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후기 대표작가들의 화조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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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고미술시장은 침체다. 현대미술시장도 불황이긴 마찬가지이지만, 고미술 쪽은 그 정도가 심하다는 게 공통된 의견이다. 거래는 물론 고미술 애호가들의 발길을 붙잡는 괜찮은 전시회조차 마련되지 않는 실정이다.

마침 동산방 화랑(서울 견지동)이 봄을 맞아 회심의 옛 그림전을 연다.

겸재 정선의 ‘백로도첩’ 중 <능수버들과 쇠백로>

겸재 정선의 ‘백로도첩’ 중 <능수버들과 쇠백로>

초봄에 어울리며, 편안하게 즐길 수있는 화조화를 중심으로 70여점이 나오는 대규모다. 특히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겸재 정선, 현재 심사정, 단원 김홍도, 혜원 신윤복 등의 작품이 처음으로 일반에 공개되는 자리다. 박우홍 동산방화랑 대표는 “비장하던 개인 소장가들이 어렵게 출품했다”며 “고미술계에 봄바람이 이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출품작들을 살펴본 이태호 명지대 교수(미술사학과)는 “내로라하는 화가들의 미공개 작품들이라 회화사, 화가 연구에도 귀한 자료”라고 밝혔다.

3월 12일부터 31일까지 마련된 전시회는 ‘조선후기 화조화전-꽃과 새, 풀벌레, 물고기가 사는 세상’이다. 화조화는 조선후기 진경산수나 풍속화·초상화 등 사실주의 회화 사조와 그 궤를 같이한다. 꽃과 각종 새, 들풀과 벌레, 물고기 등을 섬세하게 묘사해 사실적 회화미가 일품이다. 주로 사대부들의 감상용이나 장식용으로 그려졌다.

출품작 중 백미는 아무래도 진경산수로 유명한 겸재 정선(1676~1759)의‘백로도첩’. 10폭(각 폭 65.2×41㎝)으로 크기가 일반 화첩보다 커 병풍용인 것으로 보인다. 각 폭에는 쪽물을 들인 닥종이에 호분으로 그린 다양한 자태의 쇠백로 한 마리씩이 자리한다. 배경은 능수버들이나 갈대·연꽃·자라풀 등이며 대범한 필치의 수묵담채로 배치했다. 쪽물을 들인 이유는 흰 백로가 더 두드러져 보이기 위한 것이다. 활달한 산수화풍으로 필치에 탄력이 느껴지는 화첩은 ‘겸재가 일원(이병연의 자)을 위해 그리다(謙齋爲一源寫)’라는 화제가 있고, 발문들도 첨부됐다. 이가원 전 연세대 교수(1917~2000)는 1971년 이 화첩을 본뒤 “청묘하기가 입신의 경지”라는 감정 후기를 썼다.

현재 심사정의 ‘꽃과 나비·풀벌레 화첩’ 중 <옥잠화와 색비름·나비와 메뚜기>

현재 심사정의 ‘꽃과 나비·풀벌레 화첩’ 중 <옥잠화와 색비름·나비와 메뚜기>

현재 심사정(1707~1769)의 ‘꽃과 나비·풀벌레 화첩’(8폭, 각 42.8×33.5㎝)은 밝고 화사하다. 버드나무와 매미·호박·메뚜기가 있는 폭에서 표암 강세황은 화제를 통해 “정묘함이 극에 달하면 하늘의 조화를 뺏을 수 있다”며 극찬한다.

풍속화의 대가인 단원 김홍도(1745~1806?)와 혜원 신윤복(18~19세기) 작품도 눈길을 잡는다. 단원의 10폭 ‘수금·초목·충어화첩’(각 24×36㎝)은 당당한 필력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마지막 폭에는 ‘갑진년(1784년) 6월 단원이 임청각 주인을 위해 그리다’란 화제가 있다. 임청각은 조선중기 문인이자 권세가인 이의수가 안동에 세운 별당을 말한다. 혜원의 10폭 ‘화조도첩’(각 28.2×44㎝)은 1809년 가을에 그려졌다. 국화와 참새, 흑고니, 왕버들과 왜가리, 석류와 새 등에서 가을 정취가 물씬 풍긴다.

전시회에는 창강 조속의 ‘화조도첩’과 오원 장승업, 기생으로 알려진 국향의 ‘화훼도첩’(6폭), 김득신, 유숙, 남계우, 김수철, 이하응과 민영익 등의 작품도 나온다. 이태호 교수는 “모란은 부귀, 석류는 다산, 매미는 청빈한 선비 등 그 상징을 알면 감상하는 재미가 더 깊어질 것”이라고 조언했다.

<도재기 경향신문 문화부 기자 jaek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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