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기기와 접목된 미술관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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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말로 지상파 아날로그 TV 방송이 종료되면서 디지털 방송 시대가 열렸다. 디지털 방송으로 이용자는 양방향 서비스를 통해 훨씬 다양한 정보와 데이터를 TV를 통해 얻을 수 있게 된다. ‘바보상자’에서 ‘스마트기기’로 거듭난 TV는 이제 ‘디지털 퍼니처’의 하나가 되었다. 디지털 퍼니처는 일상에서 사용하고 있는 다양한 디지털 기기들을 아울러 뜻하는 신조어다.

디지털 기기는 예술가들의 상상력을 작품으로 구현하는 데 물질적인 제약을 상당 부분 해소했다. 현실에서 불가능했던 생각들을 적어도 시각적으로는 마음껏 펼칠 수 있게 됐다. 축구경기의 영상에서 축구공을 지워버리면 한 편의 우스꽝스러운 행위극이 된다. 운동선수들이 눈에 보이지도 않는 무언가를 쫓아다니며 몸싸움을 벌이는 것이 맹목적인 경쟁으로 내달리는 우리 삶을 의미하는 작품이 될 수 있다. 디지털 기기로 큰 비용 없이 자신의 생각과 행위를 널리 알릴 수 있게 되면서 누구나 예술가가 될 수 있는 시대이기도 하다.

이이남 <디지털 8폭 병풍>

이이남 <디지털 8폭 병풍>

디지털 기기의 등장으로 예술은 일상으로 한층 더 가까이 다가왔다. 서울 종로구 서린동 아트센터 나비에서 12월 28일부터 16명의 작가가 참여해 열리는 ‘디지털 퍼니처’ 전시는 가구처럼 대중화한 디지털 기기와 접목된 미술관 풍경을 보여준다. 아날로그 아트는 미술관이나 갤러리의 전시장에서 전시되기 때문에 그곳을 찾아야만 볼 수 있지만 디지털 아트는 디지털 기기를 통해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즐길 수 있다.

전시는 크게 네 부분으로 구성됐다. 첫 번째 주제인 ‘텔레+비전’(tele+vision)은 초기의 흑백 TV에서 최근의 스마트 TV에 이르기까지 TV의 변화과정 속에서 예술가들이 이를 어떻게 활용했는지 보여준다. 김용호 작가는 19세기 영국의 낭만주의 풍경화가 존 콘스터블의 작품을 디지털 작품으로 변형시켰다. 20초 길이의 영상 ‘존 컨스터블의 데드햄 교회가 있는 스튜어 계곡에 관한 연구’를 보자. 목가적인 전원 풍경에 돋보기를 대고 명화의 이곳저곳을 비추면 그 돋보기 안으로 고층빌딩이나 차도와 같은 현대적인 풍경이 보인다. 옛 전원 풍경이 지금 이렇게 변했음을 알려줘 현재 우리가 잃어버린 세계가 무엇인지 깨닫게 한다.

이이남 작가의 ‘디지털 8폭 병풍’은 한국의 전통적 병풍을 55인치 스마트 TV 8대에 담은 작품이다. 동서양의 명화를 애니메이션과 결합한 작업으로 잘 알려진 이이남은 옛 산수화들에 꽃을 피우고 나비가 날고 바람이 불게 함으로써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관객들은 작품에 낙관 대신 찍힌 QR코드를 이용해 스마트폰으로 언제 어디서든 작품 감상이 가능하다.

김용호 <존 컨스터블의 데드햄 교회가 있는 스튜어 계곡에 관한 연구>

김용호 <존 컨스터블의 데드햄 교회가 있는 스튜어 계곡에 관한 연구>

‘핑퐁’(Ping Pong)은 탁구 용어를 사용한 데서 드러나듯, 관객의 능동적인 참여로 완성되는 ‘인터랙티브 미디어 아트’를 소개한다. ‘작품에 손대지 마시오’ 대신 ‘작품에 손을 대주세요!’라고 요청하는 작품들이다. 정자영 작가의 ‘달의 노래’는 달과 가야금의 줄을 형상화한 터치 패널의 영상을 누르면 가야금 소리와 함께 그 음파가 영상으로 표현되게 만든 작품이다.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차이를 영상과 소리를 이용해 가장 대조적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왼손으로 가야금의 줄을 움직일 때 나는 ‘농현’(현을 희롱한다는 뜻·弄絃) 소리가 아날로그적이라면 오른손으로 줄을 뜯을 때 나는 짧은 파열음은 디지털을 상징한다. 전시는 1월 28일까지. 관람료 없음. (02)2121-1031

<주영재 경향신문 기자 jy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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