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집안과 15년 싸움 ‘경주의 달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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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스 민주노조 6년, 그러나 긴장을 늦춰서는 안 된다. 저들은 나태해지고 관성화된 노조의 틈을 비집고 들어와 민주노조를 무너뜨리기 때문이다.

경북 경주의 야트막한 산에도 붉은 빛이 감돌기 시작했다. 늦은 가을걷이 손길이 분주한 들녘과 한적한 산길을 지나자 외떨어진 곳에 낡은 공장이 덩그러니 서 있다. 금속노조 정진홍 경주지부장 직무대행이 회한에 잠겨 공장을 둘러본다. 그가 일하던 회사다.

신라공고를 졸업한 정진홍(38)은 1997년 세광공업에 들어갔다. 자동차 시트 레일을 용접해 시트 완성품을 만드는 대부기공에 납품했다. 대부기공은 이명박 실소유 논란으로 유명한 다스의 전 이름이다. 그는 세광공업도 이명박 소유 계열사라고 믿었다. 당시 대표이사는 이명박의 매제인 김진이었다. 이명박씨가 공장을 방문하면 회사는 극진한 예우를 갖춰 VIP 대우를 했다. 이명박 장로가 장신대 장학재단의 감사를 하던 1997년, 아무 관련도 없는 세광공업은 5000만원을 후원금으로 내기도 했다.

경주다스공장. | 박점규

경주다스공장. | 박점규

자동차 시트 회사 다스와 납품업체들
2000년 7월, 군대보다 못한 공장에 마침내 노동조합이 만들어졌다. 정진홍은 다음해 노조사무장을 맡았다. 매출이 급증하고 회사 직원도 1998년 60명에서 150명으로 늘어났는데, 세광공업은 “노사분규로 인해 물량 수주를 받지 못했다”며 2001년 5월 폐업했다. 조합원들은 위장폐업을 철회하라며 서울시장으로 출마한 이명박 후보의 집과 소망교회를 찾았다. 이명박은 “내려가 있으면 잘 해결될 것”이라고 했고, 유광테크라는 회사를 차려 남은 조합원 26명을 고용했다. 이명박은 서울시장이 됐고, 2년이 지나지도 않은 2004년 회사는 다시 문을 닫았다. 이명박 집구석과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됐고, 첫 번째 전쟁은 완패했다.

“지부장님이 여기 출신이라 안 했능교?” 공장 사무실에서 업무를 보던 다스 조합원이 반갑게 맞는다. 세광공업 공장은 북미로 수출하는 시트 반조립제품(CKD)의 물류창고로 사용되고 있다. 다스에 시트 레일을 납품하는 ㈜금강의 조합원 두 명도 인사를 나눈다. 금강은 이명박 처남댁이 최대주주인 회사다. 지난해 12월 10일 금속노조에 가입했다. 정규직 노동자 140명이 캄보디아, 필리핀, 베트남, 우즈베키스탄, 중국 노동자 30명과 함께 만든 아름다운 노조다. 금강 조합원들이 다스에 납품하는 물량이 줄어들고 있다며 한숨을 쉰다.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대기업이 세광공업처럼 하루 아침에 중소기업을 날리는 일은 ‘식은 죽 먹기’다.

울산의 길목 외동농공단지 자동차 시트 제조회사 다스. 회장은 이명박의 큰형 이상은, 부사장은 매제 김진, 경영기획실장은 아들 이시형이다. 점심을 먹고 나온 노동자들의 얼굴이 활기차다. “오늘 삼겹살입미더. 후딱 식사하이소.” 깔끔한 식당에 삼겹살과 상추가 놓여 있다. 6년 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풍경, 민주노조는 식판부터 바꿔놓았다.

“노동조합이 바뀌면서 제일 좋은 건 노예근성에서 벗어나 당당하게 노동자의 삶을 살게 됐다는 거예요. 중간관리자 눈치 안 보고, 욕 안 얻어먹고, 내 할 일 하고 내 월급 받아가게 됐다는 거죠.” 임도형 지회장이 환히 웃는다. “저는 아침에 일어나서 금속노조 보고 감사하다고 절을 합니다. 꼬박꼬박.” 김재홍 부지부장의 허풍에 웃음보가 터진다.

임도형·김재홍을 비롯한 다스 8인방이 금속노조 경주지부 정진홍을 찾아간 것은 2008년 5월. 이명박 집안과 2차 전쟁의 시작이었다. 정진홍은 8인방을 일요일마다 만났다. 당시 한국노총 다스 노조 위원장이 1991년부터 18년 동안 장기집권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철저히 보안을 유지하면서 교육, 전술, 역할분담, 현장조직을 치밀하게 준비해나갔다. 회사는 프레스와 금형 등 핵심 라인을 빼고 모두 하도급으로 전환하려고 했고, 어용노조도 낌새를 채고 있었다. 7월 15일, 김진 부사장의 해외 출장일을 ‘거사일’로 잡았다. 전날 여관에서 함께 보낸 8인방과 정진홍이 새벽 회사에 들어와 주야 조합원들을 식당으로 모았다. “서울로 가다 돌아온 김진 부사장이 식당으로 들어오려고 해서 우리가 밀어냈죠. 말단 관리자한테도 말 한마디 못했는데 최고경영자를 쫓아내니까 조합원들이 빵 터졌습니다.” 임도형 지회장은 흥분해하며 그날을 떠올렸다. 비상 조합원 총회에서 98.6%로 18년 독재자를 쫓아냈다. 한국노총을 탈퇴해 금속노조에 가입하고 새 지도부를 선출했다. 노동자들이 일손을 놓자 시트 생산이 중단됐고, 현대자동차 라인이 멈추는 상황이었다. 회사는 두 손을 들었고, 금속노조 교섭대표인 정진홍이 내민 종이에 도장을 찍었다. 최고의 복수전이었다.

