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박하고 해학적인 ‘민화, 상상의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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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꽃을 피운 민화는 부부 금실이나 장수, 건강, 다산, 출세 등 서민들의 간절한 바람이 녹아든 그림이다. 사대부나 화원 화가의 문인화에 비해 격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민화는 그동안 관심을 받지 못했으나 근래 민화만이 가진 대중적 속성이나 작가의 자유분방한 상상력, 해학적이고 소박한 맛 등 특성들이 주목받으면서 연구도 활발해지고 있다.

조선 후기 민화 ‘화조도’| 호림아트센터 제공

조선 후기 민화 ‘화조도’| 호림아트센터 제공

오랜만에 그야말로 ‘민화 잔치’가 열리고 있는 호림아트센터(서울 강남구 신사동)를 찾았다. 호림아트센터는 토기·자기·금속공예 유물로 유명한 성보문화재단 호림박물관의 신사분관이다.

‘민화, 상상의 나라-민화여행’이란 이름의 전시회에는 화조도, 책거리, 산수도, 인물도, 문자도 등 민화 각 부문을 망라한 80여점이 선보이고 있다. 호림박물관측이 지난 30여년간 수집해온 300여점의 민화 중 엄선한 것들이다. 그동안 일반에 공개되지 않은 것들인 데다가 수준도 높고 종류도 다양해 눈길을 잡는다.

2층 1전시장은 민화의 대표격이자 꽃이나 새·물고기·풀 등을 소재로 한 화조도로 꾸며졌다. 화려한 색감이 돋보이는 화조도는 주로 병풍으로 만들어져 여성들이 생활하는 공간을 장식했다. 화조도 등 민화를 감상하는 재미의 하나는 그림 속 상징들까지 읽는 것이다. 활짝 핀 모란은 부귀영화를 상징하고, 원앙 같은 한 쌍의 새는 부부 금실을 의미한다. 버드나무에 꾀꼬리가 있으면 부부 화합, 메기가 있으면 승진, 쏘가리가 있으면 출세 등을 뜻한다. 석류나 수박·포도송이같이 씨앗이 많은 것은 다산을 기원하는 마음이 실렸다.

화가의 기발한 상상력, 과장을 통한 해학·익살 등도 감상의 재미다. 물고기를 그린 민화를 어해도라고도 부르는데 하늘에서 내려온 오징어들이 노닐고, 복어가 하늘을 날며, 전복이 절벽을 기어오르는 그림도 있다. 익살스런 표정의 호랑이 입에서 모란꽃이 피는 그림은 저절로 미소를 짓게 한다.

3층 전시장은 책거리, 문자도 중심이다. 문방도로 불리는 책거리는 책 등 각종 문방구와 골동품같이 선비들이 가까이 한 물건들을 소재로 한다. 사대부의 사랑방에 놓이거나 아이가 책을 늘 가까이 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돌잔치에 활용됐다. 문자도는 문자를 그림처럼 표현한 것으로, 효(孝)제(悌)충(忠)신(信)예(禮)의(義)염(廉)치(恥) 등 유교적 덕목를 지닌 글자가 쓰였다.

조선 후기 민화 ‘화조도’| 호림아트센터 제공

조선 후기 민화 ‘화조도’| 호림아트센터 제공

전시장에는 사당이 없는 곳에 있거나 멀리 있을 경우 어디에서라도 조상을 기릴 수 있도록 족자·병풍에 사당 모습을 그대로 옮겨 그린 감모여재도, 오륜행실도 등도 나와 있다.

4층 전시장은 산수도와 인물도 등이 선보이고 있다. 산수도는 금강산·단양팔경을 비롯해 중국 동정호 경치를 8장면으로 담은 소상팔경도, 주자가 제자들과 시를 읊고 강론을 펼친 무이산의 아홉 골짜기를 그린 무이구곡도 등이 대표적이다. 인물도는 유명 인물의 고사를 그려 교훈을 강조한 그림이다.

전시회에는 이외에도 아이들이 뛰노는 모습으로 자손 번창을 기원한 백동자도, 서민들의 생활모습을 담은 경직도, 한 화면에 여러 그림을 분할해 담은 백납도 등도 볼 수 있다. 박준영 학예사는 “민화와 함께 도자기나 자수·나전칠기 등 관련 유물도 함께 관람할 수 있다”며 “전시와 연계한 문화강좌, 어린이 대상 교육프로그램도 운영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9월 14일까지. 관람료 3000~8000원. (02)541-3523.

<도재기 경향신문 문화부 기자 jaek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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