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대통령 정치활동 오래 했으면서 믿고 쓸 만한 여성인재 그렇게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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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희 민주당 전국여성위원회 위원장

“여성 대통령 맞습니까?”

박근혜 정부 취임 100일을 맞은 지난 6월 4일 민주당 전국여성위원회 유승희 위원장(54·민주당 국회의원)은 이런 도발적인 제목의 성명서를 발표했다. 여성인재 활용이나 여성인권 면에서 낙제점이라는 내용이다. 5일에 열린 국회 여성가족위원회에서는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의 성추행 파문과 관련한 여성가족부의 소극적인 태도에 “여성가족부가 윤 전 대변인 성추행 사건의 조직적 은폐의혹에 대해 미국 현장에는 못가더라도 조사위원회라도 만들라”며 조윤선 장관을 몰아세웠다.

5월 말에는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소속 공식방문단 자격으로 일본·필리핀·대만을 방문해 일본 하시모토 오사카 시장의 발언을 규탄하는 한편, 아시아 여성 정치인 네트워크를 구성해 아시아 국가들이 함께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공동노력을 펼치기로 합의했다.

[유인경이 만난 사람]“박 대통령 정치활동 오래 했으면서 믿고 쓸 만한 여성인재 그렇게 없나”

유승희 의원을 현충일 오전에 만났다. 아침 일찍 버스를 타고 단체로 현충사로 떠나는 지역구(서울 성북 갑)의 어르신들을 배웅하고 오는 길이라며 땀을 흘리면서 인터뷰 장소에 나타났다.

박근혜 정부 100일 평가에 ‘여성 대통령이 맞냐’고 성별을 따진 이유는?
“지난 대선 때 박근혜 후보는 ‘여성 대통령’을 유난히 강조하고 여성인재 활용을 약속하지 않았나. 그런데 경향신문의 보도에 따르면 중앙부처, 위원회, 외청 등 45개 기관의 장·차관, 주요 실·국장 등 222개 요직을 분석한 결과, 공석을 제외한 221명 가운데 여성 공직자는 5명으로 2.3% 불과하다고 한다. ‘첫 여성 대통령, 준비된 여성 대통령’으로 성평등 과제를 확고하게 추진해야 하는 정부의 여성 고위직 숫자가 이전 정부에 비해 나아진 것이 없어 여성 대통령으로서의 의지에 의문이 제기된다. 여성 고위공직자 비율이 낮은 것도 문제지만, 전체 일자리에서 여성 일자리의 환경이 악화하고 있는 데도 대통령이 시간제 일자리를 통해 여성 일자리를 확대하겠다는 것도 매우 우려스럽다. 박근혜 정부는 낮은 여성 경제활동참가율, 양극화 심화, OECD 최고 남녀 임금격차 등 양과 질 모두 열악한 여성 일자리 문제에 대한 근본적 대책 없이 시간제 일자리 중심의 고용률 달성에만 집중하며 가시적 성과만 내려 한다. 정치활동을 그렇게 오래 했으면서 주변에 그렇게 믿고 쓸 만한 여성 인재가 없는 것이 놀라울 뿐이다.”

여성 대통령이라고 꼭 여성을 기용해야 할까. 영국 대처 총리도 여성 각료를 거의 임명하지 않았다.
“대처 총리는 20세기 인물이고 지금은 21세기다. 칠레의 미첼 바첼렛 전 대통령은 퇴임 시 지지도가 80%였다. 그는 장관직을 비롯, 임명직 50%를 여성으로 기용하겠다는 공약을 지켰고 국민의 지지와 호응을 얻었다. 박 대통령이 각료 등에 여성을 잘 기용하지 않는 것은 평소 여성의 잠재력과 역량에 대한 신뢰와 믿음이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박근혜 정부가 성공하려면 남자들이 보여주지 못하는 비약적인 수준의 파격적 여성정책을 보여줘야 한다. 여성을 위해서가 아니라 국가를 위해 이미 객관적으로 입증된 여성 능력을 활용하자는 의미다.”

