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 전도사’ 차동엽 신부 “지푸라기라도 잡고 희망을 외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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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그러울 만큼 지루한 무더위와 장마에 지쳐서일까. 아니면 국정원 국정조사, 세제개편, 전세대란 등 갑갑하기만 한 뉴스 때문일까. 주변에서 웃음을 보는 게 드물어졌다. 밖에서 보는 모습도 별반 다르지 않은 듯하다. 우리나라가 사회갈등 지수에서 OECD 국가 중 2위를 차지했다는 보도를 보면 괜히 마음이 울적해진다. 그런데 희망을 외치는 이가 있다. ‘희망 전도사’, ‘희망 멘토’, ‘희망 배달꾼’ 등으로 불리는 차동엽 신부다. 인천 가톨릭대학교 교수이자 미래사목연구소 소장인 그는 1년에 500회 이상 강의를 하며 전국민들에게 “지푸라기라도 잡고 희망을 외치라”고 강조한다. 희망을 부르면 진짜 희망이 찾아올까. <무지개원리>, <바보존>, <희망의 귀환>이란 책을 쓴 베스트셀러 작가이기도 한 차 신부를 만나 장마 뒤에 진짜 희망과 무지개가 찾아올지를 물었다.

신부님은 우리 사회가 너무 절망을 양산하고 절망을 판다고 지적합니다. 대체 누가 절망을 파는 걸까요.
“절망을 통해 이득을 보려는 이들이죠. 가장 대표적인 것은 정치인들입니다. 대중들이 절망에 빠져야 그들을 선동하기 쉬우니까요. 상업인, 저술가들, 선생과 교수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절망적인 분위기를 만든 뒤 자신의 말이나 상품, 책을 통해 대중들이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서 돈을 버는 겁니다. 또 이득은 보지 않아도 늘 불평불만을 늘어놓는 이들은 동지 확보 차원에서도 절망적인 분위기를 만듭니다. 표피적으로 느끼는 절망은 물질에 대한 절망이지만, 가장 나쁜 절망은 가치에 대한 것입니다. 나란 사람은 가치가 없다, 존재감이 없다 등 자기 가치에 대한 긍정이 없는 사람은 자신을 지탱하지 못해 자괴감에 빠지고 자살에 이르기도 하죠.”

[유인경이 만난 사람]‘희망 전도사’ 차동엽 신부 “지푸라기라도 잡고 희망을 외쳐라”

그런데 희망이 부르면 옵니까. 그냥 막연히 생기나요. ‘좋은 일이 생길 것이다’ ‘앞으로 나아진다’고 희망을 가져도 결과가 안 좋으면 ‘희망 고문’이 아닐까요.
“제 희망론은 희망 콘텐트에 관한 것이 아닙니다. 희망 콘텐트, 즉 무엇이 우리에게 희망이냐는 것은 각자가 자신의 처지에 맞게 채워야 할 몫이죠. 희망과 관련해 제가 주목하는 건 희망 현상 또는 희망 형식입니다. 내용이야 어떻든 희망이라는 ‘현상’ 그 자체가 지니는 엄청난 모멘텀(동력이라 불러도 좋다)을 주시하자는 말입니다. 껍데기 희망으로라도 계속 버티면 속이 희망으로 차오릅니다. 우리 인간 안에 존재하는 균형추는 자기 회복력이 있어요. 누구나 불의를 보면 균형추가 그것을 선행으로, 선함으로 바로잡아주려는 작동을 합니다. 아무리 이 사회가 엉망이고 아파도 치유하는 힘은 결국 인간의 양심입니다. 그래서 항상 부패한 조직에서도 양심선언을 하는 이들이 나와서 사회의 빛과 소금 역할을 하는 겁니다.”

