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60 - 김재철 MBC 사장 사퇴
파국의 임계점을 넘어섰다는 인식에 동의한다면 수동적이거나 소극적인 개혁마저 미룰 여유가 없다.
김재철 MBC 사장이 물러났다. 그런데 물러난 까닭이 참으로 우스꽝스럽다. 유능한 기자·피디들을 해고시키고 징계내린 거와는 상관이 없다. 부당하게 특정인에게 돈을 몰아준 특혜도 시비 대상이 아니었다. 공영방송 조직을 그렇게 망가뜨린 것도 해임의 사유가 아니었다. 유부녀와의 부적절한 관계, 법인카드의 남용 등은 해임 시 입에 오르내리지도 않았단다. 오직 하나 그건, 문화방송의 지배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 이사들을 무시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3월 26일 MBC 최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 이사회에서 해임된 김재철 MBC 전 사장이 이사회 회의장을 떠나고 있다. | 강윤중 기자
문화방송 사장이 자리를 보전하는 비밀이 만천하에 공개되는 순간이었다. 누구든 김재철이 그렇게 욕을 먹으면서까지 했던 일을 반복하더라도 자리 지키는 데는 큰 문제가 없다. 문화방송을 노영방송이라고 말하며 적절히 노조를 제어만 한다면 전혀 어려움이 없다. 방문진 이사들을 화나게 하지만 않으면 얼마든지 장수할 수 있다. 김재철이 떠나며 흘린 악어의 눈물을 두고 ‘아 왜 그들을 화나게 했지?’ 하는 회한의 눈물로 짐작하는 것도 그런 까닭이다.
방문진을 희화화하고 있는 참인데 그럴 이유가 있다. 문화방송이 이 지경이 되게 하는 데 일등공신은 방문진이다. 김재철을 성토하는 사회적 분위기에 못이겨 그의 해임안을 몇 번 상정시키다 모두 부결시켰다. 심지어 김재철은 자신이 어떤 방식으로든 해임되지 않을 것을 간파하고 여유롭게 사표를 던져놓고 반려되는 것을 즐기기도 했다. 그런 방문진이 드디어 김재철을 해임하는 의결을, 그것도 자신들을 화나게 했다는 이유로 해임 의결을 했으니 비웃어 마땅치 않을까. 사회적으로 자신들에게 요구됐던 그동안의 김재철 해임 요청은 쓰레기통에 던져넣으면서도 자신들의 심기를 거슬렀다고 해임 의결을 한 방문진은 이성적 조직이 아닌 기분파 조직 이상은 아닌 듯하다.
그래서 김재철이 물러난 문화방송이 더 걱정된다. 김재철이 저지른 일을 정리하는 데는 긴 시간이 소요될 게 뻔하다. 무엇보다도 내부의 전폭적인 지지를 기반으로 정리해가야 한다. 하지만 현 사정은 반대다. 새로운 사장은 김재철의 임기를 채울 뿐이고, 문화방송 내부는 이미 3개의 노조로 쪼개져 수습이 어려운 지경이다. 그렇다면 해결을 위한 답은 오직 방문진이지만 앞서 말했듯이 그렇게 민망한 조직에 훌륭한 사장을 뽑고, 그의 훌륭한 작업에 전폭적 지지를 해주는 미션을 주기조차 민망하다. 정치적 비자율성까지 감안한다면 방문진은 식물기관에 가깝다.
그래서 명쾌한 해답은 아니지만 약간은 우회하는 수습책을 문화방송에 제안하고자 한다. 문화방송 내부를 가장 잘 아는 인사가 사장이 되게 하고, 그런 다음 내부에서 대타협을 이끌어내는 일이다. 잔여 임기를 채우는 사장으로서 그 정도의 일에 전념케 지지하고, 또 한 번의 임기를 겨냥할 수 있도록 돕고, 지금의 위기를 타개해내도록 한다. 문화방송이 지금 파국의 임계점을 넘어섰다는 인식에 동의한다면 수동적이거나 소극적인 개혁마저 미룰 여유가 없다. 새롭게 일어설 기반을 갖추어야 하는데, 이번 사장 선임을 그 계기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2030 vs 5060]MBC 조직 내부에서 대타협 이끌어내야](https://img.khan.co.kr/newsmaker/1020/20130401_51p_2.jpg)
대중의 지지가 공영방송의 기반인 바 빠른 시일 내 지지를 이끌 프로그램 제작 체제를 구축하는 일이 절실하다. 그동안 문화방송을 개혁하고, 언론 자율성을 지키고자 했던 주체들에게 드리는 간절한 제안이다.
원용진 <서강대 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