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령 육영재단 전 이사장 “‘형님’ 본 지 가물가물 너무 외로울 것 같아 가슴 아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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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청와대는 미국 정치드라마나 추리소설의 무대 같다. 청와대 비선과 실세 논란이 끊이지 않더니 급기야 검찰 수사의 대상이 됐다. 비선의 실세로 불리는 정윤회씨는 “누가 불장난을 한 것”이라고 결백을 주장했고, 대통령의 남동생 박지만씨는 “피보다 진한 물도 있더라”란 말로 정씨를 겨냥하기도 했다. 청와대의 궁중권력을 둘러싸고 별의별 설이 난무하는 와중에 갑자기 바빠진 사람이 있다. 박 대통령의 여동생이자 육영재단의 전 이사장인 박근령씨다. 대통령 주변 얘기를 한마디라도 더 들으려는 언론들의 인터뷰 요청이 쇄도하고 있는 것이다. 언니와 남동생이 구설에 오르고 있는 요즘, 박 전 이사장을 만나 대통령의 딸, 대통령의 동생으로 사는 삶에 대해 들었다.

청와대 문건 유출로 언니인 박근혜 대통령도 상처를 받았고, 동생인 박지만 EG 회장도 검찰에 출두했습니다. 엄동설한이 더 춥게 느껴질 것 같습니다.
“한 가족으로 그리고 국민의 한 사람으로 가슴이 아픕니다. 특히 이 사건과 연루된 최모 경위가 자살로 안타깝게 생을 마감한 데 대해 심심한 애도를 표합니다. 비선이니 실세니 하지만 너무 오해가 많고 언론들도 그런 분위기에 가세해 더더욱 파장이 컸던 것 같습니다. VIP(대통령)께서도 겉으론 내색하지 않으셔도 속으로는 많이 우셨을 겁니다. 잘 돌보지도, 만나지도 못하는 남동생이 검찰까지 드나드는데 마음이 편하겠습니까. 그러나 이제라도 국민만 바라보고 국정을 하고, 국민에게 더 잘해야겠다는 의지를 다지셨을 겁니다.”

[유인경이 만난 사람]박근령 육영재단 전 이사장 “‘형님’ 본 지 가물가물 너무 외로울 것 같아 가슴 아파”

그럼 비선이나 실세의 실체가 없다고 생각합니까.
“VIP께서 청와대의 실세는 진돗개란 말을 하셨죠. 그 말의 행간을 읽어야 합니다. 저는 요즘은 못 만나지만 어린 시절부터 몇십 년을 봐온 자매 사이라 형님(대통령)의 화법을 잘 이해합니다. 형님은 간접화법과 비유화법을 잘 쓰죠. 이번에 말씀하신 진돗개의 경우도 진돗개의 주인이 누구인가요, 대통령 아닙니까. 정윤회씨와 과거 인연이 있었더라도 7년 전쯤 결별 이후에 아무 연관이 없다는 뜻입니다. 또 제 동생인 박 회장의 경우도 무슨 자리에 오르려고 하거나 권력을 누리려는 야욕이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주변에서 만난 사람 중 훌륭한 인재라면 추천할 수도 있겠죠. 그러다 게임의 법칙에 따라 퇴장할 수도 있고요. 제 생각입니다만, 저는 오히려 이번 사건이 실세, 비선 등 온갖 잡음을 다 털어내는 좋은 기회가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누군가 동생과 정씨를 이간질하려 했을 수도 있고요. 아무튼 VIP에게 치명적 상처를 준 사건이 아니라 오히려 청와대나 측근을 바로잡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자매 사이에야 은유나 비유 화법을 해석할 수 있지만 보통 사람들은 어떻게 알겠습니까. 그렇다면 요즘 대통령의 발언을 보고 뭔가 달라진 점을 느낍니까.
“단어 선택이 굉장히 강하고 단호해졌습니다. 여성들이 충격적 사건을 겪으면 심경 변화를 일으켜 긴 머리를 자른다거나, 차가운 겨울 바다를 다녀오는 등 마음을 다잡기 위한 행동을 합니다. 그런데 최근 VIP의 말씀을 들어보면 개인 박근혜나 국회의원 시절과 달리 거침없고 강한 표현을 씁니다. 예를 들어 규제개혁을 강조하며 단두대란 단어를 쓰기도 하고 좀 과격하다 싶은 용어를 사용하는 것은 자신만이 아니라 청와대, 사회, 국가가 달라져야 한다는 것을 은연중 표현한 겁니다.”

비선은 없다고 강조했지만, 정윤회씨와 친분은 없나요.
“1998년에 형님이 국회의원에 출마했을 때 선거운동을 하면서 몇 번 인사는 나누었을 겁니다. 그분은 자신을 노출시키는 사람이 아니고 저도 당시엔 그분이 누구이고 어떤 일을 하는지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의 전 부인 최순실씨와도 인연이 없고요. 저도 주변에서 그들에 대한 별별 이야기를 다 듣지만 직접 본 적이 없으니 뭐라 할 말이 없습니다.”