신부님 앞에 ‘희망 전도사’ ‘행복 전달자’ ‘희망 멘토’ 등 수식어가 많습니다.
“전 희망이 들어가면 다 좋습니다. 절망한 이들에 대한 연민과 긍휼함이 제게 희망운동을 하라고 부추깁니다. 종교인에게 1인자란 표현은 안 어울리지만, 전 희망 전문가, 희망 석학 등 희망에 관한 한 1인자가 되고 싶은 욕심을 감추지 않습니다. 제 책을 읽은 최인호 선생이 ‘사상가가 돼라’고 권했는데 정말 감사한 말씀이고, 희망 사상가가 되려 합니다.”

어릴 때도 그렇게 희망적이었나요. 아니면 노력으로 희망을 가꿔가는 건가요.
“전 타고난 꿈쟁이, 희망쟁이인 것 같아요. 어릴 때 너무 가난해서 공고에 들어갔고 늘 끼니와 학비 걱정을 했지만, 전 항상 밝고 명랑한 아이였어요. 제 아버지가 이북 출생인데 고구려 기마민족의 피가 흐르는 것 같습니다. 큰 땅을 보면 그렇게 기분이 좋아져요. 고난이 클수록 희망도 차오르고요.”

성당만이 아니라 기업체 등에서도 희망 강의를 하는데 각계각층과 소통이 잘 됩니까.
“관료들을 상대할 때 가장 힘들어요. 직업상 스스로를 가둬두는 데 익숙해서 쉽게 마음을 열지 않아 갑갑해요. 반면 중소기업 사장들이 가장 호응이 좋습니다. 그들은 희망을 확인하고 가능성이 있으면 투자할 의욕이 있어요. 돈만이 아니라 인생을 투자할 의욕에 넘치더군요. 그런 중소기업인들이 나라 걱정도 가장 많이 하고, 우리나라를 살리는 분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린 학생들과 소통할 때는 자격지심에 스스로 물러나는 경우가 많았어요. ‘나 같은 노땅 꼰대와 이야기하기 싫어할 거야’ ‘나를 좋아하지 않을 거야’란 선입견을 가졌으니까요. 그런데 진심은 통한다고 노력하니 잘되더군요. 젊은이들도 사랑을 확인하면 마음을 엽니다.”

청년백수들도 그렇고, 10대 청소년들도 직장보다는 꿈이 없는 것이 더 문제인 것 같습니다.
“우리 청년들이 꿈이 없는 것은 철학이 없이 그저 주변에 반응만 하며 살아서 그렇습니다. ‘열심히 공부해 명문대 가라’는 말만 하니 무슨 멋진 꿈을 키우겠습니까. 청춘이니 그렇다고 위로만 해줄 게 아니라 따끔하게 야단을 쳐야 합니다. 애정을 담아 야단을 치고 지적을 하면 그들도 받아들입니다. 요즘 청년들이 꿈과 희망을 잃어가는데 주범은 선생들입니다. 고등학교에서는 늘 다른 아이들과 성적을 비교하며 절망에 빠뜨리게 하고, 대학 4년 동안도 그저 취업만 강조하니 나약하고, 고뇌하지 않는 청년을 만드는 겁니다. 젊은이들은 기성문화의 피조물이에요. 기성세대인 선생들이 각성해야 합니다.”

신부님은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병리이자 문제를 철학의 부재라고 지적했습니다.
“그동안 우리는 철학을 너무 고상하고 개념적인 것으로만 여겼어요. 그저 대학에 들어가서 배우는 교양과목으로만 생각했지요. 철학은 초등학교 때부터, 아니 유치원 때부터 가능합니다. 주변과 세상에 질문을 던지는 것이 철학이고, 어른들은 그런 질문을 잘 하도록 도와줘야 합니다. 칸트·니체 등을 내세우지 말고 아이가 질문을 던지면 스스로 답을 구하게 돕는 것, 아이가 사색하고 그 생각을 소화하도록 도와줘 그것이 체득화되면 개인도 사회도 건강하게 됩니다.”

