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정부 교육부총리 지낸 김병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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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민주당은 유산과 명성을 무기로 엉터리 상품 만드는 무능한 상속자”

2003년 이맘때쯤, 신문에 한 장의 사진이 실렸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 당선인이 인수위원인 김병준 간사가 건넨 자료를 받고 만족한 표정으로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운 사진이다. 10년이 흐른 지금, 박근혜 당선인의 인수위원회 풍경과는 너무 다른 모습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참여정부에서 청와대 정책실장과 교육부총리를 지낸 김병준 국민대 교수는 요즘 유난히 방송 출연과 인터뷰가 잦다. 야권 인사들은 거의 잘 안 나오는 종편에도 출연하고 신문에 정치칼럼도 연재 중이다. “더 이상 박근혜 당선인을 수첩공주로만 보면 안 된다”고 박 당선인의 능력을 치켜세우기도 하고, 민주당과 친노에 대해 쓴소리도 하는 김병준 교수의 심중이 궁금했다.

[유인경이 만난 사람]참여정부 교육부총리 지낸 김병준 교수

옛날 이야기부터 하지요. 그때 얼마나 훌륭한 정책자료를 내놓았기에 노무현 대통령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습니까.
“제가 인수위원일 때 곳곳에서 견제가 심했습니다. 그때 처음으로 인수위에 교수들이 대거 참여했는데, 기존 정치인들이 상대적 박탈감을 느꼈던 데다 제가 곧 정부의 중심에 설 것이라는 소문이 나돌았거든요. 하도 말들이 많으니 당선인이 제게 ‘왜 당에 있는 분들과 잘 지내지 못하느냐’고 물어볼 정도였지요. 어떤 사람은 ‘교육자를 쓰려면 서울대 출신을 기용하지 지방대 출신에 국민대 교수, 학계의 비주류 교수를 기용하느냐’는 지적도 했답니다. 전 그때 지방자치학회 총무를 맡아 학계의 주류에 있었는데도 그런 말을 들었어요. 당선인은 ‘난 고등학교밖에 안 나와도 대통령에 당선됐소’라고 했다더군요. 노 당선인은 매일 인수위 사무실에 출근해서 같이 정책을 만들고 하루종일 회의를 하며 정말 열심히 일했습니다. 이번 인수위원들은 박 당선인이 함구령을 내려 말을 못하는 것이 아니라 당선인과 잘 만나지 못해 할 말이 없을 겁니다. 아무튼 당선인이 제게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운 사진이 신문에 게재된 후에 저에 대한 시비는 쑥 들어갔습니다. 노무현 당선인이 저와 인수위원들을 보호하기 위해 그런 제스처를 해준 것 같습니다. 제 곁을 지나가다 다시 돌아와서 악수한 후에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어 사진에 찍혀주셨거든요. 그 이후엔 다들 제가 실세인 줄 알고 저를 만나게 해달라고 난리였답니다.”

얼마나 멋진 정책자료이기에 그랬을까요. 노 대통령이 그때 무슨 말을 했습니까.
“제 입으로 밝히기는 좀 그렇습니다. 칭찬을 받았다 해도 남들에게 욕을 먹을테니까요.”

그토록 노무현 대통령의 신뢰를 받았는데 얼마 전 한 인터뷰에서 ‘친노의 프레임에 가두지 말라’란 말을 했습니다.
“난 분명 ‘친노’입니다. 하지만 친노란 단순히 노무현을 그리워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정책과 이념을 공감하고 승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전 친노의 정치세력화가 못마땅해요. 친노 자체가 인간적 관계의 측면이 너무 강합니다. 친노라고 주장하면서 왜 노무현 대통령의 FTA나 강정 해군기지를 다 부정하고 심지어 국민에게 사과까지 합니까. 무엇보다 친노는 과거지향적입니다. 노무현 정신의 기치는 혁신이에요. 혁신을 통해 상생과 평화, 인권을 강화하는 것이 궁극적 목표였지요. 이제는 노무현을 넘어서야 하는데, 그저 노무현 사진만 앞세우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어디 노무현 대통령뿐인가요. 여전히 김대중 대통령의 후계자를 과시하며 과거 자산만 내세웁니다. 지금 민주당은 60년 역사와 이름만 남기겠다며 엄청난 개혁을 한다지만 국민들의 반응이 냉소적인 것도 이 때문입니다. 글로벌 혁신 시대에 과거 프레임으로 어떻게 국민을 설득하겠습니까.”

민주당이 어떤 모습으로 변하길 기대합니까.
“무엇보다 과거에서 벗어나야죠. 새 정부가 출범하는데 아직도 왜 대선에서 졌을까를 따지니…. 그건 민주당이 던질 질문이 아닙니다. 질문이 잘못되면 당연히 오답이 나옵니다. 문재인 후보가 이승만 전 대통령 묘소에 참배하지 않은 것 등의 디테일한 행동, 이정희 후보의 텔레비전 토론 때의 태도 등을 따지며 패인을 분석할 때가 아닙니다. <워터루>란 영화에 보면 나폴레옹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웰링턴 장군이 길가에 즐비한 시체를 보면서 이런 말을 하죠. ‘패배 다음에 가장 비참한 것은 승리다!’라고요. 지금 민주당보다 더 비참하고 두려운 것은 박 당선인과 새누리당 인사들일 겁니다. 인선부터 벌써 흔들리고 있고, 박 당선인 지지율이 투표율보다 낮게 나오지 않습니까. 이겼지만 비참하고 끔찍한 승리죠.”

