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은 ‘우리는 전범’ 인정… 일본은 ‘우리가 전범?’ 반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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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집안의 책장을 장식했던 브리태니커 등 백과사전이 요즘은 이원복 덕성여대 석좌교수의 <먼나라 이웃나라>에 자리를 빼앗겼다. 1987년 발간된 후 1700여만부가 팔린 이 시리즈 만화는 ‘국내 최초의 학습만화’ ‘부모가 권하는 유일한 만화책’ ‘외교관의 필독서’ 등으로 불리며 국민만화로 자리잡았다.

일본이 집단자위권 행사를 공식화하고, 미국과 중국 간 패권 경쟁이 심화하는 등 주변 국가의 행보가 심상치 않은 요즘, 국제문제 전문가보다 이원복 교수가 먼저 떠올랐다. 이원복 교수야말로 우리에게 ‘먼나라 이웃나라’의 진실을 잘 알려줄 것 같아서였다.

[유인경이 만난 사람]“독일은 ‘우리는 전범’ 인정… 일본은 ‘우리가 전범?’ 반문”

서울대 건축과 출신에 독일 뮌스터대에서는 미술사와 디자인을 전공했는데 만화를 그린 계기가 있나요.
“고등학교 다닐 때 어쩌다 아르바이트로 만화를 그리게 됐어요. 그게 계기가 돼 유학 가서도 부업으로 그린 거죠. 1975년 처음 독일에 가보니 정말 충격이었어요. 독일이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책임을 통감하고 철저히 반성하는 모습을 보면서 큰 감명을 받았어요. 외국인들에게도 차별 없이 대하며 라인강의 기적을 일궈낸 것은 우리나라가 지향해야 할 방향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디자인 공부를 하며 독일을 비롯해 유럽 구석구석을 둘러봤죠. 이때 세계화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간파했지요. 만화는 무엇보다 자유로운 상상력이 가능합니다. 사진과 달리 생략과 과장법 등을 활용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구요. 물론 처음에 단행본을 내려고 할 때 만화란 이유로 거절도 당했고 ‘왜 교수가 만화를 그리느냐’는 말을 듣기도 했죠.”

처음에 이 만화를 연재한 것이 1981년부터인데 세상이 참 많이 변했습니다.
“제일 변한 게 우리나라죠. 1981년 처음 나왔을 때만 해도 우리나라는 국민소득 1000달러 수준의 개발도상국이었지만 이젠 선진국입니다. 국민소득도 그렇고 올림픽 5위에 한류문화 등 엄청나죠. 그 사이에 독일은 통일되고, 중국은 세계의 공장에서 세계의 시장으로 부상했죠. 처음 만화를 그릴 때는 당연히 유럽의 강대국들을 위로 쳐다봤지만 이제는 동등한 시각에서 보게 되기에 이르렀습니다. 2년 전에 1만2000컷을 완전히 새로 그린 것도 이런 변화를 반영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지난해 5월, <먼나라 이웃나라> 완간을 기념한 동국대 특강에서 당초 예정됐던 스페인 얘기를 제쳐두고 ‘역사의식과 역사교육’이란 주제로 일본 극우 정치인의 망언 문제를 지적했죠.
“스페인보다 일본 극우 정치인들이 망언을 쏟아내는 배경을 알릴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일본과 독일, 두 나라 국민들의 생각에 깔려 있는 단어가 있습니다. 전범이란 단어입니다. 그런데 독일은 ‘우린 전범이다’라고 말하지만, 일본은 ‘우리가 전범인가’라는 물음표를 답니다. ‘전쟁에 졌으니까 그러는 것 아닌가’ 하는 의문들을 잠재의식에 깔고 있어요. 여기서 극우 발언들이 나오는 거죠. 최근 무한대로 돈을 푸는 ‘아베노믹스’라는 정책으로 경제 부활을 꿈꾸고 있는데, 아베노믹스는 20여년의 불경기로 불안과 공포를 느끼는 이들에게 일시적으로 아픔을 잊게 하는 아편주사를 놓는 것입니다. 일본의 경우 내수 중심 경제이기 때문에 통화가치 절하를 통한 수출기업 지원 정책으로는 경제가 제대로 살아날 수 없어요.”

그런데 똑같은 전쟁범죄에 대해 두 나라가 다른 태도를 보이는 이유가 뭘까요.
“우선 지리적 문제로 해석합니다. 일본은 섬으로 고립된 역사를 갖고 있는 반면, 독일은 교통국가라고 불릴 만큼 유럽의 중심에 있어 공존의 역사를 지닌 것이 가장 큰 차이죠. 무엇보다 독일은 범죄사실을 인정했습니다. 사실 전쟁에 진 것이 독일의 부흥에 가장 큰 동력이 됐습니다. 패자는 반성을 하고 사소한 일부터 국가혁신에 이르기까지 이를 극복할 만큼 노력을 합니다. 독일은 자신들의 부끄러운 역사도 그대로 가르치기 때문에 주변국의 신뢰를 얻을 수 있었고, 프랑스와 화해하고 공동 역사교과서로 공부하기 때문에 역사의식 문제로 주변국과 갈등을 빚을 이유가 없습니다. 

