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한 이야기가 ‘사연’이 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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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채라디오’라는 팟캐스트 방송을 진행한 지 2년이 다 되어간다. 야채라디오는 동네 친구들과 함께 하는 ‘야채인간’이라는 밴드를 홍보하기 위해 시작한 것이었는데, 몇 번의 개편을 거듭하다 보니 간추린 정치권 소식을 전해주고, 청취자가 보낸 사연을 읽고 코멘트하는 것이 주요한 편성인 라디오 프로그램이 됐다.

함께하는 멤버들이 워낙 말주변이 좋아서 대본을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녹음은 스마트폰을 이용해 승용차 안에서 한다. 자동차라는 구조 덕분에 방음이 잘 되고 소리가 울리거나 퍼져나가지 않아 스마트폰만으로도 깨끗한 녹음이 가능하다. 밴드 활동을 할 때 사용했던 오디오 편집 프로그램으로 녹음을 한 음원을 편집하고 시그널 음악을 입혀 외국에서 운영되는 유료 팟캐스트 방송용 계정에 파일을 업로드한다. 여기까지 해서 한 달에 드는 비용은 2만~3만원 정도다. 전에는 국내의 무료 팟캐스트용 계정 서비스를 이용했지만 너무 불안정해 돈을 들이는 방법을 택한 것이다.

팟캐스트 ‘야채라디오’ 제작진

팟캐스트 ‘야채라디오’ 제작진

녹음을 시작할 때 나는 항상 “전국의 잉여 여러분, 루저 여러분, 안녕하십니까!”라고 외친다. 우리 세대는 뭘 해도 되는 일은 없는 주눅 든 세대이다. 이 시대에 범람하는 수많은 ‘멘토’의 한 사람으로가 아니라 말 그대로 동시대인으로서 이들과 같은 자리에서 목소리를 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라디오에서 ‘이 시대의 큰 스승’을 자처하고 있지만, 이것 역시 과장된 자기애의 표출을 빙자한 자해적 비하에 가깝다. 요컨대 우리 세대는 스스로가 스스로를 칭찬하지 않으면 누구에게도 칭찬을 받을 수 없던 세대임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다.

오늘날 정국을 들었다 놨다 하는 오디오 팟캐스트들에 비하면 청취자가 그렇게 많은 편은 아니다. 하지만 어찌어찌하다 보니 얼마 전에는 공개방송까지 하게 됐다. 공개방송 프로그램은 정치권의 간추린 소식을 전하고, 진행자들의 신변잡기를 늘어놓으며, 참가자들이 자기가 쓴 사연을 자기가 읽고, ‘애니메이션’과 같은 전혀 중요하지 않은 주제에 대한 문제를 다 함께 푸는 것으로 짜여졌다. 10명 이상 올까 하는 걱정을 했지만 40명 가까운 사람이 모이는 진풍경이 연출됐다. 간식을 준비해온 사람도 있었고, 사람들에게 나눠주기 위해 읽던 책을 준비해온 사람도 있었으며, 40명이 마시고도 남을 술을 가져온 사람도 있었다. 어떤 좋은 공연 콘텐츠를 소비하는 모양이 아니라 그저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이 다같이 웃고 떠들며 즐기는 풍경이었다.

이 팟캐스트 방송을 열심히 듣는 사람들의 생각은 도대체 어떤 것일까? 이들이 보내는 사연을 보면 알 수 있다. 방송에서 읽어달라고 청취자들이 보내는 사연은 대개 실패한, 혹은 실패하고 있는 자기 인생에 대한 한탄으로 이루어져 있다. 불안한 미래를 걱정하는 고교생, 부모에게도 친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해 방황하는 대학생,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는 직장의 현실을 한탄하는 회사원, 취업이 되지 않아 울며 겨자 먹기로 공부의 길을 택한 대학원생 등, 무언가 인생이 잘 안 풀리는 사람들이 사연을 보낸다. 그런데 또 어떻게 생각해보면 바로 이 인생 안 풀리는 사람들이야말로 우리가 주위에서 가장 쉽게 볼 수 있는 사람들이다. 흔한 사람들의 흔한 얘기가 ‘사연’이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런 살기 힘든 세상에서의 당연한 고민을 사실은 마음 놓고 털어놓을 데가 없는 것이다.

나도 실패자들 중 한 사람이기 때문에 청취자들의 사연에 대해 속 시원한 해답을 제시해줄 수 없다. 하지만 그저 ‘들어주는 것’이 절실한 시대 아니겠는가. 진보정치는 일단 실패했지만 앞으로도 계속 사람들의 말을 그저 들어볼 생각이다.

김민하<진보신당 상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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