그럼 민주당이 던질 바른 질문은 뭔가요.
“우리가 시대 변화를 얼마나 잘 알고 있으며, 민심의 변화에 제대로 대처하고 있는가를 물어야 합니다. 김대중·노무현을 버린 후에 민주당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물어야죠. 지금 민주당은 마치 아버지의 유산과 명성을 무기로 엉터리 상품을 만드는 무능한 상속자 같습니다. 열악한 공장에서 품질 좋은 상품이 나올 리 없죠. 새로운 시대가 요구하는 신상품으로 승부해야 소비자들이 호응을 하지요.”

어떤 이들은 민주당이 통합만 강조하며 정체성을 잃고, 나꼼수 등에 너무 의지해서 실망했다고도 합니다.
“나꼼수는 아주 훌륭한 문화 게릴라입니다. 권위주의에 억눌린 국민 감정에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주었죠. 문제는 당이 그들을 따라하고 정치에 끌어들였다는 겁니다. 김용민씨에겐 공천도 줬지요. 왜 민주당이 자기 실력으로 승부하지 않고 다른 이들을 데려와 분장시켜 대표상품으로 내세우는지 모르겠습니다. 박원순 시장도 그래요. 민주당에 입당시킨 건 마치 양자로 들인 것과 같아요. 그리곤 정작 공천할 때마다 30~40%는 물갈이를 한다면서 도마뱀 꼬리 자르듯 잘라내 십자가를 지웁니다. 그러니 민주당에 대한 애정과 충성도가 약해질 수밖에요.”

민주당에 대한 서운함이 큰가 봅니다.
“당에서 선거 때만 되면 제게 출마를 권했습니다. 대구시장, 경북지사 등 꼭 떨어질 곳에만 나가라고 하더군요. 당선이 목적이 아니니 명분을 갖고 싸워 장렬히 전사할 용의도 있습니다. 그런데 죽어서 거름이 되면 좋은데, 죽어서 쓰레기가 되는 곳에만 나가라고 해요. 아무 그림 없이, 대안 없이 과거 정부에서 역할을 했으니 나가라고 하면 저도 명분을 모르는데 유권자들이 표를 주겠습니까. 이런 민주당의 안일한 구태가 바뀌어야 합니다.”

일각에서는 민주당 해체 등 정당의 지각변동이 올 것이라고 하더군요.
“민주당이 헤쳐모여 해봐야 국민 입장에선 그게 그거일 겁니다. 정책개혁 없이 간판만 새로 달면 뭐합니까. 다른 새로운 정당도 무의미합니다. 많은 미래학자들이 정당의 소멸을 예견합니다. 국민들의 변화 속도가 너무 빨라 정당이 제 역할을 못하고 국민 욕구를 충족하지 못하기 때문이죠. 사실 지금 정당은 방청객 수준입니다. 어떤 정책을 주도적으로 이끄는 것이 아니라 그저 리액션과 후속 반응만 보입니다. 한진중공업 사태가 일어나면 희망버스 타고 가서 농성하고, 연평도 사건이 터지면 달려가 보온병 들고 포탄이라 하고, 용산참사에도 뒤늦게 현장에 가서 고개만 끄덕이고 옵니다. 정당과 정치인은 퍼포먼스를 할 것이 아니라 플랜을 짜서 국민을 이끌고 행동으로 보여줘야죠. 또 민주당도 각종 선거에서 이미 SNS 등을 활용해 당의 운명을 당원이 아닌 이들이 결정하고 있는데 이게 정당 해체의 한 단면입니다. 사실 당비를 제대로 내는 당원도 드물고 그들끼리 모여봤자 국민의 공감대도 얻지 못하죠.”

[유인경이 만난 사람]참여정부 교육부총리 지낸 김병준 교수

안철수 전 교수도 신당 창당설이 나돕니다.
“그분이 신당을 만들어도 야권개혁에 별 영향을 못미칠 겁니다. 한국정치를 이해하려면 국민의 기존 정당과 정치에 대한 불만의 핵심이 뭔가를 알아야 합니다. 안철수 현상이란 그 불만에 그저 ‘안철수’란 이름이 덧붙여진 거예요. 우연히 그 시기에 안철수란 인물이 상징적으로 매치된 것일 뿐입니다. 안철수 전 교수가 진정한 리더이자 챔피언이라면 이발소 담론 수준으로 국민의 불만을 대변할 것이 아니라 대안과 비전을 제시하고 국민의 마음을 누그러뜨렸어야죠. 안 전 교수는 나꼼수 수준이에요. 우리가 나꼼수에게 정치개혁을 요구하진 않죠, 안 전 교수가 미국에서 정치 구상을 했다지만 미국 다녀온다고 슈퍼맨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정치가 그렇게 하루 아침에 익혀지는 것은 아니죠. 또 정당을 만들어 ○○당이란 이름이 붙는 순간, 안철수란 의미는 퇴색될 겁니다.”