영국과 프랑스가 침체한 것도 어찌 보면 반성의 기회가 없는 ‘승자의 저주’일 수도 있어요. 우리도 IMF를 통해 허한 경제상태를 다졌고, 이번 세월호 사건 역시 대충대충 꾸리던 시스템을 바로잡는 계기로 삼는다면 단원고 아이들의 그 슬프고 억울한 죽음이 헛되지 않을 겁니다. 반면 일본은 전후 세대가 제대로 된 역사교육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반성도 안 합니다. 만주 침략이 있었던 1931년부터 태평양전쟁에서 패한 1945년까지의 역사를 일본은 애써 무시하고 역사교육에서도 다루지 않아요. 과거의 영광은 사라지고 불황으로 지쳐 있는 상황에서 아베 총리가 아베노믹스나 집단자위권 행사 결정 등으로 분위기를 살리려고 하고 있지만, 우익 정치인들의 단기 처방도 곧 효과를 다할 겁니다.”

일본은 물론 다른 나라에서도 극우파가 부상합니다.
“그건 그만큼 그 나라가 허약해지고 문제가 있다는 증거입니다. 아무리 길이 넓어도 양쪽 끝에는 쓰레기만 모입니다. 극우나 극좌가 같죠. 그 나라가 건강하면 그런 쓰레기는 그저 흘러가게 내버려둡니다. 하지만 나라가 흔들리면 그걸 악용하는 정치인들이 국민들을 선동하죠. 좌와 우는 균형감각을 갖고 공존해야 하지만, 극단적 좌우파는 그저 무시하면 됩니다.”

같은 나라면서도 가장 멀리 느껴지는 것이 북한인데요, 독일 같은 통일이 가능할까요.
“우선 우리와 독일은 역사도 다르고 남북한과 동서독끼리 보는 시각도 전혀 달라요. 독일은 전부터 지방자치제가 시행되어 서독에서도 동독을 분리된 다른 국가라기보다 사회주의를 시행하는 다른 주의 개념으로 봤습니다. 그러니 지금 독일 대통령과 총리가 모두 동독 출신이어도 문제가 없죠. 통일정책을 많이 논의하는데, 통일은 정책으로 하는 게 아닙니다. 국민정서와 상호교류가 해법이죠. 동독은 종교를 허용해서 동서 성직자 교류가 활발했고 양국민이 여행도 할 수 있었죠, 우리도 통일을 위해 민간 차원의 교류가 확대되고 기초의약품이나 군량이 아닌 식품을 지원해주는 등 꾸준한 지원과 교류를 통해 우리가 한 민족임을 확인시켜야 합니다.”

[유인경이 만난 사람]“독일은 ‘우리는 전범’ 인정… 일본은 ‘우리가 전범?’ 반문”

우리도 한강의 기적을 이뤘고, 한류문화로 세계화에 앞장서고 있지만 어느 때보다 양극화 갈등이 심합니다. 교수님이 보기에 가장 큰 문제는 뭘까요.
“국민의 마음을 사로잡을 ‘국부’가 없다는 것입니다. 역사가 짧은 미국도 조지 워싱턴 초대 대통령이 있고, 프랑스는 드골, 독일은 아데나워 등을 상징적 국부로 존경합니다. 역사를 살펴보면 완벽한 위인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모두 장단점이 있고 인간적 흠결이 있어요. 공산주의 사회학의 대표 인물인 칼 마르크스 역시 정작 자기 한탄과 분노를 제어하지 못하고 가정부의 월급도 제대로 안 줬다는 자료도 있죠. 중요한 것은 정권 후임자의 태도입니다. 중국 마오쩌둥은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5000만명을 죽인 인물인데도 여전히 베이징 톈안먼 앞에 동상으로 위엄을 자랑합니다. 후임자인 등소평이 7공 3과, 즉 공적이 7개이고 과실이 3개면 훌륭한 분이라며 덕과 아량으로 전임자를 존중한 덕분입니다. 

시진핑도 10여년의 트레이닝을 거쳐 최고지도자가 됐는데 정부와 정책의 일관성, 지속성이 중국을 강력한 나라로 만들어 갑니다. 우리는 일제 치하, 미군 군정, 남북 분단 이후에 사실 기득권이 다 모자만 바꿔쓰고 권력을 유지해 권력층에 대한 존경심을 갖기 힘듭니다. 또 정권교체는 있어도 이양은 없어요. 지금 이명박 정부의 녹색성장이나 4대강 사업을 말하면 ‘미쳤냐?’고 해요. 비판할 것은 비판해야 하지만, 너무 끌어내리기나 흠잡기를 하는 것은 우리에게도 불행한 일입니다.”