철학이 빈곤하게 된 이유는 뭘까요.
“무엇보다 학교 커리큘럼이 디지털화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종이 교과서가 컴퓨터나 노트북으로 대체되어 공부하는 데 여백이 없어졌어요. 여백 속에 사색이 있는 겁니다. 아날로그적 교재가 부활되어야 해요. 교과서나 공책의 여백에 낙서도 하고 밑줄도 치며 생각거리를 찾아야죠. 그런 여백 속에서 교과목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와 인생에 대한 진실한 질문이 나오고, 그게 바로 철학하는 삶입니다. 그런데 부모건 선생이건 아이들에게 정답, 즉 정해진 답만 강요하고 가르쳐주니 아이들이 무슨 생각을 합니까. 교육이 바뀌려면 100년이 걸린다는 심정으로 지금부터 차근차근 철학 공부를 해야 합니다.”

[유인경이 만난 사람]‘희망 전도사’ 차동엽 신부 “지푸라기라도 잡고 희망을 외쳐라”

대부분 신부님이라고 하면 세속을 떠나 느긋하고 여유로운 모습을 떠올립니다. 그런데 신부님은 교수에 강의에 저술활동까지 분 단위로 바쁜 생활을 하는데 그 많은 스케줄을 어떻게 소화합니까.
“열정이 있으면 뭐든 다 할 수 있습니다. 열정이 식으면 소강국면이 되고요. 열정은 사랑이고, 주변 사람들에 대한 측은지심입니다. 저는 장가를 가지 않아 마누라 바가지나 아이들 교육에 신경 안 쓰고 편히 사는데 남들이 너무 힘들어 보여서 그들에게 강의건, 책이건 뭔가 도움을 드리고 싶어 매일 열심히 일합니다.”

상당히 ‘튀는’ 신부이신데 사제단에서 혹시 따돌림을 당하거나 비난을 받지는 않습니까.
“가톨릭계에서만이 아니라 사회 곳곳에서 제게 거부감을 느끼는 이들, 저항감을 느끼는 이들도 많겠지만 그것 역시 현실로 받아들입니다. 욕을 안 먹으면 심심할 정도예요.(웃음) 그런데 저 역시 누군가 튀는 놈이 나오면 욕을 하거든요. 그래서 비난도 속 편하게 받아들입니다.”

최근 이 정부에서 국민통합위원회 민간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처음엔 강력히 거부했습니다. 우리 신부들의 반 이상이 야당 성향인데 반 이상으로부터 욕을 먹을 것이 확실하니까요. 또 국민통합위원이라는 것도 상당히 불편한 자리이고 힘든 역할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다 대승적 판단을 했죠. 만약 야당이 정권을 잡아 이 정부가 야성이라면 수락했을까…. 정파에 상관없이 본질을 보자고 판단해서 참여하기로 했습니다. 한 달에 한두 번 회의를 하는데 진정성이 느껴지더군요. 우리 위원들은 범정부적으로 가려고 합니다. 즉 차기 정부에도 유효한 과제를 논하고 실현하려고 합니다.”

희망 전도사이면서도 힘들 땐 울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신부님도 우십니까. 가장 최근에 운 건 언제입니까.
“자주 울지는 않지만 가끔 웁니다. 힘들어서 우는 것이 아니라 감사해서 울 때가 많습니다. 혼자 차 운전하고 갈 때 제가 이만큼 잘 버티고 강하게 살아낸 것이 감격스럽고 고마워서 가끔 웁니다. 지난달에도 펑펑은 아니고 찔끔 울었습니다. 특별한 일이 아니라 감사해서 그랬을 겁니다.”

베스트셀러 작가에 전국을 누비며 강의를 하니 독자나 신도들로부터 질문을 받을 텐데,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은 뭔가요.
“제일 흔히 받는 질문은 ‘진짜 신이 있습니까’란 질문이고, 그리고 ‘이 좋은 세상에 왜 신부가 됐나요’란 질문입니다. 그밖에는 자신이 겪는 고통들의 해결법에 대한 질문이죠.”

