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요계 매니저도 ‘극한직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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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작가 유병재가 연예인 버금가는 인기를 얻고 있다. 그는 케이블 채널 tvN의 코미디 프로그램 「SNL 코리아」 중 한 코너인 ‘극한직업’에 출연하면서 순식간에 유명인이 됐다. 스타 매니저의 고충을 그린 이 코너에서 그가 짓는 두려워하거나 억울해하는 표정은 생생함이 느껴진다. 고통을 참아가며 담당 연예인의 비위를 맞추는 모습도 연기에 사실감을 부여한다.

유병재가 연기하는 매니저의 모습은 안쓰럽기 그지없다. 잔심부름은 기본이요, 때로는 스타의 집안일도 도우며, 기분을 맞추려고 이유 없이 맞는 것도 다반사다. 연예인이 일정과 업무를 잘 완수할 수 있도록 조력하는 수준을 넘어 수발을 드는 노예가 된다. 자신을 못 살게 구는 연예인 때문에 무의식적으로 몸을 떨고, 너무 무서운 나머지 바지에 오줌도 싼다. 웃음을 위해 과장된 것이지만 성격이 괴팍하거나 인성이 성숙하지 못한 스타를 만나면 충분히 현실로 나타날 수 있는 이야기다. 유병재를 통해서 보는 매니저의 삶은 정말 눈물겹다.

멤버 2명이 목숨을 잃은 레이디스코드의 교통사고 전 활동 당시의 모습. | 강윤중 기자

멤버 2명이 목숨을 잃은 레이디스코드의 교통사고 전 활동 당시의 모습. | 강윤중 기자

매니저는 고달픈 직업이다. 봉사가 모든 행동의 기반이며, 장거리 운전이 빈번하고, 담당 연예인의 홍보를 위해 관계자들에게 아양을 떨어야 할 때도 많다. 육체노동자이면서 동시에 감정노동자이기도 하다. 출퇴근과 휴일이 불규칙해 개인 일정을 갖기도 쉽지 않다. 결정적으로 보수가 적다. 경력이 쌓이고 직위가 높아지면 대우가 당연히 달라지겠지만 신입의 월급은 십수 년 전이나 지금이나 대부분 100만원 안팎에 불과하다. 코너 제목처럼 실로 극한직업이다.

연기자에 비해 가수의 매니저는 더 힘든 편이다. 방송과 행사를 주로 소화하는 터라 이동이 잦은 탓이다. 인기가 높거나 아이돌이면 업무는 특히 심해져 두세 시간 운전하는 것을 하루에 여러 번 반복하게 된다. 공연 직전까지 곁에 있고 촬영 중에도 주변에 머물러 있어야 하니 제대로 쉴 수도 없다. 담당 가수가 스케줄을 진행하고 있을 때 여력이 된다 싶으면 소속사 내 다른 연예인의 이동을 추가로 담당하기도 한다. 운전이 많은 긴장을 동반하는 활동이기에 로드 매니저의 피로도는 과할 수밖에 없다.

「SNL 코리아」에서 연예인 매니저 역할을 연기하고 있는 방송작가 유병재. | tvN 제공

「SNL 코리아」에서 연예인 매니저 역할을 연기하고 있는 방송작가 유병재. | tvN 제공

지난 9월 두 새내기 가수의 생명을 앗아간 레이디스코드의 교통사고는 매니저를 고단하게 하는 활동 패턴과 그리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경찰과 고속도로순찰대, 도로교통공단의 합동 실험 결과, 사고 당시의 차량 속도가 시속 137㎞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사고가 난 영동고속도로의 제한 속도보다 시속 30㎞나 빨리 달렸다. 매니저는 아마도 빨리 서울로 올라가서 쉬어야겠다고 생각하고 과속을 했을 듯하다. 행사를 마친 현지에서 숙박하라는 지시를 받지 않은 이상 회사든, 원래 숙소든 빨리 복귀하는 것이 매니저에게도 좋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모한 운행은 안타까운 사고로 연결됐다.

가수들의 스케줄이 많으면 많을수록 매니저는 자연스레 고위험 노동자가 된다. 가수들보다 먼저 일어나고 늦게 자서 잠이 부족한 데다가 운전 자체로 긴장도가 높으며, 일정에 늦지 않으려고 과속이나 곡예운전을 하는 일이 흔한 까닭이다. 아무리 소속사에서 안전교육을 한다고 해도 그들이 잡는 스케줄은 과속을 할 수밖에 없게끔 하니 사고 인자를 항시 보유하는 셈이다. 매니저의 피로 누적은 자칫 가수의 인명을 흔드는 것으로 귀결될 수 있다. 매니저들이 격무에서 해방되는 시스템의 변화가 필요하다.

<한동윤 대중음악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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