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작가 윤영선 5주기 추모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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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의 마지막인 12월은 연말모임에 송년회, 각종 시상식과 회식 등으로 어느 때보다 바쁘고 정신없는 달이다. 자신의 1년을 마무리하고 주위 사람들을 챙기기에도 시간이 모자라는 이 시기, 대학로 한편에서는 몇몇 극단을 중심으로 젊은 연극인들이 모였다. 몇 해 전 조용히 세상을 떠난 한 극작가를 기억하기 위해서다. 극작가 고 윤영선 5주기를 맞아 마련한 <2012 윤영선 페스티벌>이다.

1980년대 중반 극단 연우무대에서 연극을 시작한 윤영선은 뉴욕에서 연극을 공부하고 돌아온 이후, 프로젝트그룹 ‘작은 파티’와 극단 ‘파티’ 활동을 통해 꾸준히 새로운 연극언어와 형식을 모색하면서 연극계의 ‘시인’으로 불린 극작가다. <사팔뜨기 선문답> <떠벌이 우리 아버지 암에 걸리셨네> <맨하탄 일번지> <키스> <여행> <임차인> 등 그가 남긴 대표작들은 대부분 인간의 존재와 외로움, 죽음에 대한 철학적 사유를 시처럼 간결하고 압축적인 언어로 표현하고 있다.

<임차인>

<임차인>

지난 2008년 그의 1주기 기념공연 때에는 박상현, 이성열, 김동현 등 생전에 윤영선과 극단작업을 함께 했던 중견연출가들이 모여 그의 대표작을 선보였다면, 이번 5주기 기념공연에서는 그 다음 세대라 할 수 있는 젊은 연출가들이 자신들의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본 윤영선의 작품을 무대에 올린다. 극단 작은신화의 차세대 연출가 이곤과 극단 산수유의 류주연, 극단 그린피그의 윤한솔 연출이 각각 한 작품씩 공연을 맡았고, 여기에 채승훈, 박상현, 이성열, 김동현 등 중견연출가들이 작가의 미발표 작품을 낭독공연으로 선보인다.

<2012 윤영선 페스티벌>의 첫 무대를 장식한 <맨하탄 일번지>(12월 6~12일)는 윤영선의 초기작 중 하나로, 1990년대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뉴욕을 살아가는 두 한국인 젊은이의 고달픈 현실을 보여준 작품이다. 실제로 그 시절 뉴욕에서 유학하며 마이너리티의 삶을 경험한 작가 자신의 눈으로 바라본 시대의 고독과 불안이 간결한 언어 속에 담담하게 담겨 있다. 연출을 맡은 이곤은 이 작품을 2012년 서울을 살아가는 한 이국인의 시선으로 풀어냄으로써 20년 전 뉴욕의 이야기가 아닌 ‘오늘, 이곳’의 이야기로 그려내고자 했다.

류주연이 연출을 맡은 <임차인>(12월 15~21일)은 윤영선이 남긴 마지막 작품으로, 작가로서 윤영선의 역량과 깊이가 고스란히 담긴 그의 대표작이다. ‘임차인’이란 제목이 암시하듯 몸은 여기 있으나 마음은 이곳에 있지 않은 사람들의 고독과 소통의 부재를 4개의 짤막한 에피소드로 그려낸다. 여기서 각자의 외로움 속에 살아가는 인물들의 독립된 에피소드들은 전혀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다른 에피소드와 비스듬히 연결되면서 이들의 삶이 마치 어디선가 중첩되어 있는 듯한 인상을 준다. 그리고 그러한 인상은 곧 이들의 이야기가 바로 ‘우리 자신’의 이야기일 수 있다는 익숙한 깨달음을 남겨준다.

<맨하탄 일번지>

<맨하탄 일번지>

이번 페스티벌의 마지막 무대인 <나무는 신발가게를 찾아가지 않는다>(12월 24~30일)는 인간의 몸과 감각에 대한 탐구를 시적 언어로 그려낸 작품이다. 총 7개의 장면으로 이루어진 미완성 초고를 2000년 극단 백수광부가 공동창작으로 무대에 올린 바 있다. 이번에는 젊고 도발적인 에너지로 주목을 받고 있는 극단 그린피그와 윤한솔 연출이 새롭게 해체, 재구성하여 시적 이미지로 표현해낼 예정이다. 생전에 작가 윤영선은 이 작품에서 “난 나무가 될 거야”란 말을 통해 스스로 ‘나무되기’를 선택했었다. 그리고 세상을 떠나기 며칠 전, 자신의 이름을 ‘나무윤영선꽃’으로 개명하며 소박하게 자신의 꿈을 실현시켰다. 앙상한 가지만 남은 겨울나무일지라도 언젠가 다시 무성해질 잎사귀를 예감하게 되듯이, 지금은 우리 옆에 없지만 여전히 그를 그리워하는 연극인들의 무대를 통해 작가 윤영선은 언제나 ‘나무 같은’ 모습으로 우리 기억 속에 남아 있을 것이다. 12월 30일까지 정보소극장.

김주연 <연극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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