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핍과 두려움이 빚은 장엄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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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보방송에 등장해 자신의 ‘화투’ 그림도 마크 로스코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말하는 가수 조영남, 그리고 전시 부제인 ‘스티브 잡스가 사랑한 마크 로스코(Mark Rothko)’. 아무리 따져 봐도 조영남의 화투 그림과 마크 로스코는 좀처럼 겹쳐지지 않는다. 생전 연설에서 피카소의 명언을 인용했다든지, 알브레히트 뒤러를 흉내 낸 듯한 사진 등으로 곧잘 예술계 내부로 수용됐던 스티브 잡스를 생각하면 홍보방식 치곤 낡은 프레임이다.

그런데도 자꾸 회자되는 이유는 마크 로스코가 누구인지 잘 알지 못하는 대중을 포섭하기 위한 주최 측의 전략 때문이다. 진부할지라도 통하긴 하는, 일종의 스타마케팅인 셈이다. 하지만 이런 양태는 ‘상업성보다 양질의 전시에 주력했다’는 기획사의 주장을 무색하게 만든다. 오히려 19세기 미술만이 미술의 전부인 양 소개해온 기존 편협한 전시행태를 바꾸겠다는 ‘모험’에 효과적이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Untitled 1970 / ⓒ 1998 Kate Rothko Prizel and Christopher Rothko ARS, NY SACK, Seoul.

Untitled 1970 / ⓒ 1998 Kate Rothko Prizel and Christopher Rothko ARS, NY SACK, Seoul.

허나 이에 아랑곳없이 마크 로스코 한국 특별전(3월 23일부터 6월 28일까지 예술의 전당)에 대한 반응은 뜨겁다. 개막 전부터 결핍과 두려움이 빚은 장엄함을 맛보려는 이들의 시선이 줄을 잇고 있다. 관심을 모으는 동력은 커다랗고 모호한 색 면과 불분명한 경계에 투영된 절망, 공포, 공허, 고독, 환희에 이르는 다양한 감정들을 직접 체감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에 있다. 여기에 미국 워싱턴내셔널갤러리 소장품 50여점이 내걸리는 국내 최초의 대규모 전시라는 사실, 그림 한 점이 800억원을 호가할 만큼 비싸다는 점, 자살로 생을 마감한 드라마틱한 예술가의 삶 또한 호기심을 부추기는 동인이다. 이번 전시는 ‘신화의 시대’, ‘색감의 시대’, ‘황금시대’, ‘벽화시대’, ‘부활의 시대’ 등 모두 5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형상이 등장하는 1940년대 초기 작업부터 비재현적이면서 단일한 색감으로 전이되는 40년대 후반과 50년대 그림들, 그리고 생애 마지막 10년 동안 몰두했던 벽화작업 시기의 로스코 채플까지 선보인다. 나아가 완전한 추상으로써 사유의 폭을 극대화하며 인간의 근원적 감정을 명징하게 환기시키는 1970년대 작업도 볼 수 있다. 그야말로 45년 화업을 관통하는 작업들이 곳곳에 포진하고 있는 셈이다.

대표작은 비교적 초기에 속하는 <지하철 판타지>(1940년께)를 비롯해 신화를 소재로 한 <안티고네>(1941년께) 등이다. 1950년대부터 60년대 사이 제작된 <무제> 연작도 소홀히해서는 안 될 작품으로 꼽힌다. 특히 붉은 빛으로 물든 로스코의 마지막 작품 <무제>(1970년)는 빼놓을 수 없는 수작이다. 어두운 색채로 가득한 당시 그림과는 달리 절제된 화면 속에서 발하는 철학적·시적·종교적 떨림과 여운이 그 어떤 작품보다 명징하다는 평가다.

1923년 러시아에서 태어나 10대에 미국에 이민 간 로스코는 넓게는 추상미술, 표현주의, 초현실주의, 색면회화까지 다양한 변화를 시도하다 1970년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비록 길지 않은 삶을 살았지만, 그가 남긴 그림은 낙담과 절망 속에서도 열정과 환희라는 새로운 삶의 의지를 선물한다는 점에서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아 왔다. 모르긴 해도 이번 전시 또한 그 연장선상에서 읽힐 가능성이 크다. 단, 마크 로스코의 그림을 제대로 느끼려면 누가 누구에게 영향을 받았다든지, 어떤 주의(主義)에 함몰된다든지 하는 따위의 쓸데없이 갖다 붙인 수사는 무시해야 한다. 그저 그림과 단독으로 대면할 경우에만 제대로 된 울림을 체험할 수 있다. 그의 그림 앞에서 사족은 짐이니까.

<홍경한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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