없었다. 전 세계가 최저임금을 올리고 남쪽도 대폭 인상한다고 하는데, 개성공단의 최저임금을 올려주고, 탁아소를 지원하는 일이 왜 불가능한지 그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통일의 다리를 두고 떠난다. 임진강을 따라 자유로를 달린다. 개성공단 노동자들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북녘의 노동여지도를 그릴 수 있는 날은 언제쯤 올까?

<비정규직 없는 세상만들기 집행위원(@ccom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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