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래, 장애를 이긴 ‘꿍따리 샤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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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장애인으로 산 지 14년째. 분노, 좌절의 시간을 이겨낸 그는 이전보다 더 속 깊은 남자와 멋진 아빠가 되어 감동과 행복을 나눠주고 있다. 안무가, 라디오 DJ, 대학 강사, <꿍따리 유랑단> 대표, 대학생…. 그는 휠체어를 타고 어디든 갈 수 있고, 무엇이든 도전한다.

꼭 한 번 만나보고 싶었던 사람 강원래. 하지만 그와의 만남은 늘 망설여졌다. 자칫 말실수라도 하면 화내고 가버릴 것만 같은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학창 시절, 우리들이 열광했던 <클론>의 강원래 오빠는 한국에서 가장 춤 잘 추는 남자이자 까칠한 남자였다. 소문 속에서 만나는 그는 ‘차가운 사람’이었으나 최근에 태어난 아들 ‘선이’에게 쓴 편지를 모아서 낸 책을 읽고 난 후 걱정과 오해가 사라졌다. 2014년, 내가 직접 만난 강원래는 깊고 솔직한 사람이었다.

지난 6월에 태어난 아들 선이를 바라보며 행복해하는 강원래·김송 부부. 두 사람은 “내 자식뿐만 아니라 세상의 아이들을 다 잘 키우기 위해 좋은 어른이 되겠다”고 말한다. | ⓐ아티카 스튜디오

지난 6월에 태어난 아들 선이를 바라보며 행복해하는 강원래·김송 부부. 두 사람은 “내 자식뿐만 아니라 세상의 아이들을 다 잘 키우기 위해 좋은 어른이 되겠다”고 말한다. | ⓐ아티카 스튜디오

“병신 됐는데 무슨 강연이야!”
2000년 11월 9일. 오토바이를 타고 가던 그는 불법 유턴하는 차에 치여서 1급 장애인이 되었다. 장애인으로 살아야 한다는 현실을 받아들이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손에 잡히는 대로 다 집어던지고, 소리 지르고, 막무가내로 욕을 하기도 했다. 덕분에 병실 침대에 한 달 반 동안 묶여 있기도 했다. 다 깨부수고 심지어 불도 지르고 싶었다. ‘병신’이란 말을 듣고 울기도 많이 울었다. 심리치료를 받게 되었을 때 솔직한 심정을 말했더니, ‘당연한 심리적 반응이며 지극히 정상인 상태’라는 진단이 나왔다. 조덕배 선배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베개가 썩을 때까지 울어라, 짜샤!”

“올해가 장애인으로 산 지 14년 되는 해예요. 부정, 분노, 좌절의 시간을 충분히 가졌어요. 내가 장애인이라는 현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웠으니까…. 난폭해진 저를 변화시킨 건 아내 송이와 여전히 저를 멋진 놈이라고 불러주는 준엽이었어요. 선배 장애인들의 ‘세상을 향해 욕하면 세상이 욕으로 답하고, 세상을 향해 웃으면 세상이 웃음으로 답한다’는 조언도 큰 힘이 되었죠.”

사고 이후 4년 동안 칩거하던 강원래에게 한 통의 메일이 온다. 보호관찰소에 있는 폭주족 청소년들에게 강연을 해달라는 것이었다. “병신 됐는데 무슨 강연이야!” 화를 내며 거절했다. 그런데 친구들이 넌 정말 잘할 것 같다며 해보라고 권했다. 계속되는 설득에 못 이겨서 어쩔 수 없이 말썽쟁이들을 만나러 갔다. 그런데 그곳에서 ‘소년 강원래’들을 발견했다. 1년에 10회씩, 전국 강연을 하겠다고 약속을 하기에 이르렀다.

