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고한 남자’ 많다는 사실 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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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 성범죄자 유도수사 논란

소싯적 ‘진짜 강남 여중생’일 때 이야기다. 수첩을 주웠다며 전화를 걸어온 어느 강북 남중생들과 꽤 오래 연락을 하고 지낸 적이 있다. 인터넷도, 스마트폰도, SNS도 없던 시절 도시 여자애들의 놀이는 전화 수다나 PC통신이 고작이었다. ‘몰려다니는 6명의 여중생’을 ‘전화기 하나’로 느꼈던 남중생들의 마음은 우리가 느낀 설렘 이상이었던 것 같다. ‘남자를 좀 밝히는’ 친구 하나는 원하는 오빠를 그렇게 손에 넣었다. 도시 소녀들은 원하는 것을 어떻게 얻으면 될지, 어떤 ‘방아쇠’를 당겨야 할지 영리하면서도 위험하게 깨닫는다. 학교나 사회가 가르쳐주지 않는 것을 말이다.

최근 여성부가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아동·청소년 성매매 단속 시 유도수사 도입을 검토하겠다고 한다. 여성부는 유도수사 기법을 우선 13세 미만 초등학생 대상 성매수자를 적발하는 데 사용할 계획이다. 여성부의 방침에 함정수사라는 비난여론이 불었다.

3월 29일 서울 중구 서울고용센터에서 열린 여성가족부 업무보고에서 조윤선 여가부 장관이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을 듣고 있다. 여가부는 이 자리에서 유도수사기법 활용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 연합뉴스

3월 29일 서울 중구 서울고용센터에서 열린 여성가족부 업무보고에서 조윤선 여가부 장관이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을 듣고 있다. 여가부는 이 자리에서 유도수사기법 활용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 연합뉴스

유도수사 또는 함정수사는 ‘기회 제공형’과 ‘범의(犯意) 제공형’으로 나뉜다. 전자는 범행을 할 생각이 있는 사람에게 범행의 기회를 주는 것으로 현행법상 허용되고 있다. 반면 후자는 범행 의도가 있었는지 확인되지 않은 사람들까지 범죄에 이르게 할 수 있는 방법으로 법적인 논란이 있다. 현재의 여론은 ‘기회 제공형’ 유도수사를 도입해도 ‘범의 제공형’이 될 가능성에 대해 강한 우려를 표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여성의 입장에서 이 사태를 바라보면서 몇 가지 흥미로운 지점을 발견했다. 첫 번째, 변호사 출신 신임 장관의 여성부는 ‘합법적으로 인정되는 유도수사’의 영역을 활용해 ‘의심할 필요 없이 사회적으로 모두가 문제라고 합의한 청소년 성매매 근절’을 시도하려 했다. 두 번째, 조선일보를 비롯해 보수성향으로 불리는 여러 매체를 (당연히) 남성 연대 대표와 (아마도 남성) 네티즌들마저도 한 목소리로 강한 ‘우려’와 ‘불쾌감’을 드러냈다. 세 번째, 유도수사 법제화가 어떤 문제가 있는지, 다른 방법은 없는 것인지 논의하기보다 “무고한 남성들이 피해를 볼 것”(보통 언론이 이런 말을 한다)이란 방향으로 이야기가 귀결된다.

법적인 논의는 전문가들 사이에서 검증될 문제다. 소싯적 채팅 사이트를 들락거리던 시절의 기억을 떠올려 보건대, 넘쳐나는 대화명 제목을 보면 굳이 ‘범의 제공형’ 함정수사를 할 필요까진 없어 보인다. 상대가 여성 닉네임을 사용하는 남자 경찰이건, 나처럼 30살을 넘은 여성이건 인사보다 노골적인 ‘제안’을 던져오는 경우가 다반사다. 세상에 ‘무고한 남자’가 많다는 사실을 의심하진 않는다. 하지만 강력한 법제화가 필요할 정도로 사회적으로 합의된 심각한 문제가 있다면, 아무리 여성부가 ‘미운털 박힌’ 조직이라고는 하나 무조건 분노하기보다는 아동·청소년 성매매 문제에 대해 충분한 고민을 해야 하지 않을까?

[2030 vs 5060]‘무고한 남자’ 많다는 사실 알지만…

많은 영화에서 그리듯 내 딸에게 ‘그런 일’이 생긴다면 유도수사가 범죄자에 대한 인권적이고 적법한 조치였는지 여부를 떠나 일단은 ‘잡아 족치고’ 싶은 사람의 마음도 존재한다. 아동·청소년 성매매에 대한 유도수사 법제화를 둘러싼 논의는 이런 마음에서 출발해야 한다. 세상엔 이렇게 딱 부러지게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이 많다.

김류미<‘은근 리얼 버라이어티 강남소녀’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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