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 보면 더 흥미로운 ‘드림걸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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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에서 금과옥조처럼 쓰이는 표현이 있다.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즐길 수 있다’는 말이다. 최근 앙코르 공연의 막을 올린 뮤지컬 드림걸즈도 그런 말이 통하는 전형적인 사례 중 하나다. 극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실존했던 흑인 뮤지션들의 풍자적 해석이기 때문이다. 바로 1960년대 큰 인기를 누렸던 모타운 소속 디트로이트 태생인 인기 걸 밴드 ‘수프림즈’다. ‘수프림즈’는 리드싱어였던 다이애나 로스로 유명하지만, 처음부터 그녀가 전면에 나섰던 것은 아니다. 팀이 시작될 무렵의 리더는 그녀가 아닌 플로런스 발라드였다.

극중 매니저에게 버림받고 인생의 밑바닥까지 경험했다가 결국 재기하는 에피 화이트는 바로 그 플로런스 발라드에 여러 무대적 상상력을 더한 등장인물이며,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훗날 영화계로 진출한 멤버인 디나 존스가 바로 다이애나 로스의 개인사를 투영시킨 것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차갑고 비열한 승부사이자 디나 존스와 연인관계로 발전하는 커티스 역시 흑인 음반 레이블인 모타운의 창립자 베리 고디 주니어의 무대적 캐릭터라는 주장도 있다. 이런 배경을 염두에 두고 작품을 다시 감상한다면 등장인물들은 단순한 극적 캐릭터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음을 쉽게 눈치 챌 수 있다. 드라마의 극적 재미를 살리기 위한 변화도 알고서 보면 더 재미있어지는 것이 이 뮤지컬의 감상법이다. 예를 들어, 극중에서는 버림받았던 에피 화이트가 재기에 성공하고 감동어린 우정의 재회를 나누지만, 실제 수프림스의 초창기 리더인 플로런스 발라드는 재기에 실패했던 비극적인 개인사의 인물이다. 무대에서의 스토리와 달리 그녀는 가난과 우울증, 알코올 중독에 빠져 자신을 되찾지 못하다가 결국 1976년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나고 만다. 그때 그녀의 나이는 겨우 32살에 불과했다. 어찌 보면 무대에서 눈물어린 화해를 나누는 멤버들의 엔딩 신은 수프림스를 좋아했던 애호가나 팬들에겐 현실에서 이루지 못한 간절한 소망과 환상을 담은 염원의 구현일 수도 있다.

[문화내시경]알고 보면 더 흥미로운 ‘드림걸즈’

미국 대중음악사에 대한 이해도 작품 감상에는 큰 도움이 된다. 뮤지컬에선 소속 가수들을 방송에 노출시키기 위해 프로듀서인 커티스 테일러 주니어가 라디오 DJ들을 만나 뇌물을 건네는 장면이 스치듯 등장한다. 라디오의 영향력이 엄청났던 1950~60년대 미국 방송가에서는 실제 이런 일들이 비일비재했다. 방송 노출의 대가로 금전을 지불하는 ‘페이욜라’나 마약을 건넸던 ‘드러골라’는 오늘날까지도 회자되는 매스 미디어의 폐해들이다.

이번 우리말 앙코르 무대는 뛰어난 배우들의 열연으로 더 빛난다. 초연부터 에피 화이트로 등장했던 차지연은 여전히 안정적인 무대와 수려한 가창력을 선보인다. 여기에 오랜만에 무대로 돌아온 난아와 개성 강한 연기를 선보이는 김도현, 천방지축 매력 넘치는 최민철, 수준급 연기와 노래를 들려주는 윤공주 등이 탄탄한 완성도를 이끌어낸다. 가수 출신 유지가 연기하는 디나 존스도 꽤나 아름답고 매력적이다. 뮤지컬 영화에서 인기를 누렸던 비욘세의 노래 ‘리슨’(Listen)은 원래 무대용 뮤지컬에서는 없었지만, 영화 이후 등장한 버전에서는 새롭게 첨가된 뮤지컬 넘버다. 흑인 창법 특유의 선율이 두 여배우에 의해 열창으로 재현되면 공연장은 온통 환호와 박수로 뒤덮인다. 뮤지컬의 묘미는 무엇보다 좋은 노래에서 비롯된다는 명쾌한 이치를 다시 한 번 절감하게 되는 순간이다. 올봄 가장 추천하고 싶은 무대다.

<원종원 순천향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뮤지컬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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