요즘 종교계는 교단 갈등도 심각하지만 점점 신도들이 줄어 고민이라고 합니다. 종교계에 희망이 있나요.
“세계사적으로 길게 봐야 합니다. 모든 역사는 리듬을 탑니다. 정점에 이르면 다시 바닥을 치고, 바닥에서 다시 올라오는 리듬이 반복됩니다. 전 그 리듬에서 희망을 봅니다. 인간에게는 종교성이 있고 결국 신을 찾게 됩니다. 과거 X세대들이 신의 실체를 부정했지만 슬슬 배신자들(?)이 나와 성당이나 교회에 다니거든요. 사춘기 아이를 보는 부모의 마음으로 기다리면 됩니다. ‘지가 반항하고 방황할 테면 해봐라, 어디 끝까지 가봐라’란 마음으로 기다리면 신도들도 돌아오거든요.”

현대인들에게 종교는 어떤 역할을 합니까.
“인간이 한계에 부딪힐 때 내 곁에서 그걸 지탱해줄 존재가 있다는 것, 그것만큼 든든한 존재와 역할이 있을까요. 그동안 종교나 하느님은 그저 간섭하는 자로만 여겨졌지요. 교회에 꼭 나와라, 밤낮으로 회개하고 기도하라, 나쁜 짓 하지 말아라 등등…. 그러니 피곤하고 안 만나고 싶은 겁니다. 그건 하느님의 안목에서 볼 때 아주 유치한 개념이죠. 신의 본분은 도와주는 것입니다. 나약하고 힘든 우리를 도와주는 것이 신의 역할이고, 종교의 존재 이유랍니다. 그래서 저는 필요할 때만 신을 찾아 기도하는 ‘얌체 기도’도 충분히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얌체 기도도 기도니까 그걸 빌미로 해서 그 사람을 꼬셔서, 개과천선시켜서, 사람 만들어서 부려먹어 보려는 하느님의 고단수 전략이죠.”

세속적인 질문을 드려 죄송합니다만, <무지개원리>도 140만부나 팔리는 등 인세를 많이 벌었을 텐데, 그 돈은 어디에 씁니까. 이해인 수녀는 그렇게 시집이 많이 팔려도 개인 재산이 없다던데요.
“수녀님들은 수도 공동체의 일원으로 공유가 제도화되어 있어 아무리 이해인 수녀님의 시집이 잘 팔려도 사유가 불가능하죠. 우리 신부는 사유가 가능합니다. 제가 강의나 책을 팔아 번 돈은 제가 운영하는 미래사목연구소의 연구와 운영비로 쓰입니다. 연구소 식구가 많아요, 사리사욕으로 쓰는 게 아니니 정정당당합니다. 또 신부들도 법적으로는 아니어도 관습적으로 정년이 70세인데요. 당분간은 절망에 빠진 이들에게 불을 꺼주는 심정으로 이런저런 일을 하지만 정년 후에는 국제무대로 진출할 계획입니다. 세계 곳곳에서 강의해달라고 초청한 곳이 많아요. 원래 출신이 학문이어서 학자로 돌아가려고 합니다. 학자로서 희망에 대한 사상을 정립할 예정입니다. 신부이자 희망 사상가가 될 희망에 벌써 가슴이 뜁니다.”

서울공대 재학 중 기계를 발명해 편리한 세상을 만드는 것보다 세상의 진정한 변화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고 싶다는 원을 세워 사제의 길로 접어든 차동엽 신부. 그는 이제 특정 종교를 넘어 모든 이들에게 희망의 귀환을 노래하고 있다. 그의 희망 철학도 감동적이지만, 필요할 때마다 살짝 하는 얌체 기도도 효과가 있다는 말에 큰 위안과 희망을 얻었다. 기도만으로 뱃살이 빠지거나 복권이 당첨될 리는 없지만 ‘주변 사람들 모두에게 평화와 기쁨을 주소서’라고 기도하면 괜히 착한 인간이 되는 것 같다. 이런 게 희망의 시작 아닐까.

<글·유인경 경향신문 선임기자 alice@kyunghyang.com>
<사진·이상훈 선임기자 dool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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