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핵발전소 주변지역 지원법의 ‘반민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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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주법은 핵발전소 입지지역의 불만을 물량 공세로 무마하기 위한 제도다. 핵발전소의 위험성에 따른 공포의 대가 즉 위험수당을 교부금 명목으로 지원하는 목적으로 도입된 것이다.

핵발전소 추진을 위한 공적 지원제도 중 하나가 ‘발전소 주변 지역 지원에 관한 법’(이하 발주법)이다.전기 판매 수입금 중 일부로 조성한 기금(전력산업기반기금)으로 입지·주변 지역에 교부금을 지원하는 제도다.

특히 핵발전소 입지 지역은 다른 발전원에 비해 발주법에서 우대를 받는다. 바꾸어 말하면 발주법의 존재는 입지 지역에 대한 핵발전소의 경제적 파급효과가 적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세계에서 입지 지역 지원법을 제정하고 있는 국가는 일본(1974년)·한국(1990년)·타이완(2003년) 등 3개국뿐이다. 발주법의 모델이었던 일본의 법과 제도 검증을 통해 우리나라 발주법의 도입 배경 및 문제점 등을 살펴보자.

환경운동연합 회원들이 10월 29일 고리·월성 1호기 등 노후 원전 폐쇄를 주장하며 서울 세종대로에서 청계천까지 거리 행진을 하고 있다. | 김영민기자

환경운동연합 회원들이 10월 29일 고리·월성 1호기 등 노후 원전 폐쇄를 주장하며 서울 세종대로에서 청계천까지 거리 행진을 하고 있다. | 김영민기자

한국전쟁 때 유엔군을 위한 물자공급이라는 특별 수요 덕분에 패전 후 일본은 예상보다 빠른 복구를 이루는 발판을 마련했다. 이후 일본 정부는 1960년대부터 수출 주도의 경제성장에 나선다. 경제자립 5개년계획과 거점개발 방식을 수립해 중화학공업정책과 도시화를 추진했고, 동시에 농어촌의 유휴 인구를 흡수해 저임금의 노동구조를 구축했다.

급격한 도시화·산업화 진행에 따른 산업구조 변화의 직격탄을 맞은 것은 농어촌이었다. 인구 감소와 경제력 격차의 확대로 지역공동체가 소멸되는 위기에 처하게 된 것이다. 농어촌은 도로 건설 및 지방세 감면 등의 조치를 앞세워 산업유치를 통한 고용증대와 지역발전을 꾀하려 했다. 하지만 지리적 입지조건이 열악한 농어촌의 경우 결국 중화학산업의 유치경쟁에서 낙오될 수밖에 없었다. 그 대안으로 부상한 게 핵발전소 유치였다. 당시 각 지역 의회가 유치 결의까지 하는 등 적극적인 유치경쟁까지 벌어졌다.

지역 활성화는 일과성, 지역산업은 쇠퇴
그러나 첨단산업(?)인 핵발전소는 황금알을 낳지 못했다. 지역 활성화 수단이라는 기대와는 달리 고용증대 및 재정확대의 파급효과는 일과성(一過性)에 불과했고, 오히려 지역산업인 농수산업의 쇠퇴를 가져오는 등 역효과가 부각됐다.

첫째, 지역산업보다 높은 수당을 받는 핵발전소의 건설작업에 종사하는 주민들이 수익이 낮은 지역산업의 유지·발전에 무관심해졌다. 둘째, 벽지(僻地)라는 입지조건 때문에 핵발전소의 관련 기업(건설·하청기업)을 제외하면 유망산업의 진출이 없었다. 셋째, 재산세·주민세 등 지방세수의 증가에 따른 지방재정의 건전화도 특별감가상각제도 때문에 완공 후 5년 만에 재산세수가 반감하는 등 도리어 지방재정의 불안전성이 증폭됐다. 따라서 핵발전소에 대한 지역의 거부반응도 점점 높아졌다.

에너지안보를 국책사업으로 내세워 핵발전소 건설에 적극적으로 나섰던 일본 정부로선 이에 대한 대응책이 필요했다. 결국 일본 정부는 당시 다나카(田中) 총리의 출신지(니가타현)가 유치하려던 핵발전소 건설을 계기로 제도적인 지원책으로서 이른바 전원(電源)3법을 도입한다. 전기요금에 덧붙인 전원개발촉진세 신설, 세수(稅收) 관리를 위한 특별회계 도입, 그리고 전원3법 교부금 교부로 발전소 주변 지역의 정비사업을 지원하는 등의 3종류 법이다. 매년 약 2조원에 달하는 전원3법 교부금의 탄생으로, 핵마피아의 이권구조도 더욱 견고하고 두꺼워진다. 특히 지방교부세 등 기존의 재정지원과는 별도로 핵발전소 입지 지역에 매년 약 수십억~수백억원의 전원3법 교부금이 지원되는 만큼 입지 지역의 핵마피아는 공공 건설사업을 통한 이익 확대를 위해서 핵발전소 신·증설에 필사적이었다.

