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이빨 수아레스, “인간계 최고를 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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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아레스는 올 시즌 29골로 프리미어리그 득점왕을 일찌감치 예약하며 24년 만의 소속팀 리그 우승 도전을 이끌고 있다.

경기 도중 상대 선수 팔을 물어뜯는 엽기적인 반칙을 저질렀다. 목덜미를 물어뜯은 적도 있다. 자신을 할리우드 액션을 잘하는 ‘다이버’라고 폄훼한 상대 감독 코앞에서 다이빙 세리머리를 했다. 월드컵 8강전에 자기팀 골문 안으로 들어가던 공을 스파이크하듯 손으로 쳐내 퇴장당했다. 이 모든 사건은 우루과이 공격수 루이스 수아레스(27·리버풀)가 벌인 일이다. 악동을 넘어 천하의 망나니 아닌가.

경기 중 상대선수 2번이나 물어뜯어
하지만 그를 미워하는 팬들은 많지 않다. 축구종가 잉글랜드의 프리미어리그를 뒤흔들고 있는 출중한 축구실력 때문이다. 수아레스는 올 시즌 29골로 득점왕을 일찌감치 예약하며 24년 만의 소속팀 리그 우승 도전을 이끌고 있다. 브랜든 로저스 리버풀 감독은 “수아레스는 1억 파운드(약 1739억원)의 가치를 지녔다. 5~6년간 세계 최고 위치를 유지해온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레알 마드리드), 리오넬 메시(바르셀로나) 수준이다”라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호날두와 메시를 ‘신(神)계 선수’라 부르는 축구팬들은 최근 수아레스를 ‘인간계 최고 선수’로 인정하고 있다.

축구계 대표 악동은 이탈리아 공격수 마리오 발로텔리(AC밀란)다. 2010년 인터밀란 시절 이탈리아 TV 토크쇼에 라이벌팀 AC밀란 유니폼을 입고 출연해 조세 무리뉴 감독을 맹비난한 건 약과다. 그해 이탈리아 브레시아 여자 교도소가 궁금해 자신의 벤츠 승용차를 타고 담벼락을 향해 돌진하기도 했다. 이듬해 맨체스터시티 소속이던 발로텔리는 화장실에서 폭죽을 갖고 놀다가 불을 질렀는데, 다음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전에서 골을 넣은 뒤 ‘왜 늘 나만 갖고 그래’(Why always me?)라는 문구가 적힌 티셔츠를 선보였다.

[박린의 뷰티풀 풋볼]핵이빨 수아레스, “인간계 최고를 향해”

이런 발로텔리보다 ‘돌+아이’ 지수가 더 높은 선수가 바로 수아레스다. 딱 1년 전 벌어진 ‘핵이빨 사건’이 대표적이다. 수아레스는 지난해 4월 22일 첼시와 경기 도중 상대 수비수 이바노비치의 팔을 깨물었다. 1997년 복싱 경기 중 에반더 홀리필드의 귀를 물어뜯은 타이슨처럼 수아레스는 ‘핵이빨’이란 오명을 안게 됐다. 영국 언론들은 “수아레스에게 영화 ‘양들의 침묵’에서 식인킬러 한니발 렉터가 썼던 입마개를 씌우자”고 맹비난했고, 수아레스는 10경기 출전 정지를 받았다.

수아레스는 2010년 11월에도 상대 선수를 물어뜯었다. 당시 아약스에서 뛰던 수아레스는 에인트호번전 도중 오트만 바칼의 목덜미를 물어 7경기 출전 정지 징계를 받았다. 2011년 10월에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흑인 선수 파트리스 에브라에게 인종차별을 했다. 리턴매치에서 수아레스는 에브라와 악수까지 거부해 ‘비 매너 선수’로 찍혔다.

2012년 10월에는 에버턴 경기 도중 골을 넣고 데이비드 모예스 당시 에버턴 감독(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감독) 코앞에서 다이빙 세리머리를 했다. 할리우드 액션을 잘하는 선수를 ‘다이버’라 부르는데, 모예스 감독이 자신을 다이버라고 폄훼한 것에 대한 항의였다. 수아레스는 최근 우루과이 한 사무업체 광고에 신입사원 역할로 출연해 동료가 어깨를 건드리자 옆으로 다이빙하기도 했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 8강에서는 ‘신의 손’ 사건도 일으켰다. 수아레스는 가나와 연장전에서 우루과이 골문으로 들어가던 공을 손으로 쳐내 퇴장당했다. 가나는 이로 얻은 페널티킥을 실축했고, 4강엔 우루과이가 올랐다. 수아레스는 퇴장길에 실축 장면을 보고 환호했다. 수아레스는 지난해 1월 맨스필드와 잉글랜드 FA컵 64강에서는 ‘핸드볼 골’을 넣기도 했다.