노무현 대통령과 그 정부는 유난히 구설수에 시달렸습니다. 가장 큰 오해는 뭔가요.
“노무현을 노무현으로, 참여정부를 참여정부 그 자체로 평가하지 않고 기존의 전통적 잣대로 본 것입니다. 노무현이란 인물은 정말 끝없이 새로운 방법을 모색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국정운영의 방식도 새롭게 시도하려 했지요. 권력을 수단으로 국가를 경영하지 않았습니다. 탄핵이 끝나고 열린우리당이 선거에서 압승을 거둔 후에도 노 대통령의 표정이 계속 어둡고 말수가 줄어들었는데, 도무지 감을 잡을 수가 없더군요. 그래서 제가 ‘아직 직무에 복귀할 준비가 안 되었습니까’라고 물으니 한숨을 쉬며 말하더군요. 자신은 권력이 아니라 명분과 가치로 국민을 설득하는 정치를 하려 했는데 당시에 최도술 등 측근들이 비리를 저질렀고 탄핵까지 당한 이후에 어떻게 무슨 자격으로 국민들에게 혁신을 요구하겠느냐는 겁니다. 그분의 깊은 생각을 잘 이해하는 이들이 드뭅니다. FTA의 경우도, 한국 사회에서 앞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산업 구조조정이고 분업화의 가속을 인정해야 한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일부 농업 등 한계에 이른 영역의 노동력과 자본이 자연스럽게 이동되도록 노동자의 재교육 등은 정부가 하지만 권력의 강제가 아닌 시장의 힘을 빌리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준비기간을 충분히 갖고 국민을 준비시키려 했어요. ‘개방이 반드시 성공한다는 보장은 없고 실패도 할 수 있지만 개방하지 않고 살아남은 국가는 없다’고 하면서 개방을 잘할 준비를 엄청나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죠. 그런데 친노를 주장하고 노무현 정신을 승계한다는 이들, 심지어 한명숙 전 총리마저 FTA를 부정하니 참 답답하더군요.”

그래도 김 교수는 한때 청와대 정책실장에 부총리 등 권력의 짜릿함을 맛보지 않았습니까.
“권력은 손잡이가 없는 양날의 칼입니다. 권력 언저리에 서면 단맛이 납니다. 핵심에 들어서면 쓴맛이 나죠. 권력을 손에 잡는 순간, 손바닥이 날에 베이고, 권력을 행사하면 손목만이 아니라 몸에 상처가 납니다. 누구나 권력의 핵심에 들어가려는 이들은 그 권력의 쓴맛과 상처를 각오해야 합니다. 제대로 행사하고 일하지 않으면 권력이란 칼이 부메랑이 되어 가슴을 찌르거든요. 그런데 다들 권력의 단맛만 누리려 하지요. 노무현 대통령도 오죽하면 ‘대통령 못해 먹겠다’고 했을까요. 그 당시로서는 진심이었을 겁니다. 제게 수시로 ‘5년이란 임기가 너무 길다’고 하셨어요. 권력을 신성하게 쓰려면 그만큼 고통과 번뇌가 큰 법입니다.”

박 당선인과 주변 인사의 최근 행보는 어떻게 보시나요.
“장관 인사는 그저 무난한 수준이고, 대북문제 대응은 너무 실망스럽습니다. 북한 핵실험 이후에 중국 역할을 기대한다고 강조하는데 그게 해결책인가요. 중국이 북한에 경제적 압박을 가해 원유와 가스 공급을 중단하고 탈북자 강제송환을 안 하면 북핵문제가 해결됩니까. 오히려 북한체제가 붕괴되고 수십만명의 탈북자들이 중국을 떠나 배 타고 서해안으로 올 겁니다. 리더도 중요하지만 측근, 팔로어도 중요하지요.”

앞으로의 계획은 뭔가요.
“지금 제가 노무현 대통령이나 공·사석에서 한 말들을 모아 책을 쓰고 있습니다. 왜 그때 그런 말을 했고 어떤 시대상황이었는지를 제가 먼저 살펴보는 중입니다.”

아침 일찍 치과 치료를 받고, 다시 오후엔 제주도에서 지방자치학회가 주는 상을 받으러 가는 와중에도 김병준 교수는 침착하고 정곡을 찌르는 답변을 했다. 왜 토론을 즐긴 노무현 대통령이 그를 5년 동안 곁에 두고 아꼈는지 알 것 같다. 그런데 박근혜 당선인 주위에는 이렇게 직언과 직설을 해줄 사람이 있을까? 고개 숙인 이들만 가득한 것 같아 괜히 가슴이 답답해진다.

<글·유인경 경향신문 선임기자 alice@kyunghyang.com>
<사진·이상훈 선임기자 dool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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