“나도 그 시절에 상처 때문에 춤추고, 나쁜 짓도 많이 했기 때문에 내 경험을 통해서 아이들을 이해할 수 있었어요. 청소년들이 일탈하는 건 사회와 가정에서 받은 상처 때문이거든요. 사람의 심리가 강자에게서 받은 상처를 약자에게 분출하게 되잖아요. 너희들, 상처 많이 받았지? 그래서 이런 행동을 한 거지? 그래도 너희들이 잘못한 건 사실이야. 하지만 난 너희들을 이해해…. 그래서 심리학 공부를 하고 싶었어요. 내가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공연으로 전할 때 도움이 될 것 같아서요. 나도 나쁜 놈인데 뭘 가르치고 훈계하겠어요?”

공부를 시작하다
그는 지금 연극영화과 4학년이다. 연극영화를 전공하면서 심리학 공부도 열심히 하기 시작했다. 뮤지컬, 연극, 영화 연출을 하겠다는 꿈을 키우고 있다.

“영화 <똥파리>를 보면서도 엄청 울었어요. 저 새끼가 욕하는 이유가 다 상처 때문이구나. <빨래>라는 연극을 보면 ‘당신의 젖은 마음 내가 말려 드릴게요’라는 대사가 나와요. 그 대사를 들은 순간, 정말 많이 울었어요. 바람에 맡겨두면 빨래가 마르듯이 우리의 젖은 마음도 언젠가는 마른다는 것, 나도 이런 위안을 주는 연극과 뮤지컬을 만들고 싶다는 꿈을 꾸게 된 거죠. 내가 <빨래>에서 느꼈던 감동을 주는 작품을 만들자. 가르치기보다는 느끼게 해주고, 변화를 유도하고, 문화적 충격을 주고 싶었어요. <꿍따리 유랑단>도 그런 취지에서 만든 거예요.”

강원래씨가 장애를 가진 재주꾼들과 꾸려가는 <꿍따리 유랑단>.

강원래씨가 장애를 가진 재주꾼들과 꾸려가는 <꿍따리 유랑단>.

어디든지 찾아가는 <꿍따리 유랑단>
“<꿍따리 유랑단> 공연과 ‘장애인식 바꾸기’ 강연 합니다. 연락주세요!” 페이스북에 그가 직접 올린 글이다.

‘한 팔 격투기 챔피언’, 발성장애 ‘인기가수’, 키 작은 ‘트로트 가수’, ‘휠체어 소녀’, ‘청각장애 댄서’, ‘성대모사 달인’인 시각장애인, ‘건방진 한 손 마술사’가 함께 만들어내는 90분의 공연은 재미와 감동과 눈물로 흠뻑 젖는 시간이다.

장애가 있지만 재주가 많은 친구들이 보호관찰소 청소년과 소년원생들에게 ‘장애를 가진 우리도 열심히 살려고 노력한다’는 걸 보여주는 공연이다. ‘장애인들 뻔하지, 시간 때우는 거겠지’ 하며 공연장에 들어온 말썽꾸러기들이 ‘정말 감동받았다, 열심히 사는 장애인들을 보며 나 자신을 반성했다’는 메일을 보내올 때 큰 보람을 느낀다.

한창 인기를 누리던 시절에 받던 출연료의 5%도 안 되는 출연료를 받거나, 오히려 돈을 더 쓰기도 한다. 얼마 전에는 시골 분교에서 공연하고 20만원을 받았다. 단원들의 출연료는 고스란히 강원래의 주머니에서 나갔다. 그래도 즐거웠다. 계획한 대로 공연이 잘 치러졌고, 관객들이 즐거워했기 때문이다. 출연료를 떠나서 어설픈 공연을 올리는 것이 가장 싫다.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최선을 다하는 공연을 하고 싶다.

“입양이나 하지”
아내를 닮은 아이를 낳고 싶었다. 하지만 시험관 아기에 도전해서 7번이나 실패를 했다. 지친 아내는 남편을 원망했다. “입양이나 하지.” 걱정에서 비롯되었겠지만 무심코 던지는 사람들의 말은 부부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했다. 부부가 가장 힘들었던 시기인 6년 전, 반려견 똘똘이를 입양했다. 많은 갈등과 싸움으로 힘들었던 부부를 다시 사랑으로 묶어준 것도 똘똘이었다.

