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피수선 전문가 오영자씨 “헌옷이 전혀 다른 옷으로, 모피수선의 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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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영자씨는 모피 수선 전문가다. 서울 압구정동에 있는 그의 가게에는 ‘since 1964’란 문구가 ‘오영자 모피’라는 상호만큼 크게 새겨져 있다. 대한민국, 아니 세계에서 유일하게 자신의 이름을 브랜드로 걸고 일하는 데서 그의 자부심을 엿볼 수 있다.

갑작스럽게 닥친 추위에 극심한 불경기로 상가나 소비자의 마음이 더 꽁꽁 얼어붙고 있지만 그의 가게는 오히려 성업 중이다. 새로운 모피를 사지 못하는 대신 예전에 입던 모피의류를 고쳐 입으려는 이들의 발길이 이어지기 때문이다. 해외에서도 수선 주문이 많다. 동물보호단체의 지탄을 받고 수년 전부터 패딩의류의 인기로 모피산업이 하향곡선을 그리는 요즘, 50년을 모피와 함께 산 오영자씨를 만났다. 그의 50년 모피인생은 패션인생이 아니라 대한민국 산업사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유인경이 만난 사람]모피수선 전문가 오영자씨 “헌옷이 전혀 다른 옷으로, 모피수선의 묘미”

기성복도 제대로 입기 어려운 1960년대에 어떻게 모피를 접하게 되었습니까.
“고향인 전북 이리에 살고 있을 때였습니다. 어느날 신문에서 당시 미국 대통령 부인인 재클린 케네디가 호피 코트를 입고 있는 사진을 봤습니다. 프랑스 드골 대통령에게서 선물받은 호피 코트였습니다. 재키 덕분에 모피패션이 프랑스와 미국에서 대유행한다는 기사였습니다. 당시 우리나라는 호피는커녕 고양이털도 의상으로 생각하기 어려울 때였죠. 마침 저의 집에서 농촌운동 차원으로 토끼를 기르고 있었습니다. 문득 토끼털을 호랑이 무늬로 염색해서 제품을 만들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바로 전북대 공대를 찾아가 염색공부를 하고 싶다고 했더니 제일모직의 염색과장님을 소개해주더군요. 석유풍로에 냄비를 놓고 염료를 조절해가며 염색기법을 배운 끝에 드디어 호피무늬를 내는 데 성공했습니다. 처음 만든 건 옷이 아니었어요. 침대 커버와 바닥깔개 등 호피무늬 토끼털 소품을 만든 것이 전북 특산품으로 선정되어 전국 특산품 품평회에 출전하게 되었답니다. 그 작품을 만들기 위해 모피 전문가가 된 셈이죠. 그게 1964년의 일입니다.”

한 번 만든 작품으로 모피 전문가가 될 수는 없을 텐데요.
“1964년 도쿄올림픽에 참가했던 외국인들이 자연스럽게 한국도 방문해서 현재 무역진흥공사에서 대대적인 전시를 했습니다. 제 작품을 본 오재경 관광공사 사장이 일본에서 앙고라 토끼를 들여오기로 했습니다. 마침 대일청구권이 이뤄져 농산품, 공산품 등을 일본으로부터 받을 수 있었거든요. 앙고라 토끼의 경우, 두 달에 한 번 정도 털을 솎아 뽑으면 죽이지 않고 계속 털을 얻을 수 있습니다. 털로는 각종 앙고라 제품을 만들고, 고기는 식생활에 활용할 수 있다는 판단이었습니다. 앙고라 토끼 한 마리 값이 3000원이었는데, 당시 5급 공무원 월급과 비슷했습니다. 300마리의 앙고라 토끼를 일본에서 수입했고 그 가운데 100마리가 특상을 탄 제 고향인 전북에 배당되었습니다. 앙고라 토끼를 보낸 일본에서도 앙고라털을 수입하겠다고 약속해서 정말 환상적인 조건이었죠. 저는 친정아버지 농지를 담보로 100마리를 받아 앙고라 토끼를 관리하는 한편 앙고라털로 옷을 만들기 위해 각종 모피 공부를 했습니다. 덕분에 저는 ‘토끼 아가씨’로 불리며 전국에 유명세를 탔죠. 1965년 여성지 <여원>에 <자유부인>으로 유명한 소설가 정비석 선생이 ‘팔도강산 여성풍물’이라는 제목의 글을 연재했는데, ‘토끼의 여왕 오영자’란 제목으로 저를 인터뷰했습니다. 2년 동안 토끼를 번식시켜 농가에 분양했고, 계속 앙고라털로 스웨터 등 의류를 만들어 수출도 했습니다. 그런데….”