하지만 국가기관은 물론 기업에서도 여성 임원을 확대하라고 하면 ‘인재가 없다’고 난색을 표한다. 지난해 총선 때 민주당만 해도 여성의원 30% 공천을 지키지 못하지 않았는가.
“여성 인재가 없다는 것은 스테레오 타입의 변명이다. 명백한 오답인데 정답으로 알고 있다. 또 여자가 여자를 지지하지 않는다는 것도 시대착오적인 잘못된 이데올로기다. 민주당에서는 지역구에서 30%를 여성 위원장에 할당하기로 정치개혁특위에서 격론 끝에 통과시켰는데, 민주통합당으로 바뀌는 과정에 ‘배달 사고’가 났다. 당헌당규로 정하기로 해놓고 당명이 바뀌면서 흐지부지된 것이다. 총선 직전에 시기적으로 너무 임박한 일이어서 제대로 인재를 찾고 발굴할 시간도 부족하긴 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소위 486세대 남성들이 조직적으로 가장 최전선에서 거세게 반발하더라. 겉으로는 남녀평등을 외치면서 말이다. 최근 작고한 박영숙 선생도 ‘진보개혁적이란 남성들의 남녀 차별 인식 수준에 고통스러울 만큼 실망스러웠다’고 했다. 반면 오랜 정치경력을 가진 이들은 대놓고 여성할당제에 대한 반대는 하지 않는다.”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 사건을 비롯, 권력층 특히 정치권에서 성추행이나 여성비하 발언이 많은 이유가 뭔가.
“기득권, 고위층 인사들일수록 자신의 권력으로 여성만이 아니라 남성들까지 다 누르려 한다. 인간은 누구나 평등하다는 인권의식, 보편적 철학이 빈곤하다. 우리나라가 압축 고도성장을 하다보니 경쟁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인권의식은 부족한 것 같다. 윤창중 사건은 위력에 의한 전형적 성추행이고 성범죄다. 6월 19일부터 성범죄의 친고제가 폐지되어 여성단체 등에서 피해자를 대신해 고발할 수 있게 됐다. 60이 가까운 남성이 권력을 가졌다는 이유로 만약 20대 초반의 딸이나 누이의 몸을 만지고 호텔에서 맨몸으로 문을 열어도 참을 수 있겠는가. 당시 한국문화원장은 그저 은폐하려고 했지만 여성 직원이 자매애를 발휘해 용감하게 대처해 그나마 수면 위로 드러났다.

또 윤 전 대변인의 성추행 사건에 대한 청와대의 대처과정이 너무나 실망스러웠다. 박근혜 대통령이 이미 4대 악으로 천명한 바 있는 ‘성폭력’을 막기 위해서는 고위공직자의 성추행에 대해서는 더욱 엄한 잣대를 들이대야 한다. 공직자 인선에 더욱 신중을 기하고, 공직 기강을 바로세워 성평등 문화 형성에 앞장서주기를 대통령께 당부드린다.”

요즘 여야 여성 의원들이 모처럼 합심해 정당공천제 폐지 반대를 결의했다. 정치권에서는 정당공천제 폐지가 기득권을 내려놓고 국민에게 공천권을 주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시대에 역행하는 여성 역차별은 아닌가.
“정당공천제 폐지는 여성만의 문제는 아니다. 정당공천제는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되면 된다. 정당공천제는 최소한 그 사람에 대한 검증을 할 수 있는 수단이다. 그렇지 않으면 지방 토호세력, 돈많은 이들이 표를 긁어모아 다시 정경유착의 통로로 악용될 것이 명백하다. 특히 지방의회 선거의 경우 투표율이 낮아 거의 동원선거다. 동원력이 높은 사람이 당선된다. 그동안 정당에 의한 적극적 조치로 다양한 계층의 정치참여가 가능하지 않았나. 지방자치 원년인 1991년 기초의원 여성 비율은 0.9%에서 출발했다. 정당공천제와 비례대표제가 함께 도입된 2006년부터 15%, 2010년 21.6%로 도약할 수 있었다. 여성 의원들이 일어나 여성인권과 관련한 법안이 통과되고 지역에서도 생활밀착형 정치가 이뤄지고 있다. 또 여성뿐만 아니라 청년, 장애인, 다문화가정 등 소외계층의 대표성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정당공천제 폐지는 절대 반대한다.”

그럼 대안은 뭔가.
“후보를 선정하는 방식부터 상향식으로 바뀌고, 다양한 후보자가 실현하려는 정치 비전을 얘기하고, 공정한 방법으로 평가받는 공천제도 시스템이 바르게 지켜지면 된다. 핵심은 돈과 조직선거가 아닌 정책선거가 될 수 있도록 생활밀착형 정책, 사회 변화를 도모할 수 있는 정책 등을 통해서 후보자를 검증하고, 선택할 수 있도록 정책 여론조사 등으로 보완하는 것도 검토해야 한다. 정당공천제 폐지는 누군가의 표현처럼 아이 목욕시킨 물을 버린다고 아이까지 버리는 격이다. 정치에 대한 혐오감이 크다보니 정당이 너무 부정적으로 비치지만 정당이 책임을 회피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방송통신위원회의 기능 대부분이 미래창조과학부로 이전되는 것에 대해선 왜 그렇게 반대했나.
“국회 방통위 민주당 간사다. 방송과 통신은 한 국가의 이데올로기를 좌우할 만큼 중요하다. 그런데 정부조직법에 따르면 방송통신위원회는 미래창조과학부로 넘어가 법령제정권이 전혀 없는 빈 껍데기로 남게 될 지경이다. 이는 방통위의 사실상 해체로 방송정책을 장관 한 사람이 좌지우지하게 되는 건 받아들일 수 없다. 방송정책을 독임제 부처가 맡고 있는 나라는 없다. 새누리당이 협력을 잘했다면 지금쯤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 방송의 보도·제작·편성의 자율성 보장방안, 종합유선방송사업자(SO)와 방송채널사용사업자(PP)의 공정한 시장점유를 위한 장치 마련이 되어야 하는데 여전히 표류 중이라 안타깝다.”