휠체어 밑에 엎드려서 걷지 못하는 아빠를 늘 지켜주고, 라디오 방송을 하기 위해서 출근하는 아빠를 배웅해준 것도 똘똘이었다. 똘똘이로 인해서 다시 행복을 되찾았을 때 기적처럼 새 생명이 부부를 찾아왔다. 하지만…, 똘똘이는 아들 ‘선’이가 태어나기 5개월 전,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똘똘이 얘기만 나오면 부부는 여전히 목이 메어서 말을 잇지 못한다.

엄마 ‘김송’의 이야기
한 남자에게 편지 200통을 보내고 500통을 받았다. 남자친구는 군복무 30개월 동안 ‘내 사랑 송이’라는 제목으로 500여통의 손편지를 보내왔다. 남들은 ‘한 남자만 사랑한 바보 같은 여자’라고 말하지만, 오늘까지 강원래의 아내 김송으로 살 수 있는 건 손편지 500통이 낳은 힘이다.
열여섯 살 때, 춤 잘 추는 강원래에게 첫눈에 반했고, 오랜 연애 기간을 거쳐서 동거를 시작했다. 살면서 가장 행복한 시기였다. 그러나 2000년 11월 9일, 갑자기 일어난 교통사고가 두 사람의 인생을 뒤흔들어 놓았다.

“상견례 때 시아버지께서 ‘내 딸이라면 다리를 부러뜨려서라도 이 결혼 못 하게 할 건데…. 내 아들에게 시집와줘서 정말 고맙다’고 하셨을 때 목 놓아 울었어요. 살면서 위기가 없었다면 거짓말이에요. 장애인으로 살아야 하는 남편을 지켜보는 게 너무 고통스럽고 힘들어서 ‘내가 저 남자를 평생 수발하면서 살아야 하나?’ 그런 절망감에도 빠지고 집밖으로 돌기도 했죠. 이혼하자고 싸우고, 남편 가슴에 상처 내는 말도 많이 했고요. 그런데 작년 결혼기념일에 임신이 되었다는 기적 같은 소리를 들었어요. 지금은 정말 행복해요. 이 남자가 굉장히 차가워 보이지만 사실은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에요. 그 마음이 저를 감동시켜요. 사람들이 인터넷에 남편에 대한 악플을 달 때 정말 힘들어요. 아기 아빠는 자신을 포장할 줄 모르는 솔직한 사람입니다. 힘든 시절을 이제 겨우 건너왔어요. 남편이 오해를 벗었으면 좋겠어요. 이제 우리는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해, 내 자식뿐만 아니라 세상의 아이들을 다 잘 키우기 위해 좋은 어른이 될 겁니다.”

아빠 ‘강원래’의 이야기
“<형제는 용감했다>는 뮤지컬에서 아빠가 죽기 직전에 이런 말을 해요. ‘내 인생에서 가장 후회되는 건, 너희들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하지 못했던 거야.’ 그 대사가 주는 울림이 정말 컸어요. 내 아버지가 언제부터 담배를 폈을까? 첫 경험은 언제 했을까? 우리 엄마를 어떻게 만났을까? 나쁜 짓도 해봤을까? 늘 궁금했어요. 그런데 물어보지 못했죠. 그래서 우리 ‘선’이가 뱃속에 있을 때 아이에게 들려주고 싶은 모든 이야기를 편지에 썼어요. 엄마 아빠가 어떻게 살아왔고 너는 어떻게 태어났는지…. 아빠는 성년이 되기 전에 담배도 피웠고, 술도 마셨고, 할아버지 지갑에서 돈도 훔쳤고, 말썽꾸러기 짓을 정말 많이 했어. 네가 어떤 삶을 살아도 좋지만 너는 남에게 절대로 상처를 주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리고 네가 살아갈 이 세상이 장애에 대한 편견을 조금씩 버릴 수 있으면 좋겠고, 그래서 장애인들이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으면 좋겠어. 이런 얘기들을 다 담아서 편지를 썼어요. 아내도 함께요.”

