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락하는 맨유, 퍼거슨 시절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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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시즌 맨유는 38경기에서 단 5패만 기록했지만 올 시즌 6경기 만에 벌써 3패를 당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24년 만의 최악의 시즌 출발.’
BBC 등 다수의 영국 언론들의 지난 9월 29일자 헤드라인이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전통명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가 흔들리고 있다. 박지성(32·에인트호번)이 2005년부터 지난해까지 뛴 맨유는 한국 팬들에게 강팀으로 각인되어 있다. 맨유는 지난 시즌 역대 최다인 20번째 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하지만 ‘디펜딩 챔피언’ 맨유는 10월 4일 현재 2013~2014 EPL에서 2승1무3패(승점 7)로 12위에 그치고 있다. 맨유가 개막 후 6경기에서 승점 7점에 머문 건 1989~1990시즌 이후 24년 만이다. 지난 시즌 맨유는 38경기에서 단 5패만 기록했지만 올 시즌 6경기 만에 벌써 3패를 당했다. 도대체 맨유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빅클럽 경험 없어 헤매는 모예스 감독
맨유는 지난달 28일 웨스트브로미치와 홈경기에서 1-2로 져 12위로 추락했다. 영국 언론 데일리 메일은 맨유의 침체 원인으로 ▲감독 교체 ▲선수 운용 미흡 ▲경기 후반 응집력 부족 ▲선수 영입 실패 ▲주축 선수들의 부진을 꼽았다. 5가지 원인 중 3가지가 알렉스 퍼거슨 전 맨유 감독(72)의 부재에서 비롯됐다.

7월 13일 데이비드 모예스 감독이 맨유와 태국 프로축구 올스타와의 친선전에서 입장하고 있다. | 연합뉴스

7월 13일 데이비드 모예스 감독이 맨유와 태국 프로축구 올스타와의 친선전에서 입장하고 있다. | 연합뉴스

지난 27년간 맨유에서 모두 38차례 우승을 이뤄낸 퍼거슨 감독은 지난 5월 은퇴를 선언하면서 후계자로 데이비드 모예스 에버턴 감독(50)을 직접 지목했다. 퍼거슨과 같은 스코틀랜드 출신인 모예스 감독은 2002년 하위권이던 에버턴을 맡아 2004~2005시즌 팀을 4위에 올려놓으며 지도력을 인정받았다. 하지만 에버턴과 맨유는 차원이 다른 팀이었다.

“모예스 감독이 너무 큰 신발을 신는 게 아닌지 모르겠다.” 전 영국 대표팀 주장 앨런 시어러(43)의 우려는 현실로 나타났다. 모예스 감독은 리그 개막 후 우승 경쟁자 첼시(0-0 무)와 리버풀(0-1 패), 맨체스터 시티(1-4 패)를 상대로 고작 승점 1점을 얻는 데 그쳤다. 

스완지시티와 개막전 이후 필드골이 제로다.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에서도 지난 3일 샤흐타르 도네츠크(우크라이나)와 조별리그 A조 2차전에서 1-1로 비겼다. 시즌이 4분의 1도 지나지 않았지만 벌써부터 “퍼거슨 감독은 대체 불가능한 존재였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데일리 메일은 “지난 시즌과 올 시즌 가장 큰 차이는 감독이다. 퍼거슨의 부재는 쉽게 대체하기 어렵다. 감독이 바뀐 뒤 빠른 템포와 폭넓은 패스 등이 사라졌다. 경기 종료 15분 전 패배를 무승부로, 무승부를 승리로 바꾸던 응집력과 투지가 사라졌다”고 진단했다.

빅클럽 운영 경험이 없는 모예스 감독의 서투른 선수 운용도 도마 위에 올랐다. 모예스 감독은 중소구단 에버턴 시절 주축 선수 16명으로 시즌을 치렀다. 반면 모든 대회 우승을 노리는 맨유는 두터운 선수층과 적절한 로테이션이 필수적이다.

하지만 모예스 감독은 지난달 14일부터 일주일간 크리스탈 팰리스-바이어 레버쿠젠-맨체스터 시티로 이어진 3연전에 노장 센터백 네마야 비디치(32)와 리오 퍼디낸드(35)를 계속해서 주전으로 내보내는 오판을 저질렀다. 결국 체력이 떨어진 두 수비수는 맨시티전에 1-4 대패 빌미를 제공했다. 샤흐타르 도네츠크전에선 이와 반대로 선발 9명을 바꾸는 지나친 로테이션으로 혼란을 가져왔다.

모예스 감독이 퍼거슨 감독의 보좌진 승계 부탁을 무시한 것도 치명타였다. 퍼거슨 감독을 보좌해 맨유 왕국을 일궈냈던 마이크 펠란 수석코치와 르네 뮬레스틴 코치, 에릭 스틸 골키퍼 코치를 내쳤다. 특히 뮬례스틴 코치는 경기별 세부전술 훈련을 완벽히 짜서 로빈 판 페르시(30) 등 선수들의 두터운 신망을 받았었다. 에릭 스틸 코치는 “맨유가 지금 흔들리는 건 모예스 감독 옆에서 길을 제시해줄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모예스 감독은 퍼거슨 전 감독의 경고를 귀담아 들었어야 했다”고 쓴소리를 했다.