[유인경이 만난 사람]“박 대통령 정치활동 오래 했으면서 믿고 쓸 만한 여성인재 그렇게 없나”

민주당 경제민주화 포럼의 공동대표를 맡아 활동하고 있다. 1989년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발기인으로 참여했고 민주당 경제민주화 정책의 멘토라 할 수 있는 한국개발연구원(KDI) 유종일 교수가 시동생이라 ‘경제민주화 집안’이라고 불리더라. 지난해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새누리당 박근혜 의원의 경제민주화는 돌팔이 외과의사 처방’이라고도 했는데, 민주당 경제민주화의 핵심은 뭔가.
“경제민주화의 핵심은 재벌개혁, 즉 재벌의 지배구조 근본에 대한 개혁이다. 현재 가계부채가 1100조원인데 재벌 사내 유보금이 183조원이고, 국민저축률은 최악이다. 민주당은 기존의 순환출자에 대해서도 규제해야 한다는 입장인 반면, 새누리당은 신규 순환출자에 대해서만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일부에서 경제민주화를 ‘재벌 때리기’로 보지만 모두 다 함께 잘 살자는 측면에서 대기업도 희생할 것은 희생하자는 얘기다. 박근혜 정부의 경제민주화 의지의 진실성, 그리고 창조경제의 성공은 경제민주화의 성공과 운명을 같이한다고 생각한다.”

여성 의원으로 드물게 서울의 지역구 의원이다. 지역구민과 소통하는 비결은 뭔가.
“지역구 의원은 부지런함, 성실함이 생명이다. 아무리 작은 민원도 경청하고 최소한의 해결지점을 찾으려 노력한다. 첫 민원 해결이 갑자기 연립주택이 늘어나 유동인구나 자동차 출입이 많아진 골목 입구의 전봇대를 뽑아 이동시킨 거다. 4∼5년간 민원을 해도 관련 기관에서 미루기만 했단다. 작은 일이지만 그런 일들이 지역구민의 행복과 편리를 돕는다고 생각한다. 주민들의 이야기를 경청하면 제도적 결함이 보여 대증요법 등 다양한 해법을 찾으려 한다. 또 5년째 60세 이상의 지역 어르신들, 특히 민주당원들을 중심으로 수요 모임을 열고 있다. 나는 의정활동 보고를 하고 어르신들도 의견을 밝히는 토론회 형식이다. 1만원의 회비를 내고 각각 식사비를 부담하는데도 열심히 모이신다. 난 민주당이지만 보수단체의 모임에도 참석하고 수시로 설문조사를 해서 그분들의 문제와 요구를 피부로 파악한다. 여성의원이어서 남녀노소 누구나 만날 수 있고 아파트 주부들과도 대화를 할 수 있는 등 장점이 더 많다.”

78학번이다. 같은 학번 중에 유시민, 심상정, 박영선, 전여옥 등 유난히 튀는(?) 정치인들이 많다. 유 의원도 이대 졸업 후 구로공단 근처 산돌문화원에서 총무를 맡아 빈민 구제활동을 하기도 하고 공장에 위장취업해 열악한 노동자의 현실을 파헤치기도 했다. 중견 정치인인 지금, 정치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앞에 예를 든 이들이 빛나는 스타라면 난 겨우 지금 빛을 보이는 수준이다. 한국여성의전화 인권사회위원, 서울YMCA 여성위원회 위원 등을 거쳐 2000년에야 민주당 여성국장 등으로 당의 일에만 충실했다. 노동운동을 한 것도, 여성단체 등에서 일한 것도 정치적 욕망으로, 혹은 무엇이 되겠다는 야심이 있어서가 아니다.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나, 우리 사회에서 무얼 할까를 치열하게 고민하며 일하다 결국 이 자리까지 왔다. 그런 과정을 거쳐 정치권에 진입해서 누구보다 정치적 진정성과 겸허함이 크고 두텁다고 자부한다. 정치는 종합예술이다. 모든 인간관계가 다 정치가 아닌가. 사람들과 소통과 공감을 나누려면 전략과 전술과 테크닉도 필요하다. 요즘 국민들의 정치 혐오, 정치 조롱이 심각한 수준인데 그건 기득권으로 자기 이익을 취하려는 일부 탐욕스러운 정치인들 탓이다. 정치는 서민과 대중의 손으로 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 건정한 야당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유승희 의원은 유난히 목소리가 크다. 그렇게 현장과 국회에서 큰 목소리로 소리를 질러도 그동안 그의 여성정책과 인권에 대한 정치활동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계파를 만들고, 주간 활동이 아니라 야간 활동을 더 많이 하는 정치인들에 비해 그는 너무 비정치적(?)이다. “목소리를 낮추고 미소를 짓고 당 지도층이나 기자들과 잘 지내라”고 충고하고 싶지만 혀를 깨물었다. 새정치 시대라는데 정치계도 좀 바뀌지 않겠는가 하는 일말의 희망을 갖고서.

<글·유인경 경향신문 선임기자 alice@kyunghyang.com>
<사진·이상훈 선임기자 dool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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