<먼나라 이웃나라>만이 아니라 와인에 대한 책도 썼고, 국가가 아니라 지역별로 다룬 <가로세로 세계사>도 출간했는데, 그 많은 공부와 자료 수집을 언제 합니까. 각 나라의 신문, 잡지, 방송 자료도 다 소개되던데요.
“제겐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우리 세대는 잡학에 능한 세대예요. TV나 전자게임이 없으니 보통 세계사나 세계고전문학 100권 정도는 다 읽었습니다. 제 또래가 아마 가장 버라이어티한 삶을 산 세대일 겁니다. 한국전쟁, 4·19, 군사독재, 민주화를 모두 체험했으니까요. 제가 1946년생인데 ‘짚신에서 발리까지’라고 말합니다. 전후 지독하게 가난해 짚신을 신다가 고무신, 운동화, 국산 구두에서 명품구두로 발전한 것을 표현한 말입니다. 다양한 경험을 하면 세상이 다채롭게 보이죠. 또 유럽의 경우 기본적으로 공통점이 많아요. 기독교 국가이고 라틴어를 기본으로 해서 기본적으로 의식구조와 언어가 비숫합니다. 그래도 가장 중요한 것은 국민정서여서 각 나라마다 대개 20번 정도 방문해서 시장도 가고, 선술집도 가고, 사람들과 술 마시며 이야기도 합니다. 일본은 40여차례쯤 갔어요. 다들 제가 엄청나게 돈을 벌었다고 생각하는데 인세로 번 돈은 여행과 자료수집으로 거의 다 썼어요. 집 외엔 주식이나 부동산도 없습니다.”

돈도 돈이지만 물리적으로 시간이 나는지요.
“게으르고 자유로우니까 가능합니다. 저는 제 나이의 남성들이 하는 골프나 사교모임을 전혀 하지 않아요. 교수 시절에도 학장 등 보직을 일부러 맡지 않았습니다. 수업을 하는 이외의 시간을 온전하게 자유롭게 그 순간에 제가 하고 싶은 일만 하며 삽니다. 다들 접대 술자리, 최고위과정 대학원 등 너무 부지런히 사는데 전 천성이 게을러 빈둥거립니다. 빈둥대다 마음이 동하면 만화를 그리거나 자료를 보는 일을 합니다. 가끔 주(술)님을 모시고 신앙생활(?)을 하죠. 심야기도도 하고 지인들과 부흥회도 하고요.(웃음) 덕분에 와인에 대한 책도 냈습니다. 출세나 남의 눈치 때문에 제 시간을 강제로 빼앗기지 않고 제가 선택한 일만 하면 가능합니다.”

고교·대학 동기인 손학규·김근태 전 의원과 1년 후배인 정운찬 총리는 정치권에 몸담았는데 정치권의 유혹을 받은 적은 없나요. 얼마 전 모 방송에서 박근혜 대통령을 ‘증여세 미납자’(아버지 박정희 대통령의 후광 덕분에 대통령이 되었다는 의미)로 표현했던데요.
“정치는 제 길이 아니에요. 큰 바위도 산에 있으면 아름답지만 끌어다 집에 놓으면 그저 마당의 정원석이 되듯 각자 역할이 있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진정한 애국은 만화를 그리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교수님은 본인의 직업에 너무 만족해 하는데 다들 직업은커녕 직장을 찾기조차 어려워합니다.
“전 만화가를 직업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어요. 가장 재미있는 놀이라고 생각해요. 젊은 세대에게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찾아 몰두하라고 말하고 싶어요. 소 꼬리보다는 닭 머리가 돼야 항상 기회가 있습니다. 아무리 보잘 것 없는 분야 같아도 거기서 정상이 되면 돈과 명예는 당연히 따라와요. 부모님들도 자녀에게 무조건 ‘공부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 나와야 취직 잘 한다’는 말씀은 마세요. 그건 자녀들에게 평생 월급쟁이가 되거나 재벌에게 충성하라는 말입니다. 저는 아프니까 청춘이 아니라 싸워야 청춘이라고 생각해요. 남이 쓰다듬어주기만 바라면 안 됩니다. 유리 천장이 단단해 보이고 어려운 시대지만 반드시 길이 있습니다. 주사위를 쥐고 있지만 말고 던지는 도전을 해야 합니다.”

곧 칠순인데 나이를 느낍니까. 외모는 너무 젊다 못해 어려 보이는데요.
“신체적으로나 정서적으로나 나이를 의식하지 못합니다. 성장이 정지된 것 같아요. 10년 전에 느낀 감성이 지금도 비슷하거든요. 천성이 낙천적이고 유치해서이기도 하고, 조직생활을 안 하니 잔소리나 눈치보기 등 스트레스가 없기 때문일 겁니다. 현재 아내와 아들이 캐나다에 있어서 독거노인인 셈인데 오히려 더 가족애가 끈끈해지고 각자 자유로워 좋습니다.”

부와 명예를 가진 사람, 성공했다는 이들을 숱하게 만났지만 진심으로 부러움을 느끼기는 이원복 교수가 처음이다. 하지만 그의 자유로움과 부와 명예 역시 그가 선택하고 이룬 업적이지 누가 선물로 준 것은 아니다. 이 교수는 재미있는 일을 찾으라고 하는데 ‘재미’란 말의 의미조차 가물가물하다. 헐!

<글·유인경 경향신문 선임기자 alice@kyunghyang.com>
<사진·권호욱 선임기자 bigg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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