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자와 손숙, ‘무대는 내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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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밤 무대 위에서 다른 사람의 삶을 대신 살아가는 사람들, 그리고 이를 통해 관객으로 하여금 자기 자신의 모습을 비춰 보도록 만드는 사람들, 우리는 그들을 ‘배우’라 부른다. 막이 내리면 곧바로 사라지는 공연예술의 특성상, 대부분의 배우들은 평생 수많은 작품의 다양한 인물이 되어 매번 다른 삶을 살아내곤 한다. 하지만 때로는 한 배우가 한 작품의 배역을 짧게는 수년, 길게는 수십년 계속 맡으며 자신의 무대인생과 실제 삶을 함께 가져 가는 경우도 있다. 현재 공연 중인 연극 <해롤드 & 모드>와 <어머니>가 바로 그런 작품들이다.

연극 <해롤드 & 모드>와 <어머니>는 각기 박정자와 손숙이라는, 우리 연극계를 대표하는 두 여배우에게 유난히 깊은 의미를 지닌 작품들이다. 두 연극 모두 박정자와 손숙이 초연 때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이끌어왔다는 점에서, 그리고 배우 스스로 가장 애착이 가는 무대라고 밝히고 있다는 점에서 각별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매일같이 새로운 작품들이 무대에 올랐다 사라지는 오늘의 공연계에서, 같은 배우가 출연하는 한 편의 연극이 그토록 오랜 시간 꾸준히 관객의 사랑을 받아왔다는 것은 그 자체로 의미 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연극 <해롤드 & 모드> | 샘컴퍼니 제공

연극 <해롤드 & 모드> | 샘컴퍼니 제공

콜린 히긴스 작, 양정웅 연출의 <해롤드 & 모드>는 늘 죽음을 생각하는 19세 청년 해롤드가 생기와 생명력으로 충만한 80세 모드 할머니를 만나 충만한 인생을 배워가는 과정을 따뜻한 감성과 위트로 그린 작품이다. 삶의 지혜가 가득 담긴 원작 자체도 매력적이지만, 이 공연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모드 역을 맡은 배우 박정자의 작품에 대한 지극한 사랑이다. 한 작품을 몇 년씩 계속해서, 그것도 같은 날짜에 올린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닌데도 박정자는 매년 1월 9일, 환한 미소를 띤 모드가 되어 무대에 선다. 초연 때부터 밝힌 그녀의 꿈, 건강이 허락하는 한 80세까지 매년 모드로 무대에 서겠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다.

초연 이후 이미 여러 차례 공연되었지만 <해롤드 & 모드>는 매번 모드 역만 빼고는 연출과 무대, 배우 모두가 새로워진다. 이번 공연을 맡은 양정웅 연출은 선명한 색감과 경쾌한 리듬으로 한층 젊고 세련된 감각의 무대를 펼쳐놓았다.

연극 <어머니> | 명동예술극장 제공

연극 <어머니> | 명동예술극장 제공

연출가 이윤택과 배우 손숙이 15년 넘게 호흡을 맞춰온 연극 <어머니>는 초연 이래 꾸준히 공연을 이어오면서 연희단거리패의 대표 레퍼토리 중 하나로 자리 잡은 작품이다. 이윤택 연출이 실제로 자신의 어머니에 대한 기억과 회상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자전적 작품인 <어머니>는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 분단의 한국사를 배경으로 고된 시집살이를 견디며 전쟁 통에 자식의 죽음까지 감내해야 했던 우리네 어머니들의 한 많은 인생살이를 담고 있는 작품이다. 또한 배우고 싶어도 배우지 못하고 ‘여인의 삶’이란 굴레 속에서 인식에 대한 갈망을 감추고 살아야 했던 여성의 아픔을 그리고 있기도 하다. 1999년 공연부터 이 작품과 함께해온 손숙은 초연 당시 “앞으로 20년간 이 작품에 출연하겠다”고 이야기한 바 있다. 실제로 지난 15년간 꾸준히 이 작품과 함께 울고 웃으며 스스로의 약속을 지켜왔다. 작품 속 ‘어머니’처럼 실제 밀양 출신으로 자연스러운 경상도 사투리와 말투 속에 자식에 대한 절절한 마음과 애틋함을 전하는 손숙의 <어머니>는 언제나 관객으로 하여금 마음속 원형적인 어머니상을 떠올리게 한다. 손숙의 <어머니>는 2월 16일까지 명동예술극장, 박정자의 <해롤드 & 모드>는 2월 28일까지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공연된다.

<김주연 연극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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