1979년 미국 스리마일 섬 핵발전소 사고로 핵발전소에 대한 대중들의 공포나 불신이 증대되면서 핵발전소 건립을 반대하는 시민들의 운동도 강해졌다. 일본 정부는 제2차 석유위기(1979년)를 핑계로 재생에너지 개발에도 재원을 사용하는 등 전원3법을 대대적으로 손질한다. 또 담당 부처의 자의적인 판단으로 핵발전소에 대한 교부금 단가의 우대조치 및 다양한 교부금·보조금의 신설 등을 통해 누적된 예산(이월금)을 소화하는 임기응변적 조치를 거듭해왔다. 특히 2003년 법 개정을 통해 ▲교부기간 연장 ▲교부금 계산 기준을 종래의 설비용량에서 발전량으로 변경 ▲교부금 사용 용도 확대를 도입했다.

국내에서도 과거 군사정권이 강권적으로 선정한 핵발전소 입지 지역으로부터 공동체의 붕괴·환경파괴 같은 사회적 문제뿐만 아니라 지역발전의 낮은 기여도·안전성 불안 등의 누적된 불만들이 불거져 나왔다. 가장 명확한 모습으로 나타난 것이 1980년대 말부터 핵폐기장 선정을 둘러싼 지역주민의 반대운동이었다.

국가 영향력 커지고 지역 주체성 약화
정부는 공권력을 동원하는 한편 핵발전소 반대 완화책으로 일본의 전원3법을 차용한 발주법을 1990년에 도입했다. 그리고 1995년 지방자치제도 재개도 한몫해 발주법도 일본처럼 핵발전소 중심으로 지원사업의 종류 및 지원금액의 확충 등을 거듭해 왔다. 도입 당시는 사업자였던 한전과 수자원공사가 전기판매수익금의 일정 비율을 기금(주변 지역 지원사업기금)으로 하여 공공 건설을 중심으로 한 지원사업을 실시했다. 그러다가 한전의 구조개편 영향으로 2000년 말에 기금관리 주체가 지식경제부(산업자원부)로 변경됐다. 2006년부터는 지원대상 지역이 확대되고, 전력산업기반기금으로 통합됐다. 그리고 기금의 지원사업액과 동일 규모의 발전사업자 지원사업을 사업자 자체 자금으로 직접 할 수 있게 되었다. 즉 산업부는 장기적인 관점의 국가 에너지정책보다는 정세변화에 따른 임기응변적인 대책만을 내세워 왔던 것이다.

한·일 양국의 발주법을 보면 발전사업자가 공기업과 사기업이라는 큰 차이점은 있으나 지원제도의 운용방식 및 변경사항 등은 매우 흡사하다. 심지어 발주법이 2003년 일본 제도의 변경 사항을 무의식적으로 베낀 듯한 사례마저 있다. 일본이 교부금의 계산기준을 설비용량에서 발전량으로 바꾼 이유는 사고·고장으로 정지한 핵발전소가 재가동할 때 지자체의 동의를 받아야 하는 안전협정의 존재 때문이었다. 즉 지자체가 교부금을 많이 받으려면 재가동 동의를 서둘러야 하는 방식으로 개악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국내에는 안전협정이 없는 데도 불구하고, 기준이 발전량 중심으로 변경됐다.

발주법은 핵발전소 입지 지역의 불만을 물량 공세로 무마하기 위한 제도다. 핵발전소의 위험성에 따른 공포의 대가, 즉 위험수당을 교부금 명목으로 지원하는 걸로 이해하면 될 것이다. 이밖에 광역행정(도) 단위의 안전대책 등의 강화를 위한 재원으로서 지역자원시설세도 도입되는 등 핵발전소의 사고·고장이 발생할 때마다 제도의 신설·변경을 통해 물량 공세도 점점 늘어났다. 하지만 입지 지역의 단기적인 재정확대는 지역의 적절한 수요와는 관계가 없는 사업들의 추진 또는 과대공급(시설)을 조장하는 구조적 문제를 가져왔다. 그 결과 입지 지역은 사업의 유지·관리비 등을 충당할 교부금을 확보하기 위해 핵발전소를 유치해야 하는 악순환에 빠지게 되었다.

이와 같이 입지 지역의 의존체질이 구조화되면서 핵발전소 입지 지역에 대한 국가의 영향력이 더욱 강해지는 반면 입지 지역의 주체적인 정책 수립은 점점 곤란해지는 이율배반적인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이런 상황은 지방정부에 대한 중앙정부 통제가 심한 국가들에서 구조적으로 나타난다. 이는 발주법을 제정한 3개국의 공통점이기도 하다. 중앙정부에 대한 지방의 종속 구조를 굳히려는 반민주적인 발주법을 즉각 폐지하고 유럽과 미국처럼 핵발전소 입지를 발전사업자에게 전적으로 맡기는 쪽이 바람직하다.

<일본 마쓰야마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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