무슨 문제가 생겼나요.
“전국적으로 앙고라 토끼를 많이 분양했고, 토끼가 번식력이 좋아 전국 농가에서 토끼붐이 일었습니다. 그런데 일본에서 4년 뒤에 앙고라털 수입을 중지했어요. 앙고라털로 만든 제품은 털이 쉬 빠진다는 핑계를 대면서 갑자기 수입중지 결정을 내린 겁니다. 일본 수출만 믿고 토끼를 기르던 농가들은 졸지에 망하게 되었습니다. 막차를 타서 앙고라 토끼를 구입해 기른 농가의 피해는 막심했죠, 허망해서 자살한 이도 나왔습니다. 저는 졸지에 농촌을 부흥시킨 토끼 여왕에서 사기꾼으로 몰렸고, 농민들에게 머리채까지 잡히는 수모도 당했습니다. 어디 토끼뿐인가요. 우리나라는 그때나 지금이나 너무 근시안적으로 농촌계획을 세워요. 어느 때는 돼지 기르던 집이 망하고, 어느 때는 소 때문에 울고, 양파 심어서 망하고…. 요즘 저출산 문제가 심각하다고 하는데 불과 20년 전만 해도 남자들이 예비군 가면 정관수술을 해주지 않았나요? 둘도 많다면서…. 정말 정부의 제대로 된 정책이 절실합니다. 아무튼 그 후 여고에서 가사 선생으로 근무했지만 너무 억울하고 제대로 모피 공부를 하고 싶어서 일본 유학을 결심했습니다. 그런데 유학이 어디 쉬운가요. 제가 하도 일본 유학, 일본 유학 노래를 부르니 우리 동네에서는 가능성 없는 이야기를 하면 ‘영자 일본 가는 이야기한다’는 우스갯소리가 만들어질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결국 일본 유학을 떠났죠.”

1960년대에는 미혼여성은 여권을 얻기도 힘들 때였는데요. 대학도 아니고 모피 기술을 익히려는 유학을 어떻게 떠났습니까.
“일본에 속은 것이 분하고, 저 때문에 피해를 본 축산농가에 보답하는 길은 제가 진정한 모피 기술 전문가가 되는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진짜 모피를 제대로 다루는 실력을 익히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당시 영부인인 육영수 여사에게 편지를 써서 왜 제가 일본 유학을 가야 하는지를 호소했습니다. 그게 육 여사 마음을 움직였는지 정부 유학생 신분으로 기적처럼 일본 유학을 가게 됐습니다. 일본에 도착하자마자 농림성 축산과 가축 담당자를 찾아가 ‘왜 당신들이 한국인을 속이느냐’며 멱살 드잡이를 했죠. 너무 억울하고 분해서 잠시 이성을 잃었나 봅니다. 그런데 농림성에 수입허가를 받으러온 스미토모상사 직원이 저를 보고 마침 자기네 회사에서 미국에 모피제품을 만들어 수출하니 와서 모피 공부를 하라고 했습니다. 그곳에서 각종 원피 공부, 모피 재단과 염색, 미싱, 안감 마무리 등의 전 공정을 익혔습니다. 물론 모피 수선도 배웠지요.”

[유인경이 만난 사람]모피수선 전문가 오영자씨 “헌옷이 전혀 다른 옷으로, 모피수선의 묘미”

모피 수선이라면 대부분 전문업체나 세탁소 등에서 하는데 패션의 거리 압구정동에 진출한 이유는 뭔지요.
“고가의 모피패션 전문점 근처에 있어야 수선품도 많이 들어오니까요. 과거엔 국내 모피 브랜드가 없어 대부분 해외에서 구입했습니다. 그러니 우리 체격에 맞을 리가 없죠. 모피 수선 수요는 엄청 많은데 전문업체나 전문가가 없으니 수선비용이 몹시 비쌌습니다. 해외제품의 경우 외국 본사에 수선을 맡기면 3~6개월이 걸리기도 하고 수선비도 만만치 않았죠. 옷으로 만들어질 수 있는 동물 모피는 밍크부터 다람쥐까지 250여종입니다. 여우, 밍크 등 동물에 따라 털과 가죽의 특성이 다르고 같은 밍크라 해도 한 마리당 크기와 모양새, 색깔이 달라 10년 이상 모피를 다루지 않고는 제대로 수선을 할 수가 없습니다. 모피 수선은 옷을 만드는 것보다 더 어렵고 복잡합니다. 다른 옷처럼 특정 부분의 길이를 자르거나 덧대기도 하지만, 전체를 대대적으로 분해해서 전혀 새로운 옷을 만드는 것이 묘미입니다. 할머니가 입던 밍크 롱코트를 분해해 엄마의 반코트와 손녀의 세련된 조끼를 만들 수도 있고, 반코트의 경우도 팔부분을 잘라 밑단을 대면 긴 길이의 최신 유행 조끼가 됩니다. 덕분에 국내는 물론 일본, 홍콩 등에서 수선 주문이 계속 들어옵니다. 길이만 잘라내면 30만원, 전체 디자인을 바꾸는 리모델링은 120만~150만원 정도의 비용이면 충분하니 고가의 신제품을 살 이유가 없죠.”

