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짝 발탁은 없었고 아쉬운 탈락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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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명보 감독은 마지막까지 고민했던 포지션으로 수비형 미드필더와 왼쪽 풀백 백업 자원을 꼽았는데, 둘 다 런던올림픽 멤버의 손을 들어줬다.

‘온 힘을 다하여 국민들의 희망이 되겠습니다. ONE KOREA.’

지난 5월 8일 2014년 브라질 월드컵 최종 국가대표팀 명단 23명을 발표한 파주NFC(대표팀트레이닝센터) 풋살경기장 무대에 새겨진 문구다. 최종 명단 발표는 최근 발생한 세월호 참사 희생자에 대한 묵념으로 시작됐다. 검은 양복 옷깃에 노란 리본을 단 홍명보 축구대표팀 감독(45)은 “저희 팀을 비유할 때 ‘홍명보호(號)’라고 말씀해 주시는데, 세월호 사고를 통해 무한한 책임을 알게 됐다”며 “사명감을 갖고 어려운 대한민국에 희망의 불씨를 전하도록 온 힘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우리는 브라질 월드컵 참가 32개국 중 가장 힘든 도전을 해야 하는 팀이다. 어제 밤 늦게까지 고민했다”는 홍 감독은 무겁고 숙연한 분위기 속에서 월드컵에 출전할 태극전사를 한 사람씩 호명했다.

홍명보 축구대표팀 감독이 8일 경기도 파주 NFC에서 열린 2014 FIFA 브라질월드컵 최종명단 발표식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이석우 기자

홍명보 축구대표팀 감독이 8일 경기도 파주 NFC에서 열린 2014 FIFA 브라질월드컵 최종명단 발표식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이석우 기자

23명 중 12명이 런던올림픽 동메달 주역
2년 전 홍 감독과 런던올림픽에서 사상 첫 동메달 신화를 함께 쓴 이른바 ‘홍명보의 아이들’이 대거 발탁됐다. 브라질 월드컵 최종 명단 23명 중 절반이 넘는 12명이 런던올림픽 동메달 주역이다. 공격수 박주영(29·왓퍼드), 구자철(25·마인츠), 미드필더 기성용(25·선덜랜드), 김보경(24·카디프시티), 수비수 김영권(24·광저우 헝다), 골키퍼 정성룡(29·수원) 등 홍명보의 아이들은 전 포지션에 골고루 포진했다. 런던올림픽 본선 직전 부상과 주전경쟁으로 낙마한 수비수 홍정호(25·아우크스부르크), 미드필더 한국영(24·가시와), 골키퍼 김승규(24·울산)까지 포함하면 15명에 이른다.

이들 대부분은 홍 감독의 지도자 데뷔 무대였던 2009년 이집트 20세 이하 월드컵부터 호흡을 맞춰 왔다. 1980년대 말에서 1990년 초반 태생의 선수들은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 2012년 런던올림픽을 거치며 오랜 기간 발을 맞췄다. 말 그대로 눈빛만 봐도 아는 사이다. 홍 감독이 대표팀 슬로건으로 발표한 ‘원 팀, 원 스피릿, 원 골’(one team, one spirit, one goal)도 잘 알고 있다.

월드컵을 불과 1년 남기고 대표팀 지휘봉을 잡은 홍 감독은 자신이 잘 아는 선수, 궁합이 잘 맞는 선수를 택했다. 비난 여론을 무릅쓰고 소속팀 경기에 거의 나서지 못한 박주영을 발탁한 것도 홍명보 축구에 최적화된 공격수이기 때문이다.

홍 감독은 “런던올림픽이 끝난 뒤 선수들을 다 잊었다고 말씀드린 바 있다. 홍명보의 아이들이라고 하지만 그게 전부가 될 수는 없다. 2014년 월드컵을 위해 철저히 준비하겠다”고 말했다. 조기 귀국해 대한축구협회 도움 하에 ‘황제 훈련’ 논란에 휩싸인 박주영에 대해서도 “다른 선수였더라도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했을 것이다. 박주영이라서 다들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듯하다. 월드컵은 세계 최고 기량의 선수와 경기한다. 경험을 배제할 수 없고, 박주영을 대체할 선수를 찾지 못했다”고 말했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 본선 직전 부상과 컨디션 난조 등으로 고배를 마신 구자철과 이근호(29·상주), 곽태휘(33·알 힐랄)는 4년 전 아픔을 씻어냈다. 깜짝 발탁은 없었지만 아쉬운 탈락은 있었다. 올 시즌 독일 분데스리가 주간 베스트11에 세 차례나 선정된 왼쪽 풀백 박주호(27·마인츠)와 최근 K리그에서 9경기 연속 공격포인트를 올린 중앙 미드필더 이명주(24·포항)는 최종 엔트리에 포함되지 못했다. 윤석영(24·QPR)과 박종우(25·광저우 부리)가 대신 뽑혔다.

