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까지 ‘힐링’만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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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유행하는 힐링이란 것이 자칫 어떤 사회적인 모순들을 개인에게 돌리려는 방편이 되는 건 아닌지 심히 우려스럽다.

2013년의 화두는 ‘힐링’인가 보다. 도처에 힐링이라는 말이 난무하고, 서점가에서도 여전히 힐링에 관한 책들이 강세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베스트셀러에 이어 <천 번을 흔들려야 어른이 된다>가 수많은 독자들을 힐링하고 있다. 이와 비슷한 스님들의 책들도 수많은 중생을 힐링하고 있다.

산중에 들어와 살면서 속절없이 넓은 마당에 닭을 길렀다. 수탉 한 마리에 암탉 여남은 마리를 길렀는데, 주변을 맴도는 족제비와 너구리가 걱정이 되어 예비로 수탉 한 마리를 더 사다 넣었다. 두 마리의 수탉은 눈만 마주치면 싸워댔다. 싸움에 진 수탉은 꽁지가 빠졌다. 

꽁지 빠진 닭이라는 말이 그냥 나온 것이 아니었다. 무참히 꽁지 털을 뽑힌 수탉은 졸지에 외로운 처지가 되었다. 모이를 먹지도 못하고, 암탉들 주변을 어정거려도 거들떠보지 않았다. 왕따가 되어 겉도는 이 볼품없는 닭을 불쌍히 여긴 아내가 따로 불러 모이를 주었다. 그 뒤로 꽁지 빠진 수탉은 아내의 뒤만 강아지처럼 졸졸 따라다녔다.

2013년 11월 삼성그룹이 서울 신촌동 연세대 대강당에서 청년 2천여 명을 대상으로 토크콘서트 ‘열정樂서’를 진행했다. 이날 토크콘서트에서는 김봉영 삼성에버랜드 사장과 김난도 서울대 교수가 이 시대 청춘들에게 필요한 덕목과 성공을 위한 조언을 전했다. 사진은 김난도 서울대 교수의 토크콘서트 모습. | 삼성그룹 제공

2013년 11월 삼성그룹이 서울 신촌동 연세대 대강당에서 청년 2천여 명을 대상으로 토크콘서트 ‘열정樂서’를 진행했다. 이날 토크콘서트에서는 김봉영 삼성에버랜드 사장과 김난도 서울대 교수가 이 시대 청춘들에게 필요한 덕목과 성공을 위한 조언을 전했다. 사진은 김난도 서울대 교수의 토크콘서트 모습. | 삼성그룹 제공

어느 날, 손님들이 놀러왔다. 마당에 노는 닭들을 보며 한 마리 잡자고 청했다. 나는 아내에게 닭을 한 마리 잡자고 부탁했다. 아내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바로 닭의 목을 비틀어 밥상에 올렸다. 그날 밥상에 올라온 것은 아내가 그동안 불쌍히 여겨 따로 모이를 주던 ‘꽁지 빠진 수탉’이었다.

어떤 권리도 동정으로 얻어지지 않아
많은 기업들이 한솥밥을 강조하며 직원들과 한 가족임을 즐겨 말한다. ‘노사화합’이라는 문구를 공장 벽에 즐비하니 붙여 놓기도 한다. 그러나 부동산 투기와 방만한 운영으로 외환위기를 맞은 수많은 기업들은 곧바로 ‘한솥밥을 먹던 가족’들의 목을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비틀어댔다. 

거리로 내몰린 수천의 노동자들은 자신이 믿었던 고마운 손에 목이 비틀려 가정이 파탄 나고, 심지어 노숙인이 되기도 했다.

인류의 역사를 돌아볼 때, 모든 권리의 이면에는 처절한 피와 눈물이 깃들어 있다. 결코 어떤 권리도 동정으로 얻어진 것은 없다. IMF사태 때 노숙인이 되었다는 기업주의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오로지 죄라면 가정마저 팽개치고 날마다 야근과 철야에 충성했던 수많은 노동자들만이 영문도 모른 채 거리로 내몰렸다.

노숙인들을 위한 인문학이나 글쓰기 모임에서 그런 분들을 적지 않게 만났다. 그런데 그런 분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적지 않은 분들이 그런 처지를 자신의 무능함이나 운 나쁜 결과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았다. 나는 그분들에게 차마 힐링을 말할 수 없었다.

요즘 같은 불경기에도 성황을 맞는 업종이 둘이 있다. 하나는 아웃도어점이고, 하나는 간판가게라 한다. 기업들이 이윤을 높이기 위해 열 사람이 일하던 것을 다섯 사람에게 시키고 다섯 사람의 목을 잘라냈다.