이 사건이 터지면서 노태우 대통령에게 보냈던 탄원서가 다시 화제에 오르더군요. 어느 인터뷰에서는 직접 쓴 것이 아니라고 하지만 분명히 박근령 이사장과 박지만 회장 남매가 쓴 내용인데요. 정윤회씨가 당시 탄원서의 주인공인 최태민 목사의 사위여서 더욱 그럴 겁니다.
“벌써 24년 전 일입니다. 저는 당시 미국에서 새로운 인생을 준비하고 있던 터라 국내 사정에는 어두웠습니다. 잠시 귀국했는데 주변에서 전해주고 들려오는 소문들이 정말 심각했습니다. 지인들도 형님과 연락이 제대로 안 된다면서 걱정을 많이 했고요. 형님과 직접 만나서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하려 했지만 잘 되지 않아서 누군가 초안을 잡아온 것을 읽어보고 저와 동생이 사인을 한 것은 맞습니다. 동생도 큰누나 걱정을 많이 했으니까요. 그래서 노태우 대통령에게 전달된 것인데 어쩌다 공개가 되었습니다. 형님도 상처가 컸고 동생들에게 배신감을 느꼈을지 모르지만, 주변을 정리하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후 국회의원이 되어서 공직기강을 바로잡고 당을 바로 세우는 데 최선을 다하지 않았습니까.”

친인척의 근황이 매주 대통령에게 보고된다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대통령을 직접 만난 것은 언제인가요. 또 아무리 대통령이라고 해도 친남매를 너무 멀리하는 것이 서운하지는 않습니까.
“마지막으로 본 것은 하도 오래 전이라 기억이 가물가물합니다. 다른 사람을 통해 전해 듣기로는 형님께서 저나 동생 걱정을 많이 하신다더군요. 서운한 것은 없습니다. 다만 VIP가 너무 외로우실 것 같아 가슴이 아픕니다. 독신이라서 외로운 게 아니라 측근이 없어서 그렇습니다. 얼마 전 박지원 의원을 만났는데 과거 이명박 대통령에 대해 비판하거나 심한 욕을 하면 임태희, 이재오 의원 등이 전화로 항의를 하기도 하고 해명도 해서 소통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 VIP가 정치인들이나 언론에서 뭇매를 맞아도 그 누구도 나서서 옹호를 하거나 보호해주는 측근이 없다면서 ‘정말 외로운 분’이라고 하더군요.”

청와대에서 몇 살 때부터 지냈죠? 박정희 대통령은 국가발전의 영웅 아니면 독재자란 극단적 평가를 받는데, 부모로서는 어떠셨나요.
“1964년, 그러니까 제가 초등학교 4학년 때 청와대에 들어갔습니다. 한창 감수성이 예민한 청소년기와 대학 시절을 그곳에서 보냈죠. 밥상머리에서의 대화도 가뭄, 폭우 등 나랏일에 관한 게 많았습니다. 특히 어머니는 우리의 말과 행동 하나하나가 아버지에게 흉이 되면 안 된다고 주의를 주셨지요. 그런 환경 덕분에 저도 매일 뉴스를 보고 나라 걱정을 하고, 마음 아파하고 좋은 소식은 제 일처럼 기쁘고 그렇습니다. 더구나 형님은 큰딸이고 어머님이 돌아가신 후에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대행하셨으니 나라 걱정이 체화되었을 겁니다.”

[유인경이 만난 사람]박근령 육영재단 전 이사장 “‘형님’ 본 지 가물가물 너무 외로울 것 같아 가슴 아파”

자식을 잃은 세월호의 단원고 학생 유가족, 그리고 친구를 잃은 생존자 학생들이 지금 심리치료를 받고 있다고 합니다. 부모님을 모두 총으로 잃으신 그 트라우마를 어떻게 극복했는지요, 특별한 심리치료를 받은 적은 없습니까.
“저희는 슬픔에 빠지거나 가눌 여유가 없었습니다. 형님은 상주가 되어 조문 온 문상객을 맞느라 의연함을 유지해야 했고요. 아버님이 돌아가신 후 신당동 옛집으로 돌아왔는데 우리 주소를 아는 분들이 위로 편지를 매일 한 박스씩 보내왔어요. 형님은 아버지가 쓰시던 나무책상을 창가에 놔두고 의자에 앉아 그 편지들에 답장을 쓰는 일을 주로 했습니다. 저는 형님의 심부름으로 답장 보낼 카드를 사러 갔던 기억이 납니다. 아마 우리는 대통령의 딸들이어서 개인적 슬픔보다는 그때도 나라를 위해서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가가 더 중요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육영재단 일을 맡으면서 다시 박지만 회장과 재판까지 갈 만큼 다툼을 하고 다른 곳에서도 수십 건 소송을 당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육영재단은 어머니가 만든 기관이어서 정말 애정이 컸습니다. 그런데 주변에서 위해를 가하거나 시비를 거는 이상한 사람들이 너무 많았어요. 그런 일이 생길 때마다 직원들과 상의하고 법률고문의 조언을 얻으며 고통을 감내했지만 정말 다시는 되돌아가고 싶지 않은 시간입니다. 그런 일을 겪으면서 숱이 많던 머리카락도 빠지고 치아가 튼튼했는데 잇몸도 흔들리고 퇴행성 관절염이 생겨 한동안 절뚝거리며 지냈습니다. 악몽 같은 시절이었죠.”

