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동아시아에서 가장 적은 핵사고 배상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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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마피아가 ‘값싸고 안전하다’는 공허한 신화를 계속 주장하려면 먼저 보상계약법의 즉각 폐지와 함께 예상피해액을 반영한 실효성 있는 배상제도로 전환해야 할 것이다.

핵발전소는 상업화 개시 후 60여년이 지나도 여전히 정부의 두터운 보호 없이는 시장경쟁에서 생존할 수 없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핵분열 이용이라는 미완성 기술의 결함을 극복하지 못하면서 핵발전소는 여러 보호 장치를 갖춘 인큐베이터 속에서만 숨쉬어야 하는 미숙아의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핵없는사회를위한공동행동 활동가 등이 11월 4일 서울 광화문 원자력안전위원회 앞에서 월성 1호기 사용후 핵연료봉 파손사고 진상규명과 사고 은폐에 대한 책임자 처벌을 촉구하고 있다. | 강윤중기자

핵없는사회를위한공동행동 활동가 등이 11월 4일 서울 광화문 원자력안전위원회 앞에서 월성 1호기 사용후 핵연료봉 파손사고 진상규명과 사고 은폐에 대한 책임자 처벌을 촉구하고 있다. | 강윤중기자

핵발전소의 호흡을 유지시키는 생명선으로서 가장 중요한 것이 ‘원자력손해배상법’(이하 원배법)과 ‘원자력손해배상보상계약에 관한 법률’(이하 보상계약법)로 구성된 원자력손해배상제도다. 1957년에 미국의 군·산복합체가 핵발전소의 상업화를 추진할 때 산업계는 핵발전소 사고에 따른 피해의 거대화 및 장기화에 대한 보완책으로 사업자 배상책임의 제한(6000만 달러)과 미국 정부의 지원조치(5억 달러)를 규정한 원자력손해배상법(이하 PA법)의 제정을 요구했다. PA법은 기본 원칙으로 사업자의 무과실 책임주의, 사업자에 배상책임 집중, 배상책임액의 사전(事前) 확보 등을 규정하고 있다. 게다가 피해자를 위한 배상제도인데도 불구하고 핵산업의 건전한 발전이라는 이중목적의 도입으로 가해자(사업자) 보호까지 규정했다. 피해자도 보호하고, 가해자도 보호하는 희한한 법이 만들어진 것이다. 그런데 이중목적이 상업화 초기에 민간 기업의 참가를 촉진하기 위해 특별히 도입된 것인데도 불구하고 60여년이 지난 지금도 대부분의 국가가 유지하고 있다. 즉 핵마피아 스스로가 아직도 핵발전소의 안전신화를 믿지 않는다는 명백한 증거인 셈이다.

핵마피아 스스로 안전신화 못믿는 증거
한편 1950년대 말부터 미국은 핵발전소의 해외수출을 추진하면서 일단 핵발전소를 인도한 후에는 사고가 발생해도 미국 수출업자(웨스팅하우스, 제너럴 일렉트릭)의 제조물 책임을 면제하는, 즉 발전사업자에게만 배상책임을 집중시키는 원자력손해배상제도의 제정을 각국 정부에 촉구했다. 1960년에 일본 정부의 위탁연구로 일본 원자력산업회의(현 원자력산업협회)가 미국의 사고 피해 시뮬레이션(WASH-740)을 소형 핵발전소(전기출력 16만6000kW)에 적용한 결과 최대 540명의 조기 사망 및 3조7000억 엔의 피해를 예측했다. 후자는 일본의 정부예산 1조6000억 엔의 2배 이상 규모였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1961년 제정한 원배법에서 사업자의 배상책임액을 형식적으로는 무한으로 하면서도 실질적으로는 50억 엔의 배상조치액을 도입, 사업자 배상책임을 제한하는 특별조치를 빼놓지 않았다. 덧붙이면 일본 정부는 야당의 끈질긴 질문에도 불구하고 예측 결과를 1999년에 공개할 때까지 약 40년간 시뮬레이션의 실시조차 부인해 왔다.

그리고 해외 보험업계가 일본에 자연재해, 특히 지진·쓰나미·화산 등이 많다는 이유로 일본의 원자력 손해에 관한 재보험의 인수를 거부하자 일본 정부는 자연재해 등에 의한 원자력 손해를 담보하는 정부 운영의 재보험방식 즉 보상계약법도 세계 최초로 제정한다.

한편 한국이 1969년에 도입한 원자력 손해배상제도는 일본의 제도를 마치 직역한 듯이 거의 100% 베낀 탓으로 국내 사정과는 전혀 맞지도 않는 보상계약법까지 도입됐다. 현재 세계에서 보상계약법까지 제정해 핵발전소의 보호에 철저한(?) 나라는 한국과 일본 두 나라뿐이다. 따라서 국내의 원자력 손해배상제도도 일본 못지않게 일반 상식으로는 납득할 수 없는 내용들로 가득차 있다. 첫째 사업자인 한수원까지 보호하도록 돼 있다. 독일의 원배법은 1970년대에 사업자 보호를 삭제했고, 과거 각국의 환경보호법도 기술진보에 따라 산업의 구제(지원) 조항을 삭제·변경해 왔다.