선수 영입 실패와 주전들의 부진
전적으로 모예스 탓만은 아니다. 한준희 KBS 해설위원은 “맨유는 여름 이적시장에서 사실상 실패해 멤버 구성이 약해졌다. 결국 미드필드 약세, 수준급 플레이메이커 부재 등의 문제를 초래했다”고 지적했다.

맨유는 지난 여름 이적시장에서 중앙 미드필더와 왼쪽 윙백을 원했다. 은퇴한 중원사령관 폴 스콜스(39) 대체자로 세스크 파브레가스(26·바르셀로나)와 루카 모드리치(28·레알 마드리드), 안데르 에레라(24·아틀레틱 빌바오)에 러브콜을 보냈지만 실패했다. 메수트 외질(25)과 티아구 알칸타라(22)는 각각 아스널과 바이에른 뮌헨에 빼앗겼다. 이적시장 마지막 날 에버턴의 마루앙 펠라이니(26) 한 명을 데려오는 데 그쳤다.

은퇴를 선언한 알렉스 퍼거슨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감독이 5월 13일 영국 맨체스터 올드 트래퍼드에서 열린 스완지 시티와의 홈경기 고별전이 끝난 뒤 통산 20번째 프리미어리그 우승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은퇴를 선언한 알렉스 퍼거슨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감독이 5월 13일 영국 맨체스터 올드 트래퍼드에서 열린 스완지 시티와의 홈경기 고별전이 끝난 뒤 통산 20번째 프리미어리그 우승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왼쪽 윙백도 소득이 없었다. 레이턴 베인스(29·에버턴) 영입에 실패했고, 파비오 코엔트랑(25·레알 마드리드) 임대도 무산됐다. 모예스 감독은 “맨유는 최소 두 명의 선수를 더 영입했어야 했다”고 아쉬워했다.

한 위원은 “맨유는 라이벌팀들과 비교해 액면가 멤버 구성도 약해져 있다. 일부 선수들의 노쇠화와 발전 정체도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맨유 스쿼드만 놓고 보면 맨시티와 첼시 등에 밀린다. 비디치와 퍼디낸드는 세월의 무게를 견뎌내지 못하고 있고, 윙어 애슐리 영(28)과 루이스 나니(27)는 기대 이하의 모습이다. 설 자리를 잃은 가가와 신지(24)는 친정팀 독일 도르트문트 복귀설까지 돌고 있다.

반전 드라마 가능할까
맨유와 6년 계약을 맺은 모예스 감독에게 팀을 이해하고 재건할 시간을 보장해줘야 한다는 여론도 만만치 않다. 1992년부터 20년간 맨유에서 뛴 게리 네빌(38·은퇴)은 “퍼거슨 감독도 부임 초기 3~4년간 강한 압박을 받았다. 모예스 감독에게도 선수들과 팀 문화를 이해하는 데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문성 SBS 해설위원도 “현재 이적시장이 닫힌 상황에서 뾰족한 수가 없다. 일단 퍼거슨 감독의 고별사처럼 시간을 두고 모예스 감독을 지켜보는 방법뿐이다”라고 말했다. 퍼거슨 감독은 지난 5월 13일 올드 트래포드에서 홈 고별전을 마친 뒤 “좋지 않은 시절들이 있었지만 맨유는 내 곁에 있었고, 선수들과 스태프들도 나를 지지해줬다. 이제 여러분들이 해야 할 일은 우리의 새로운 감독을 믿고 지지하는 것이다”라고 당부했다.

물론 내년 1월 겨울 이적시장에서 전력 업그레이드가 필요하다. 지금의 맨유는 판 페르시(30)나 루니(28)가 빠지면 힘을 못쓰는 원맨팀에 가깝다. 박 위원은 “현재 맨유에서 제 몫을 해주는 포지션은 공격수 판 페르시와 루니, 중앙 미드필더 펠라이니 정도다. 우선적으로 아스널의 외질처럼 공격을 풀어줄 공격형 미드필더와 윙어를 보강해야 할 것 같다. 장기적인 선수 영입 플랜도 필요하다”고 전했다.

영국 데일리미러는 “맨유의 소유주 글레이저 가문이 내년 1월 이적시장에서 선수를 보강할 수 있도록 5000만 파운드(약 872억원)를 지원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빌바오의 미드필더 에레라와 에버턴의 왼쪽 윙백 베인스, 중앙 수비 엘리아큄 망갈라(22·포르투) 등이 우선순위에 올라 있다.

맨유의 레전드 라이언 긱스(40)는 4일 “지금 맨유는 팀으로나 개인으로나 모두 좋은 모습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변명하지 않겠다. 하지만 우리는 지난해 챔피언이었고, 우리는 다시 그 능력을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과연 긱스의 말처럼 모예스 감독의 맨유가 반전 드라마를 쓸 수 있을까.

<박린 일간스포츠 기자 rpark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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