28경기서 29골, 팀 최다골 기록 경신
지난해 12월 5일. 수아레스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14라운드 노리치시티와의 홈경기에서 무려 4골을 몰아쳤다. 전반 15분 40m 넘는 지점에서 상대 골키퍼 키를 넘어 뚝 떨어지는 환상적인 드롭킥으로 선제골을 터트렸다. 마치 만화에서 보던 독수리슛 같았다. 이후 상대 수비수 머리를 넘기는 볼트래핑 후 강력한 오른발슛 등으로 3골을 더 뽑아냈다. 올 시즌 EPL 베스트골로 뽑혀도 손색없는 골들이었다.

노리치시티 앤소니 필킹턴은 “사람들이 우리 수비를 보고 탄식하고 있는데, 수아레스의 골 장면을 보면 그런 소리를 할 수 없다”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우루과이 대표팀 동료 에디손 카바니(파리 생제르맹)는 “수아레스가 만약 리버풀을 떠날 경우 가레스 베일이 레알 마드리드 이적 시 기록한 세계 최고 이적료(약 8600만 파운드·추정치)를 넘어설 것”이라고 극찬했다. 샘 앨러다이스 웨스트햄 감독은 “수아레스는 아주 독특한 유형의 공격수다. 어마어마한 양의 에너지, 그가 장악하는 공간, 엄청난 골결정력을 지닌 수아레스는 멈출 수 없는 선수”라고 감탄했다.

이바노비치를 물어뜯어 10경기 출전 정지를 받은 수아레스는 올 시즌 초반 5경기에 나오지 못했다. 남들보다 뒤늦게 출발하고도 수아레스는 4월 11일 현재 프리미어리그 득점 선두를 달리고 있다. 28경기에서 무려 29골(어시스트 11개)을 뽑아냈다. 팀 동료로 ‘SAS 특공대’라 불리는 득점 2위 다니엘 스터리지(20골)보다 9골을 더 넣었다. 이미 로비 파울러가 1996년 세운 리버풀 한 시즌 리그 최다골(28골)을 경신한 수아레스는 리그 한 시즌 최다골(34골) 경신도 가시권에 두고 있다.

‘수아레스의 팀’ 리버풀은 1990년 이후 24년 만의 리그 우승에 도전 중이다. 통산 18차례 리그 우승을 차지했지만 최근 우승은 1990년이 마지막이었고, 지난 4시즌은 6~8위에 그쳤다. 리버풀은 최근 9연승을 달리며 4월 11일 현재 승점 74(23승5무5패)로 선두를 달리고 있다. 똑같이 5경기를 남겨둔 2위 첼시(승점 72), 7경기를 남겨둔 3위 맨체스터 시티(승점 70)와 우승 3파전을 펼치고 있다.

수아레스는 ‘핵이빨 사건’을 딛고 그라운드에서 완벽히 재기했다. 이적 대신 잔류를 택한 수아레스는 기행보다 축구에 집중했고, 그라운드에서 속죄했다. 악동 이미지도 벗고 순한 양으로 다시 태어났다. 지난 시즌 공격수임에도 옐로카드를 무려 10장이나 받은 수아레스는 올 시즌엔 옐로카드를 4장밖에 받지 않았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그의 선행이 뒤늦게 밝혀지기도 했다. 수아레스는 다운증후군을 앓고 있는 7세 소년이 공원에서 리버풀 공을 갖고 노는 것을 보고 가던 길을 멈췄고, 소년이 자신의 다리 사이로 공을 넣는 알까기(Nutmeg)를 할 수 있게 도와주는 등 즐거운 시간을 보낸 게 축구팬에 의해 알려졌다.

아내 소피아 수아레스의 내조가 크게 도움이 됐다. 소피아는 수아레스에게 “경기장에서 더 이상 안 좋은 태도를 보이면 관전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고, 가족에 대한 애정이 남다른 수아레스에게 즉효약이 됐다.

수아레스의 조국 우루과이는 2014년 브라질 월드컵 D조에서 잉글랜드, 이탈리아, 코스타리카와 죽음의 조를 이뤘다. 상대 3개국엔 공통점이 하나 있다. 아픈 만큼 성숙해지고, 인간계를 넘어 신계로 진군 중인 수아레스를 향한 두려움에 떨고 있다.

<박린 일간스포츠 기자 rpark7@joongna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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