한창 일할 수 있으며, 일해야 하는 40~50대의 퇴직자들은 퇴직금에 빚을 얹어 자영업에 뛰어든다. 골목마다 노래방, 김밥가게, 당구장, 식당들이 즐비하다. OECD 11개국의 평균 자영업 비율이 13%인 데 비해 우리의 자영업은 34%를 상회한다. 그런 판이니 아홉이 망해야 겨우 하나가 살아남을 수 있는 실정이다. 

그나마 돈이 된다 싶으면 피자 장사부터 동네 마트까지 대기업들이 문어발을 들이밀고 있다. 새벽 두 시에도 통닭을 배달하고, 24시간 잠을 자지 않고 뛰어도 한 해를 버티지 못한다. 골목의 가게들은 수시로 주인이 바뀌고, 그때마다 간판을 새로 바꿔 달아야 한다.

가게를 차릴 만한 형편도 못되는 퇴직자들은 하릴없이 산으로, 산으로 몰린다. 전철마다 등산복을 입은 중년들이 가득하다. 세계의 유명 아웃도어 브랜드들은 때아닌 호황을 맞은 한국으로 총집결했다. 빈손으로 산을 오르내리기 맥 빠진 이들이 산에 떨어진 밤이며 도토리를 주워 오는 바람에 다람쥐들이 아사 직전에 몰리고 있다.

망한 아홉의 자영업자들은 빚에 몰려 고시원과 PC방을 전전하다가 노숙인으로 전락하기도 한다. 막상 이런 이들도 그것을 자신이 잠을 너무 많이 잤다거나, 김밥을 맛있게 말지 못한 탓으로 돌린다. 그것마저 궁하면 팔자타령을 하곤 한다.

시대의 아픔이 개인 잘못이란 말인가
청년들의 사정은 더욱 암담하다. ‘88만원 세대’라 불리는 청년들의 암울한 미래는 승자라 일컬어지는 서울대생들마저 아프게 한다. 불안과 과도한 경쟁 앞에서 아파하는 그들에게 “아프냐, 청춘 때는 너만 아픈 게 아니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힐링이 던져진다. 천 번을 흔들려야 어른이 된다고 위로한다. 그렇다면 삼성의 이건희 회장 아들이나 고관대작의 자식들도 청춘 때는 아팠을까. 그들도 천 번을 흔들렸을까.

서울의 전철역마다 방호창에 시들이 걸려 있다. ‘보랏빛 노을이 물든 강가에서 영혼의 램프를 닦는다’처럼 감상적인 시들이 많이 눈에 띈다. 그런 감미로운 시들로 이 시대의 아픔이 힐링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군부독재 시절에 조세희 소설가가 외롭게 쏘아올린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의 불편한 의미를 다시금 새겨보게 된다. 진정한 힐링이란 우리의 상처를 마취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 상처를 통해 나를 아프게 하는 것들을 직시하고, 분노하게 하는 힘이 아닐까.

요즘 유행하는 힐링이란 것이 자칫 어떤 사회적인 모순들을 개인에게 돌리려는 방편이 되는 건 아닌지 심히 우려스럽다. 엄동설한의 거리에서 천 일을 넘게 절규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나 스물네 명이 목숨을 잃은 쌍용차의 해고노동자들, 알바나 시간제 계약직으로 살아야 하는 젊은이들의 아픔이 과연 개인의 잘못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관에서 잘못한 수로공사로 물에 집이 잠긴 이에게 면벽수도를 권한다면 과연 그 아픔이 치유될 수 있을까. 주먹을 휘두른 자가 아파하는 이에게 힐링을 말하는 이 비상식적인 짓이 언제까지 계속되어야 할까. 천 번쯤 흔들리면 아프지 않게 될 수 있을까. 아프면 분노해야 하는 것이 상식적인 반응이 아닐까. 힐링의 부드러운 손이 우리의 목을 비틀기 전에.

이제 힘을 지닌 이들은 ‘안녕들 하십니까’라고 외치는 그 물음에 응답해야 할 것이다.

이시백 소설가 ecback@daum.net


[비상식의 사회]언제까지 ‘힐링’만 할 것인가

이시백 작가는

비상식이 돼버린 우리 사회 곳곳의 현실을 날카롭게 비판하는 ‘비상식의 사회’ 필진으로 참여한 이시백 작가는 교사 출신 소설가다. 1988년 <동양문학> 소설 부문 신인상으로 등단한 후 <사자클럽 잔혹사>(2013) <나는 꽃도둑이다>(2013) <종을 훔치다>(2010) <890만 번 주사위 던지기>(2006) <누가 말을 죽였을까> (2008)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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