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랑팡, 피프티 패덤즈-다이버 워치의 선조, 군용 시계로도 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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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35년 예한 자크 블랑팡에 의해 스위스 쥐라 산맥 기슭 빌레레라는 작은 마을에서 태동한 블랑팡(Blancpain)은 그 설립연도만 놓고 봤을 때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시계 브랜드이다. 하지만 이들이 18~19세기에 제작한 시계들 중에는 현재까지 남아 있는 게 별로 없다. 

블랑팡 피프티 패덤즈 트리뷰트 투 피프티 패덤즈(Tribute to Fifty Fathoms)

블랑팡 피프티 패덤즈 트리뷰트 투 피프티 패덤즈(Tribute to Fifty Fathoms)

대를 잇는 가족경영체제 하에 블랑팡은 극소량씩 맞춤제작 방식으로만 주로 시계를 제작했고, 가족기업의 역사가 끝나는 20세기 초반에 들어서야 비로소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특히 1953년에 처음 그 모습을 드러낸 다이버 워치 피프티 패덤즈(Fifty Fathoms)는 기존의 올드한 이미지의 블랑팡을 단숨에 젊고 혁신적인 이미지로 대체시켰다.

프랑스 해군 전투 잠수부 위해 개발
잠수시계라는 개념 자체가 전무했던 1950년대 초반, 블랑팡의 피프티 패덤즈는 같은 해 등장한 롤렉스의 서브마리너와 함께 최초의 현대적 다이버 워치였다. 피프티 패덤즈의 등장 배경은 이러했다. 1952년 프랑스 해군 산하의 엘리트 전투 잠수부들의 캡틴이었던 로버트 말로비에르와 그의 팀원들은 작전 임무 수행 중 깊은 바닷속에서도 최상의 시인성(visibility)을 보장하고, 방수가 잘 되면서 튼튼한 시계를 만들어달라고 당시 블랑팡의 CEO였던 장 자크 피터에게 요청한다. 그 자신도 아마추어 다이버였던 자크 피터는 이 제안을 진지하게 받아들였고, 1년여의 연구개발 끝에 탄생한 것이 바로 피프티 패덤즈였다.

시계 이름에 사용된 패덤즈란 50년대 당시 실제 선원들이나 해군에서 수심을 가리키는 가장 보편적인 용어였다. 피프티 패덤즈를 현대의 미터로 환산하면 91.45m의 수심이다. 이는 비슷한 시기에 수심 100m 방수 기능을 자랑했던 롤렉스의 서브마리너와 비슷한 수준이었다.

1953년도 출시된 초창기 오리지널 피프티 패덤즈

1953년도 출시된 초창기 오리지널 피프티 패덤즈

피프티 패덤즈의 특별함은 이렇듯 뛰어난 방수기능과 41㎜나 되는 당시로서는 대범한 크기의 케이스, 블랙 다이얼 바탕에 어두운 곳에서도 발광해 시간을 확인할 수 있는 특수 야광도료로 처리된 인덱스, 잠수시간을 계산할 수 있는 눈금이 표시된 단방향 회전 베젤, 그리고 크라운을 감아줄 필요 없이 손목의 움직임에 따라 자동으로 태엽이 감기는 무브먼트를 사용한 점에 있었다.

이 같은 특징들은 현대의 다이버 시계들에도 고스란히 적용되고 있다. 50년대 초 블랑팡이 얼마나 선견지명이 있는 업체였는지, 또한 피프티 패덤즈가 왜 후대의 시계 애호가들로부터 다이버 워치의 선조라고 불리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최초 개발 단계에서부터 밀리터리 스펙, 곧 군용 사양에 충실했던 피프티 패덤즈는 50년대 중·후반부터 70년대 말까지 프랑스 해군을 비롯해, 체코, 독일, 미국(US Navy Seal)의 특수부대원들에게 가장 선호되는 다이버 워치 중 하나였다. 또한 프랑스가 낳은 세계적인 해양탐험가 자크 이브 쿠스토의 다큐멘터리 필름 <침묵의 세계>(Le Monde du silence)에서 걸프해 연안을 탐험하는 쿠스토의 손목에 피프티 패덤즈가 착용돼 화제가 되기도 했다.

올해 신제품 피프티 패덤즈 바티스카프

올해 신제품 피프티 패덤즈 바티스카프

스와치 그룹에 인수된 이후로 출시된 피프티 패덤즈 컬렉션은 한층 더 고급스럽게 환골탈태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 피프티 패덤즈 탄생 50주년인 2003년을 기점으로는 플래이백 크로노그래프, 퍼페추얼 캘린더, 문페이즈, 투르비용 등 다양한 복잡 기능들을 구현한 시계들까지 선보여 하이엔드 다이버 워치의 한 전형을 보여주기도 했다.

2009년도에는 수심 1000m까지 방수되는 500패덤즈를 발표해 다이버 워치 종가로서의 위엄을 과시했다. 올해로 탄생 60주년이 되는 피프티 패덤즈는 블랑팡을 세상에 널리 알린 최초의 대중적인 히트 컬렉션이자, 현대 스포츠워치의 한 표본이 되는 명작이다.

장세훈 <시계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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