홍명보 감독과 코치진들이 8일 경기도 파주 NFC에서 열린 2014 FIFA 브라질월드컵 최종명단 발표식에서 세월호 희생자들의 명복을 비는 묵념을 하고 있다. | 이석우 기자

홍명보 감독과 코치진들이 8일 경기도 파주 NFC에서 열린 2014 FIFA 브라질월드컵 최종명단 발표식에서 세월호 희생자들의 명복을 비는 묵념을 하고 있다. | 이석우 기자

결국 홍명보의 아이들만 살아남았다?
홍 감독은 “박주호 제외를 결정하는 게 가장 힘들었다. 발가락 부상 부위의 10%가 아물지 않았고, 실밥도 풀지 않은 상태다. 재발 가능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며 “안툰 코치가 윤석영의 경기를 지켜봤고, 소속팀 감독 평가도 긍정적이라 대체 선발했다. 이명주는 K리그에서 좋은 활약을 펼치고 있지만 지금 우리 대표팀에는 수비에 능한 미드필더가 필요했고, 결국 박종우를 택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결국 홍명보의 아이들만 살아남았다’는 차가운 시선도 존재한다. 홍 감독은 마지막까지 고민했던 포지션으로 수비형 미드필더와 왼쪽 풀백 백업 자원을 꼽았는데, 둘 다 런던올림픽 멤버의 손을 들어줬다.

일부 언론들은 박주호의 경우 봉와직염에서 회복 중인 박주영이나 무릎 부상으로 치료 중인 기성용과 비교해 다소 모순이라고 지적했다. 또 이명주는 지난해 포항의 K리그와 FA컵 우승 때 수비형 미드필더로 활약했다고 지적했다. 일부 네티즌들은 패러디 사진까지 쏟아냈다. 연기자 김보성의 유행어인 ‘으리(의리)’를 차용해 “홍 감독이 ‘엔트으리’를 발표했다”는 패러디도 나왔다.

이번 홍명보호는 역대 9차례 월드컵 대표팀 중 최연소팀이다. 평균 나이 25.9세다. 2006년 독일 월드컵(26.4세), 2010년 남아공 월드컵(27.4세)보다 젊어졌다. 30대는 곽태휘(33)가 유일하다. 월드컵 유경험자도 박주영과 기성용, 김보경, 정성룡, 이청용(26·볼턴) 등 5명에 불과하고, 18명이 첫 출전이다. AFP통신은 “곽태휘가 유일한 30세 이상 선수다. 홍명보 감독이 젊은 팀을 꾸렸다”고 전했다.

비록 평균연령은 낮아졌지만 큰 무대 경험은 앞선다는 평가다. 최종 엔트리 필드 플레이어 20명 중 무려 17명이 해외에서 활약 중이다. 국내파는 김신욱(26), 이용(28·이상 울산), 이근호(상주)뿐이다. 특히 유럽리그에서 뛰는 선수들이 늘었다. 남아공 월드컵 때는 이른바 ‘양박쌍용’ 박지성(33·에인트호번)과 박주영, 이청용, 기성용 등 6명이었는데, 이번에는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활약 중인 손흥민(21·레버쿠젠)과 홍정호, 구자철, 지동원(22·아우크스부르크), 영국 무대에서 뛰고 있는 기성용과 김보경, 이청용, 윤석영, 박주영 등 9명이다. 아울러 평균 신장도 184㎝를 넘겨 유럽 선수들과 대등한 몸싸움도 기대된다.

역대 최연소 월드컵 대표, 30대는 곽태희가 유일
1995년 K리그 유공(현 제주) 지휘봉을 잡았던 발레리 니폼니시(71·러시아) 현 CSKA 모스크바 고문은 러시아 스포츠신문 R-스포르트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은 거스 히딩크 감독이 이끈 2002년 이후 가장 강한 팀이다. 유럽파가 상당히 많고, 체력적으로 강하다. 러시아로서는 막연히 기다려서는 안 되는 팀”이라고 말했다.

홍 감독은 “역대 월드컵 멤버 중 최강은 아니다. 하지만 최고의 팀이 되기 위해 준비하겠다. 연령은 낮아졌지만 경험과 재능은 결코 뒤지지 않는다고 본다”고 자신했다. 아울러 홍 감독은 “세월호 참사로 인한 부담이 나쁜 영향을 준다고만 생각하지 않는다. 국가와 국민을 위해 희망의 불씨를 꺼트리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사상 첫 원정 8강을 노리는 홍명보호는 12일부터 파주NFC에서 훈련을 시작한다. 28일 튀니지와 평가전을 치른 뒤 30일 최종 전지훈련지 미국 마이애미로 떠난다.

<박린 일간스포츠 기자 rpark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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