그는 아이에게 사랑한다, 미안하다는 말을 할 줄 아는 아빠가 되고 싶다고 했다. 엄마 아빠의 편지는 <우리 사랑 선이>라는 한 권의 책으로 태어났다. 첫 장은 이렇게 시작된다. “사랑하는 선! 엄마 아빠의 편지 잘 읽고 꼭 답장 바란다. -아빠 강원래”

베풀 선(宣)- 행복한 2인자가 되어 줄래?
2014년 6월, 3.9㎏의 우람한 아들이 태어났다. 이름은 베풀 ‘선’(宣), ‘강선’이다. 아빠를 쏙 빼닮았고, 아빠 목소리만 들어도 까르르 웃는다.

“아내와 저는 1인자가 아니었어요. 선이도 1인자를 빛내주는 2인자가 되어서 평범하게 살았으면 좋겠어요. <클론> 활동을 할 때도 준엽이가 1인자였지 저는 친구 덕을 많이 본 2인자였어요. 주변 사람들의 고마움을 아는 사람, 베풀면서 사는 사람이 되길 진심으로 바라요. 예전에 전신마비 장애인 박승일씨를 만난 적이 있어요. 그가 할 수 있는 건 오로지 눈동자를 움직이는 것밖에 없었어요. 눈동자의 움직임을 보고 그의 언어를 여자친구가 해독하고…. 그 모습 보면서 나는 내 상황에 감사할 줄 모르고 살았다는 걸 깨달았어요. 생각해보니 내가 꿈을 이루기까지 도와준 사람들이 너무 많았어요. 고입 시험을 볼 때 답지를 보여준 친구가 있었기에 경기고등학교에 진학할 수 있었고, 준엽이 덕분에 저도 꿈을 이룰 수 있었던 거죠. 감사하고 베풀면서 사는 삶… 그게 정말 행복한 삶이잖아요? 선이를 보면 우리 부부를 닮았다는 자체가 정말 기뻐요. 선이가 댄서가 되길 바라지만 그건 우리의 바람일 뿐이고, 언젠가 선이가 춤을 추고 싶다고 말하면 정말 기쁠 것 같아요. 그땐 확실히 밀어 줘야죠.”

초보아빠는 아들 선이가 빨리 걸으면 좋겠다고 여러 번 말했다. 요즘은 선배 아빠들을 만나면 아이가 몇 개월 때 걸었냐고 가장 먼저 물어본다. 아빠는 아들이 걸을 날만 기다린다. 출근하는 아빠를 배웅하고, 귀가하는 아빠를 마중 나오면 좋겠다. 아빠의 휠체어를 아들이 힘차게 밀어주면 좋겠다. 아빠가 주인아저씨 몰래 껌을 훔쳤던 집 앞 구멍가게에도 아들과 함께 가보고 싶고, 맛집도 찾아다니고 싶다. 뛰면서 함께 놀아줄 수는 없지만, 사고 쳐도 기댈 수 있는 편하고 든든한 아빠가 되어줄 자신은 있다.

장애도 하나의 개성이다
장애를 갖고 사는 데 가장 힘든 건 육체적 고통보다 외로움이었다. 사람들의 시선이 늘 불편했다. 거리에서 장애인을 흔히 볼 수 있는 세상이 진짜 사람 살 만한 세상이 아닐까. 라디오 방송을 하기 위해서 출근할 때나 지방 공연을 갈 때에도 가능하면 혼자 다닌다. 혼자서도 다닐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은 마음 때문이다. 동정의 시선으로 쳐다보는 것이 장애인들을 가장 불편하게 한다. 장애도 하나의 개성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좋겠다. 단지 나와 다를 뿐이라고….