[박점규의 노동여지도]이명박 집안과 15년 싸움 ‘경주의 달밤’

장기집권 어용노조 몰아낸 다스 8인방
현장을 한 바퀴 돈다. 올해 1월 1일부터 심야노동을 없애고 주간 2교대로 일한다. 18년 독재의 시절을 끝내고 민주주의를 만끽하고 있는 조합원들이 활력 넘치는 얼굴로 반갑게 인사한다. 스타렉스 라인, 시트를 조립하고 다림질하는 손길이 바쁘다. 모두 비정규직이다. 2008년부터 매년 10%씩 정규직으로 전환해 지금까지 70명이 정규직이 됐다. 지난해 7월 2일 93명의 사내하청 노동자를 노조로 받아들여 같은 식구가 됐고, 올해는 별도의 단체협약까지 체결했다. 노조 간부들을 맞는 비정규직 조합원들의 표정이 밝다.

다스 민주노조 6년, 그러나 긴장을 늦춰서는 안 된다. 저들은 나태해지고 관성화된 노조의 틈을 비집고 들어와 민주노조를 무너뜨리기 때문이다. 노조 간부 8명이 지난 6개월 동안 공부와 토론을 하고 있다. 회사 탈의장에서 눈물을 펑펑 쏟아내며 마음을 나누기도 했다. 2008년 7월 15일, 어용노조 해방기념일의 마음으로 노조를 지켜내겠다고 다짐한다.

다스 이후 작은 외동공단에 민주화 바람이 불어 금속노조 사업장이 4개가 됐다. 다스 맞은편, 현대자동차에 금형을 납품하던 시그오토멕 공장이 6개월째 멈춰 있다. 지난 5월 10일 파업으로 현대차 라인이 끊기자 현대차는 납품업체를 다른 회사로 바꿨다. 회사는 경영 악화를 이유로 폐업했다. 현대차 손짓 하나에 150명의 목숨줄이 날아간 것이다. 노조는 위장폐업 철회와 고용승계를 요구하며 공장 사수 철야농성에 돌입했고, 현대차와 승원그룹 규탄투쟁을 벌였다. 불 꺼진 농성장. 특전사 출신 조합원의 단전호흡 시범에 한바탕 웃음꽃이 핀다. 이날 아침 회사는 금형을 빼가려다 금속노조 간부와 조합원들의 저지로 물러섰다. 매각협상이 진행되고 있다고 하지만 믿을 수 없다. 최장춘 사무장은 “힘겨운 싸움이지만 포기하지 않겠다”고 말한다.

경주 시내로 향하는 7번국도 양쪽으로 은행나무가 노랗게 물들었다. 정진홍 직무대행의 전화가 쉴 새 없이 울린다. “경주는 현대차 부품공단입니더. 지금이 아이템 낙찰 시기 아닝교. 금속노조 깃발을 꽂으면 물량을 빼돌리거나 줄이니까 힘들지만, 우짭니까. 죽기살기로 싸우는 수밖에.”

경주의 가장 오랜 용강공단 입구에 있는 일진베어링이 보인다. 민주노총을 탈퇴한 사업장이다. ‘대통령 집구석 민주노조 습격사건’ 이후 벌어진 3차 전쟁. 2010년 1월 1일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와 복수노조 창구 단일화 법안이 통과된 이후 이명박 정부는 금속노조 사업장을 조지기 시작했다. 포항노동청이 총대를 멨다. 2010년 7월 금속노조 경주, 포항지부 소속 19개 노조에 대해 전임자 임금만이 아니라 조합원 자격, 시설편의 제공 등 10개 항목의 단체협약을 시정하라는 공문을 보내 전방위적으로 압박했다. 노동부와 경찰, 회사의 탄압을 견디지 못하고 경주에서만 발레오만도, 광진상공, 일진베어링, 이너지, 전진산업, 영진기업 등 6개 사업장 1000여명이 금속노조를 떠났다.