빚이 많다고 들었습니다. 남편인 신동욱 공화당 총재는 파산신청을 하려고 했다던데요.
“당시 육영재단이 굉장히 어려웠어요. 여기저기에서 자금 융통을 하다 보니 채무자가 되었습니다. 부모님이나 형님을 생각하면… 어떻게 대통령 딸이자 여동생이 파산신청을 합니까. 그리고 갚을 능력과 의지가 없다면 모를까, 지금 부지런히 일하고 있습니다.”

박지만 회장은 돈이 많은데 안 도와줍니까.
“몇 번 고생한다고 생활비를 보태준 적은 있지만 저도 올해 환갑인 어른이고 남편도 있는데 왜 남동생이 제 생계를 책임지겠어요. 제가 열심히 벌어서 채무를 갚아야죠.”

그럼 요즘 무슨 일을 합니까.
“바이오운동본부의 총재직을 맡아 부지런히 일합니다. VIP가 창조경제를 강조하는데 대한민국이 경제 재도약을 하기 위해서는 미래 경쟁력과 생산성, 수익성이 가장 높은 바이오 산업을 육성해야 합니다. 현재 가장 중요한 것은 고용창출을 통한 양극화 해소가 아닐까요. 그래서 ‘다·소·생’이란 일종의 소비자생활협동조합 운동을 펼치는 중입니다. 다소생이란 ‘다있다’ ‘소비자’ ‘생활협동’의 준말인데 합쳐보니 모두가 다 소생하라는 뜻이기도 하더군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돈이 사랑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바이오 상품을 개발해 그걸 협동조합을 통해 판매하고, 그 수익금을 조합원이 고루 나누는 것입니다. 이 운동이 창조경제의 모범사례가 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만약 대통령을 직접 만난다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까.
“대통령이 모든 걸 다 챙기고 관리하겠다는 마음을 버리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임기는 유한하고 책임은 무한한 게 대통령이죠. 이제 3년 남은 임기에 어떻게 모든 일을 다 합니까. 역대 대통령들도 다들 경제를 강조했지만 경제실무는 전문가들에게 맡겼거든요. 시대상황에 따라 신현확 총리는 긴축, 남덕우 총리는 성장, 조순 총리는 분배 등을 강조하며 경제를 관리했죠. 복지도 마찬가지고요. 대통령은 오히려 국민 정신교육에 주력하셨으면 합니다. 아버지가 정신문화연구원을 만들어 새마을운동만이 아니라 새마음운동, 그리고 황폐하고 빈곤한 정신을 풍요롭게 하는 사업도 많이 하셨거든요. 국민 정신의 안정과 영성 문화를 일깨워야 할 때 같아요. 보이지 않는 것이 보이는 것을 끌고 나가지 않습니까. 1968년에 우리나라에서 세계 문인들이 모인 펜클럽 대회가 열렸는데 해외언론에서도 격찬을 했습니다. 그런 한국인의 정신문화 고취에 더 관심을 가지기를 바랍니다.”

대통령의 딸이나 동생으로 부귀영화보다는 수난을 더 겪은 것 같은데 억울함은 없습니까.
“전혀요. 그런 것에는 초월했습니다. 무엇보다 저는 자유인입니다. 비선이니 실세에 연관되지 않는 자유인이 얼마나 행복한지요.”

그럼 박 이사장에게는 국가가 먼저입니까, 언니가 먼저입니까. 언니인 박 대통령이 혹시 국가에 폐를 끼친다면 그래도 언니 편을 들 겁니까.
“저는 어릴 때부터 부모님께 가족보다 국가가 더 우선이고 소중하다는 교육을 받고 자랐습니다. 아마 제 남편에게 비슷한 질문을 던져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만약 바다에 저와 형님이 동시에 빠졌다면 아내인 제가 아닌 국가의 대통령을 먼저 구해낼 것이라는 데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적어도 제 가족은 국가가 가족보다 중요하다고 배웠습니다.”

박 전 이사장의 국가관은 정말 의심의 여지가 없어 보였다. 때때로 맹목적으로 느껴질 정도였다. 박 전 이사장은 언니와 달리 그 열정을 국가에 제대로 바칠 기회가 없었다. 그는 스스로를 자유인이라고 불렀다. 그런데 그게 행복일까, 불행일까….

<글·유인경 경향신문 선임기자 alice@kyunghyang.com>
<사진·이상훈 선임기자 dool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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