<로마인 이야기>의 작가 시오노 나나미는 ‘보석의 차가움과 모피의 부드러운 감촉에 매료되지 않는 여성은 여자도 아니다’란 말을 했죠. 그만큼 모피는 여성들에게 유혹적입니다만 최근에는 모피를 얻기 위해 동물을 처참하게 죽이는 모습이 공개되면서 모피산업에 관련된 이들은 물론 모피를 입는 여성들도 비난을 받습니다. 나오미 캠벨이나 케이드 모스 등 슈퍼모델들이 누드로 동물보호 캠페인 포스터를 촬영하고도 정작 겨울에는 모피로 온몸을 휘감고 등장해 빈축을 사기도 했고요.
“텔레비전이나 인터넷 동영상으로 공개된 장면은 아주 극악한 사례입니다. 아주 참혹하고 정말 무식하게 살육을 했더군요. 그런데 그렇게 야생에서 자란 동물의 털들은 너무 거칠고 질이 나빠 모피 전문가들은 사용하지 않습니다. 밍크나 여우 등 원피를 생산하는 나라는 미국, 러시아, 캐나다, 동구 등 몇 나라에 지나지 않고 큰 기업체에서 동물 사육부터 원피 경매까지 다 관리합니다. 대부분 야생이 아니라 특별하게 사육을 합니다. 동물 개체수도 다 고려하고 국제법으로 금지된 동물의 모피는 절대 제품으로 만들지 않습니다. 모피 원피 경매시장에서 생긴 이익의 일정 금액을 동물보호단체에 기부하고 있습니다.”

모피는 실용성보다는 럭셔리함, 즉 사치함이 더 큰 것 같은데 인조모피를 활용하면 되지 않을까요.
“한때 세계 패션계에서 인조모피가 대단한 선풍을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인조밍크, 인조양털 등이 인기를 누렸지요. 그런데 요즘은 인조모피 제품이 많이 사라졌습니다. 말이 인조모피이지 플라스틱 같은 화학제품으로 만든 것입니다. 모피는 동물가죽이나 털이어서 입지 않고 놔두면 삭아 없어집니다. 잘 관리하면 반영구적이긴 하지만요. 그런데 인조모피나 최근 유행하는 패딩제품은 땅에 묻으면 썩는 데 수백년이 걸립니다. 프랑스나 캐나다산은 점퍼 한 벌에 수백만원이 넘는 고가이기도 하고요. 자연환경 보호 차원에서도 오히려 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요즘 스피드패션이라고 해서 일주일에 수백 가지 디자인이 쏟아지는 SPA제품의 경우도 대체 그 남은 재고품을 어떻게 소화하며 물류비용, 이동하는 데 드는 비용을 생각하면 골칫덩이가 아닐까요.”

모피패션도 유행을 타죠.
“그럼요. 요즘은 동물보호가 엄격해져 가축 자체를 엄격히 규제하고 밍크의 경우 전 세계 공급량도 정해진 탓에 원피 가격이 엄청나게 올라서 전체를 모피로 만든 제품은 찾기 드뭅니다. 모직이나 가죽 등의 다른 소재에 털을 부분적으로 덧대는 등의 다양한 디자인 제품이 많죠. 그래서 젊은층들이 모피패션을 즐깁니다. 모피 가격은 일반 옷감처럼 원단공장에서 제안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 경매시장에서 형성되어 디자인 감각만으로 마음대로 소재를 다룰 수도 없어요. 물론 모피라고 다 고가는 아닙니다. 양털, 토끼털 등은 비교적 저렴하고 색상도 자유자재로 염색할 수 있어 젊은층의 패션소품으로도 인기죠. 또 남성 소비자들도 늘어나서 겉은 옷감이고 속감을 모피로 만든 재킷이나 코트를 찾는 이들도 많습니다.”

모피 수선 전문가로서 필요한 자질이 있나요.
“모피 수선을 잘하려면 손재주나 패션감각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인내심입니다. 고객들이 대부분 부유층에다 자신의 모피옷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높습니다. 그만큼 까다롭지요. 모피를 수선하면 완전히 새 상품으로 탄생한다고 믿으며 억지 주장을 하는 이들도 있어서 잘 설명하고 설득을 해야 합니다. 또 모피는 동물 털이라 반영구적으로 수명이 긴 제품이지만 물이나 불, 기타 자극에 약해 신제품이 아니라 수선을 해도 자동차보다 더 자주 애프터서비스가 필요합니다. 고객의 이야기와 요구를 잘 들어주고 경기 흐름에 일희일비하지 않아야 하고요. 무엇보다 외국에서도 우리에게 수선 주문을 하니 나름 애국한다는 자부심도 큽니다.”

오영자씨는 지난 50년간 유류파동이나 IMF도 겪었지만 요즘처럼 국내 소비심리가 위축된 것은 처음 본다고 했다. “세월호며 최근 정치 상황이 국민들을 우울증에 빠지게 한 것 같아 안타깝다”며 자신의 사업보다 한국 경제를 걱정했다.

<글·유인경 경향신문 선임기자 alice@kyunghyang.com>
<사진·이상훈 선임기자 dool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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