단체교섭 거부→직장 폐쇄→공권력 투입→단체협약 해지→어용노조 설립으로 이어지는 민주노조 말살 전쟁은 경주를 시작으로 대구, 구미, 충청, 경기로 이어졌고, 창조컨설팅과 컨텍터스 용역깡패의 폭력이 알려지면서 에스제이엠(SJM) 안산전투에서 멈췄다. 당시 포항노동청과 경찰들은 “다스만 금속노조 탈퇴하면 건드리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고 다녔다. 경주의 노동자들은 대통령 집구석에 민주노조가 세워진 직후 노동부 출신과 ‘영포라인’으로 만들어진 공직윤리지원관실이 불법 민간인 사찰과 함께 노조 파괴공작을 주도했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이명박 집구석 피의 보복 1호 발레오만도 농성장에서 아주머니 조합원들이 이야기꽃을 피운다. 2010년 2월 공장에서 쫓겨난 29명의 해고자들이 공원에서 5년을 살았다. 축사 철거, 모내기, 딸기농사, 포도수확, 정월대보름 달집 만들기, 은행나무 채집…. 안 해본 일이 없었다. 지난 2년 동안 금속노조 경주 조합원들이 매달 1만원씩 돈을 내 월 100만원가량 생계비를 지원해줬다. 고난의 시간이 끝나간다. 금속노조 탈퇴 총회와 해고가 무효라는 소송이 고등법원까지 이기고 조만간 대법원 판결이 내려진다. 빼앗긴 임금을 되찾는 소송도 추가로 진행되고 있다.

이명박 정권의 보복 1호 발레오만도
가장 행복한 건 공장 안에 금속노조 조합원이 100명 생겼다는 사실이다. 비밀조합원까지 포함하면 훨씬 많다. “일과시간에 생산량을 못 채우면 잔업을 무료로 해줬어요. 그런데 지금 금속 조합원들이 거부하니까 멈추게 됐죠. 식당 앞에서 홍보물 주면 잘 받아갑니다. 한 10년은 걸릴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발레오만도 정연재 전 지회장이 조만간 기쁜 소식을 전해줄 것이라고 말한다.

지난 10월 25일 100여명의 발레오만도 조합원들과 지역 노동자들이 천막 앞에 모여 체육대회를 열었다. 5년 만에 처음이었다. ‘경상도 싸나이’ 정진홍은 이날 눈물이 쏟아져 말을 잇지 못했다. 2010년 교섭 자리에서 대구 대동공업 노무이사가 한 말이 떠올랐다. “저희도 발레오처럼 금속 탈퇴시키고 회사노조를 만들 생각을 안 했겠어요? 하지만 결국 노조가 생길 것이고, 돈은 더 들고 골치 아플 게 뻔한데, 하지 않겠다고 했죠.” 매일 금속노조와 싸우고 있는 발레오 강기봉 사장에게 하는 말이다.

발레오 건너편 에코플라스틱에서 1조 근무를 마친 김영민 조합원이 천막에 찾아와 아주머니 조합원들과 대화를 나눈다. 점심에 치킨이 나오면 챙겨서 갖다주는 사람이다. 한효섭 조합원은 농사 지은 쌀 한 가마니를 갖다놓았다. 너무 고마운 사람들, 조합원들은 싸움 꼭 이겨서 소를 한 마리 잡겠다고 말한다. 김영민 조합원은 “노조 간부들이 잘 오다가 임기가 끝나면 발길을 끊는다”며 속상해한다. 여성 조합원들이 담소를 나눈다. “아들 같은 용역깡패들이 거지들 또 온다며 가래침 퉤 뱉고, 진짜 억울해서 못 견디겠더라고요. 쫓겨나와 경제적으로는 어려워도 정신적으로는 강해졌어요.” 임임순 조합원의 말이다.

민주노총 최해술 경주지부장(42)이 천막을 찾았다. 1992년 세광공업에 들어가 2001년 노조 지회장을 맡아 싸우다 정진홍과 함께 해고됐다. 세광을 말아먹은(?) 두 사람. 정진홍은 금속노조에서 제조업을, 최해술은 경북일반노조에서 비제조업 노동자들을 조직했다. 지난 10년 동안 정진홍과 최해술이 만든 노조가 50개가 넘는다. 까먹은 노조도 있지만, 전국 최고의 ‘노조 제조기’다. 노조 효과도 적지않다. 보문관광단지에서 교육문화회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일반노조에 가입하니까 주변 호텔에서 노조를 못 만들게 하려고 임금을 올려주고 근무조건을 개선해준다. 경주CC, 더케이호텔, 드림센터, 경주엑스포도 그의 손을 거쳐갔다.

“노조 만들겠다고 찾아오는 사업장 받고, 기존 노동조합 지키기에 급급한 게 현실입니다. 투쟁사업장이 많아져 많이 바쁘죠. 그런데 거기에 한 사람 더 있다고 크게 달라지지 않잖아요. 무슨 일이 벌어지더라도 노조 만드는 일에만 집중하도록 해야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지 않을까요?”

‘신라의 달밤’이다. 정진홍과 최해술이 바쁜 걸음을 옮긴다. 이명박 집안과의 전쟁은 현대차와의 전쟁으로 바뀌고 있다. “일만 하던 노동자야~ 일손을 멈추어라~ 노래를 불러보자~ 신라의 밤 노래를~”

<비정규직 없는 세상만들기 집행위원(@ccom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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