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리 뮤지컬 ‘레베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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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리 소설이 성공적인 무대용 콘텐츠가 될 수 있을까. 젊은 세대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당근’이다. 흔하진 않지만 미스터리나 스릴러가 무대로 꾸며져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경우는 얼마든지 많다. ‘필로우 맨’이나 ‘우먼 인 블랙’ 같은 연극 무대가 대표적이다. 세상에서 가장 오래 공연 중인 연극 ‘쥐덫’은 추리작가로 유명한 아가사 크리스티의 작품이다. 런던 중심가의 세인트 마틴 극장에서 자그마치 60년 동안 매일같이 공연돼 기네스북에 올랐다.

노래와 춤, 연기가 버무려지는 솜사탕 같은 공연 장르인 뮤지컬에서도 마찬가지다. 앤드루 로이드 웨버의 ‘우먼 인 화이트’가 그런 사례다. 영국의 추리소설 작가인 윌키 콜린스의 소설을 무대용 뮤지컬로 탈바꿈시켰다. 비록 흥행에서는 신통찮은 결과를 가져왔지만 하얀색 턴테이블 무대를 이중으로 교차 회전시키며 입체영상을 비춰 마치 가상공간을 바라보는 듯한 무대효과는 감탄을 자아냈었다. 우리 창작 뮤지컬로는 ‘셜록 홈즈’도 있다. 미스터리 계열의 작품답게 손에 땀을 쥐며 추리하는 재미가 제법 쏠쏠하다.

뮤지컬 <레베카> | EMK뮤지컬컴퍼니 제공

뮤지컬 <레베카> | EMK뮤지컬컴퍼니 제공

최근 우리 뮤지컬 공연가에서 큰 인기를 누리고 있는 ‘레베카’는 바로 이 계열의 작품이다. 원작은 데프니 듀 모리에가 쓴 소설이지만, 유명세를 타게 된 것은 서스펜스 스릴러의 대가인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동명 타이틀 영화 덕분이다. 아름다운 전원저택인 멘델리를 배경으로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난 여주인 레베카의 죽음에 얽힌 비밀이 하나씩 밝혀지는 재미가 각별하다. 히치콕 감독에게는 첫 오스카상 수상의 영광을 안겨준 작품이기도 하다.

뮤지컬은 영화를 무대화한 무비컬이다. 흑백 스크린으로 구현됐던 히치콕 특유의 알싸한 뒷맛을 남기는 등장인물들과 고즈넉한 저택 풍경은 형형색색의 무대장치와 감탄을 자아내는 영상효과로 대체됐다. 사실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영국 콘월 지방을 알고 본다면 이 뮤지컬의 향취는 더욱 진하게 인상을 남길 수도 있다. 웨일즈 남단의 콘월 지방은 우리의 강원도 같은 곳인데, 자연풍광이 아름다운 청정지역으로 아더왕 전설의 배경이 됐던 장소이기도 하다. 우리의 땅끝마을 같은 영국 남부 바닷가의 정취가 매혹적이어서 실제로 별장이나 저택 등 옛 귀족들의 주거지가 많은 고장이기도 하다. 뮤지컬의 배경이 되는 맨덜리 저택은 이런 풍경 속의 고즈넉한 전원저택을 떠올리면 이해하기 좋다. 특히 무대에서의 영상은 이런 공간적 배경을 잘 살려주는 효과적인 매개체 노릇을 한다. 거친 파도가 몰아치는 절벽 아래의 바닷가 모습이나 검푸른 어둠 속으로 비가 내리는 영국 시골의 오후 풍경, 매서운 바닷바람이 들이치는 발코니나 잠깐 비추는 햇살 속에 빠르게 흐르는 구름의 풍광을 담은 영상 등은 영국 전원마을 특유의 여유와 정취를 그럴싸하게 시각화해낸다. 영상 속의 효과적인 이미지 배열은 원래 뮤지컬 무대에서는 없었던 한국만의 표현기법과 연출이어서 우리나라 스태프의 창의력과 작품 이해도에 새삼 감탄하게 된다.

뮤지컬 <레베카> | EMK뮤지컬컴퍼니 제공

뮤지컬 <레베카> | EMK뮤지컬컴퍼니 제공

우리말 공연의 캐스트들도 매력적이다. 막심 드 윈터 역의 유준상과 오만석·류정한, ‘나’ 역의 임혜영과 김보경, 프랭크 역의 박완 등은 각자 자신만의 매력을 십분 발휘한다. 하지만 이 무대에서 압권은 단연 댄버스 부인의 광기와 카리스마다. 신영숙과 옥주현이 빚어내는 극중 캐릭터는 한참동안 머릿속을 맴돌 정도로 인상적이다. 중저음의 멜로디를 음울하게 읊조리듯 노래하는 모습은 강렬하다.

마니아 수준의 관객이라면 다른 작품도 떠올릴지 모른다. ‘선셋 블러바드’의 노마 데스몬드다. 불타는 저택에서 레베카를 목놓아 부르는 댄버스 부인의 손짓과 연기에는 특히 글렌 클로스가 연기했던 노마의 광기가 자주 오버랩된다. 두 작품 모두 왕년의 흥행영화를 원작으로 삼았다는 공통점도 있다. 그래도 이만큼 매력 있게 만들어냈다면 박수를 먼저 보낼 일이다. 서울에서의 성공적인 흥행을 마치면 지역 투어가 이어질 예정이다. 지역 관객들에게는 어떤 인상으로 남게 될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원종원 <순천향대 신방과 교수·뮤지컬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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