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바젤홍콩’이 주는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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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근히 질투가 일긴 했지만, 현실적 격차는 컸다. 국내 아트페어들은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을 것 같은 틈마저 느껴졌고, 싫든 좋든 홍콩이 이젠 아시아의 맹주로 완전히 안착했음을 인정해야만 했다. 3일간의 일정을 뒤로 하고 지난 5월 18일 막을 내린 ‘아트바젤홍콩’에 대한 얘기다.

올해로 두 번째를 맞은 ‘아트바젤홍콩’의 운영방식은 체계적이었고 전시의 밀도는 높았다. 40여년의 오랜 역사와 운영 경험이 만든 ‘아트바젤’이라는 브랜드 아래 세계 각국의 주요 화랑들과 슈퍼리치들이 홍콩으로 몰려들었으며 ‘미술쇼핑’을 향한 관람객들의 발길도 이어졌다.

아시아 무대의 중심이 홍콩으로 이동했음을 목도할 수 있었던 이번 행사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서구에 의한 아시아 무대의 재편’, 그리고 스케일·내용·형식 면에서 눈부신 진화를 거듭해온 ‘중국계 작가들의 무서운 질주’였다. 이 중 거대 자본과 작품을 무기로 아시아 공략을 가시화하고 있는 서구의 두 얼굴이야말로 고찰의 이유로 부족함이 없었다.

아트바젤홍콩, 홍경택, 펜, 2014.

아트바젤홍콩, 홍경택, 펜, 2014.

실제로 ‘아트바젤’ 측은 다소 클래식한 19세기 작품에서부터 가브리엘 오로즈코, 미켈란젤로 피스톨레토, 루치오 폰타나, 칸디다 훼퍼, 데이비드 호크니, 리차드 롱 등 현대미술의 정점에 있는 작품까지 다양하게 선보였다. 허나 좋은 작품을 더욱 많은 이들에게 소개하기 위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겉과 달리 그것 자체로 서구미술의 우수성을 과시하려는 측면도 없진 않았다.

이를 감추기 위해서인지 주최 측은 참여 갤러리의 약 50%를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할당했다. 하지만 이 또한 교묘한 전략으로 해석될 수 있다. 더 우려먹을 게 없는 유럽을 벗어나 아시아라는 미술 신대륙에 거부감 없이 안착하려는 책략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중요한 건 따로 있다. 바로 성공한 ‘아트바젤홍콩’이 남긴 과제다. 속내야 어떻든 ‘아트바젤’ 측의 기획력은 치밀했고 서비스 및 홍보는 물론 재원 마련을 위한 노력도 남달랐다. 개막 1년 전부터 시시콜콜한 정보까지 세계 주요 인사들에게 적극적으로 전달하며 관람을 유도했고, 엄격한 심사로 전시의 질을 끌어올렸다. 다소 실험적인 작품들도 과감히 선보임으로써 단순히 작품을 사고파는 마켓 이상의 가치(문화향유 및 교육)를 생산해냈다. 특히 젊은 전문가들을 운영의 핵심에 포진시켜 시대 흐름에 발 빠르게 적응하려 했다는 점, 수십여개가 넘는 동시다발적인 행사와 관광을 결합해 시너지 효과를 낸 점은 배울 점으로 충분했다.

홍콩에서 열린 2014 아트바젤홍콩을 찾은 관람객들이 전시된 작품들을 둘러보고 있다.

홍콩에서 열린 2014 아트바젤홍콩을 찾은 관람객들이 전시된 작품들을 둘러보고 있다.

한데 이와 견줘 우리나라 아트페어들은 출발만 빨랐을 뿐, 발전적인 미래를 제시하기보단 당장 눈앞의 이익에 급급한 양태에서 벗어나지 못해 왔다. 더구나 실력 있는 기획자와 작가를 발굴·육성·적용하는 시스템의 부재, ‘아트바젤홍콩’이 지닌 경제자유지역이라는 장점과 무관세라는 정책적 뒷받침 이상의 매력적인 정부 정책은 거의 없다시피 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슬프게도 이는 한국 미술은 변방이라는 시선에 덧대어 미술시장마저 영세하다는 인상을 가중시키는 원인이 되고 있다. 국내 아트페어에 한국 미술인들조차 점점 무관심해지는 이유로 작용하고 있다. 그렇지만 이런 비교와 지적이 국내 정부 인사 및 아트페어 운영 관계자들에게 얼마나 올곧게 수용될지는 미지수다.

<홍경한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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