둘째 대통령령으로 낮은 배상조치액(배상 한도)을 설정하고 있다. 제정 당시는 사업자의 배상책임액이 무한이었지만 대통령령으로 겨우 15억원으로 배상조치액을 제한하고 있었다. 일반적으로 배상조치액은 원자력 책임 보험을 담당하는 한국원자력보험풀 및 재보험관계인 각국 원자력보험풀의 인수능력에 의해 결정되나 핵마피아는 전기 사업자의 보험료를 낮추기 위해 매우 낮은 배상조치액을 설정해 왔다. 배상조치액은 30억원(1975년), 90억원(1986년), 500억원(2002년 이후)으로 조금씩 증가됐지만 현재 세계 원자력보험풀의 인수능력은 100만kW의 핵발전소라면 약 2조원에 이른다. 이처럼 핵발전은 ‘값이 싸다’는 신화를 유지하기 위해 무리수를 둔 탓으로 현행의 배상조치액 500억원은 일본(약 1조2000억원)은 물론 타이완(약 1509억원)과 중국(약 543억원)보다도 낮은 실정이다. 핵마피아들은 한국인의 생명과 재산의 가치가 동아시아에서 가장 저렴한 이유를 설명해야 할 것이다.

후쿠시마 사고 후 정부가 배상조치액 규정을 삭제해 현행 유한책임(2002년 이후)의 배상책임액인 3억 SDR(약 5000억원)로 단일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후쿠시마 사고에서 알 수 있듯이 여전히 핵발전소 사고의 천문학적인 피해액에 훨씬 못 미치는 금액이다. 즉 후쿠시마 같은 대형 사고가 발생하더라도 한수원은 겨우 약 5000억원으로 배상책임이 없어진다. 극단적인 표현을 빌리면 한수원은 사고 방지를 위해 약 5000억원 이상의 안전대책비를 사용하지 않아도 되는 꼴이다.

더욱이 후쿠시마 사고처럼 복수의 핵발전소에 의한 동시 사고가 현실화됐는데도 불구하고 국내의 배상제도는 동일 부지 내의 복수 핵발전소에서 최대 규모의 1기만이 보험금을 확보하면 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현행 제도가 유한책임을 계속 유지하려면 적어도 동일 부지 내라도 발전소별로 보험금을 확보하는 방식으로 전환해 배상금의 증액과 사고 방지 노력을 촉구하는 합리성(효율성)에 대해 척이라도 해야 하지 않는가!

한수원 보호를 위한 보상계약법
특히 즉각 폐지해야 마땅한 보상계약법은 민간 책임보험료의 약 23분의 1이라는 낮은 보상료로 원배법의 배상조치액과 같은 금액(500억원)과 심지어 원배법(책임보험)조차 인수를 거부하는 원자력 손해까지 인수하고 있다. 즉 보상계약법의 목적은 피해자 구제가 아니라 오직 한수원 보호를 위한 것이다. 예를 들면 (1)핵발전소에서 정상운전에 의한 사고가 발생하면 원배법이 아니라 보상계약법이 책임을 진다. 법 규정에 따른 정상운전에도 불구하고 핵발전소에서는 원인조차 알 수 없는 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는 미완성 기술의 한계를 말하고 있다. 즉 보상계약법의 존재가 핵마피아가 말하는 안전신화의 기만성을 입증하는 셈이다.

(2)보상계약법은 자연재해에 의한 원자력사고를 책임지는데 이 역시 이미 원배법의 원자력책임보험(특별약관)이 인수하고 있다. 이와 같은 법의 중복은 담당 부처인 원자력안전위원회가 사고피해액이 책임보험을 초과할 경우의 보완책으로써 의도적으로 남겨둔 것으로 짐작된다. (3)사고 후 10년이 경과한 피해일 경우에도 보상계약법이 책임지는데, 국민세금으로 원자력보험풀의 책임 경감과 한수원의 보험료 경감을 꾀하는 셈이다.

지난 45여년 동안 국내의 핵마피아가 안전신화를 정말 믿고 있었다면 결함투성이의 배상제도는 지금까지 남아 있을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특히 이런 황당무계한 배상제도의 제정·개정에 관계하면서 오랫동안 방조 내지 동조해 온 법학 기술자(!)들의 철저한 각성을 촉구한다. 핵마피아가 ‘값싸고 안전하다’는 공허한 신화를 계속 주장하려면 먼저 보상계약법의 즉각 폐지와 함께 예상피해액을 반영한 실효성 있는 배상제도로 전환해야 할 것이다. 배상제도의 발본적인 수정이 없는 한 핵발전소를 수출산업의 핵심처럼 떠받치는 핵마피아의 주장은 인큐베이터 속의 미숙아를 성인으로 주장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일본 마쓰야마대 경제학부 교수>

장정욱 교수의 ‘탈핵을 꿈꾸며’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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