“‘몸도 불편한 사람이 밖엔 왜 나왔을까?’ 하는 시선보다는 ‘잘 나왔어요. 함께 놀아요. 불편한 점 있어요? 도와줄까요?’라고 말해주면 어떨까요. ‘힘들죠? 극복하세요’라는 말보다 ‘지금도 멋져요, 할 수 있는 일이 분명히 있을 거예요, 재밌게 사세요’ 이렇게 말해주는 배려가 있다면 더 많은 장애인들이 밖으로 나올 거예요.”

누가 가해자이고 누가 피해자일까?
‘가해자’라고 불리는 그분이 자꾸 생각난다. ‘나는 이제 행복한데, 그분은, 그 가족은 잘 살고 있을까?’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사고를 낸 분의 가족이 병실을 찾아온 적이 있다. 아내에게 합의를 부탁했다고 한다. 남편이 차가운 구치소 방바닥에서 고생을 하니까 선처를 부탁한다고. 그때 아내 송이는 울면서 괴로워했다.

재활치료와 심리치료를 받으며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고 무대에 다시 올랐다. 하루아침에 파트너를 잃고 혼자가 된 준엽이에게 나는 가해자가 된 기분이었고, 준엽이는 분명 피해자였다. 준엽이를 위해서라도 다시 무대에 올라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클론> 5집을 내고 휠체어를 타고 춤을 추면서 <내 사랑 송이>를 불렀다. 다시 행복이 찾아오자 ‘가해자’란 단어가 떠올랐다. 인생에서 가해자와 피해자를 구분하는 게 가능할까, 과연 누가 가해자이고 누가 피해자일까.

“사고를 낸 가해자가 나와 가까운 사람이었다면, 제가 얼마나 더 괴로웠을까요? 다행히 그분은 내가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분입니다. 사고 당시에 내 헬멧을 벗겨주던 얼굴을 본 것 같은데 기억나지 않아요. 아마 그분은 오랜 시간 동안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으며 고통스런 시간을 보냈을지도 몰라요. 그 가족들도 힘든 시간을 보냈을 거예요. 이제 저는 제 생활에 만족해요. 장애를 받아들이고 제가 원하는 일도 마음껏 하고, 새로운 꿈도 꾸고, 누굴 원망하는 마음도 없어요. ‘그 날 딴 길로 갈 걸…’ 이 정도의 아쉬움이 있을 뿐이죠. 기회가 된다면 만나보고 싶어요. 나도 당신에게 미안하다고, 그분의 상처를 위로해드리고 싶어요.”

개성 강한 남자 강원래, 멋진 아빠 강원래
나는 그를 이렇게 불러주고 싶다. 가식 없이 솔직한 남자 강원래와 어린아이처럼 맑게 웃는 아내 김송은 참 어울리는 부부였다.

그들을 만나러 가면서 임신 8개월차 후배를 데리고 나갔다. 인터뷰를 마친 뒤 그는 예비엄마에게 꽤 오랜 시간 동안 ‘육아 비법’을 전수했다. <모신>이라는 책을 읽어라, 나는 무척 감동을 받았다, 아이에겐 엄마 자궁 속이 천국이다, 그 속에 있을 때부터 충분한 대화를 나누어라…. 그는 웬만한 엄마들보다 태교와 유아교육에 대한 내공이 탄탄해서 우리를 놀라게 했다. 2000년 11월, 사고가 나기 전, 무대를 활보하던 신화적인 댄스가수 ‘강원래’도 멋있었지만, 지금의 ‘강원래’가 더 멋져 보였다.

그는 여전히 꿈을 꾼다. 안무가, 라디오 DJ, 대학 강사, 장애인 인식 바꾸기 강연자, <꿍따리 유랑단> 대표, 대학생…. 그의 직함은 사고 이전보다 훨씬 더 많아졌다. 휠체어를 타고 어디든 갈 수 있고, 무엇이든 도전한다.

강원래씨! 개성 강한 당신의 모습이 참 멋있습니다. 당신이 만든 연극과 영화를 하루빨리 보고 싶습니다. 강원래의 작품을 통해서 세상의 젖은 마음들을 말려 주세요!

<박상미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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