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루하고 밋밋한 새누리당에 나 같은 트러블메이커가 활력이 될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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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주 새누리당 공동선대위원장

포용과 화합을 강조하는 요즘, 각 당 대선 캠프에 나타나는 정치인들의 합종연횡은 놀랄 일도 아니다. 김대중 대통령의 최측근이던 한광옥 전 의원이 새누리당으로, 새누리당 출신이자 안철수 후보의 멘토로 알려졌던 윤여준 전 장관은 민주통합당으로, 민주통합당의 송호창 의원은 안철수 후보 캠프로 옮겨도 이젠 ‘그런가보다’라고 담담하게 받아들인다.

그런데 지난 10월 11일 김성주 성주그룹 회장이 새누리당 공동선대위원장으로 선정되었다는 소식에는 충격을 받았다. 평소 정치에 몹시 냉소적인 데다 1년에 4분의 3을 해외에서 보낼 만큼 바쁜 그가 일시적이긴 하나 정치, 그것도 대선 캠프에 발을 디디리라고는 상상을 못했기 때문이다.

우선 평소 지나치게 신중한 태도에 극도로 말을 아끼고 무채색옷만 즐겨입는 박근혜 후보와 속사포처럼 말을 쏟아내고 패션업계 회장답게 튀는 옷차림의 김성주 위원장의 조합은 그림이 잘 그려지지 않았다. 글로벌 리더를 위한 장학제도와 젊은 여성들을 위한 리더십 포럼을 운영하는 그의 성향이라면 안철수 캠프를 선택하는 것이 어울릴 듯한데 지루한 올드보이들의 모임이라는 일부의 비판을 받고 있는 새누리당이라니….

[유인경이 만난 사람]“지루하고 밋밋한 새누리당에 나 같은 트러블메이커가 활력이 될 수도”

첫 날 기자회견 때부터 스키니진에 빨간 운동화 등 파격 패션과 “한국을 확 뒤집어 혁명을 일으키고 싶다” “난 재벌좌파다” “박 후보에게 그레이스 언니란 별명을 지어줬다”라는 등의 그의 발언은 당 안팎은 물론 대중들에게도 파문을 일으켰다. 김성주 회장이 2012년 DNA 회의 <세계에서 가장 창의적인 비전을 가진 101명의 리더>에 선정된 것을 비롯, 세계 무대에서 각종 수상을 할 때나 MCM 브랜드가 영국 헤롯백화점에 입점했을 때도 잘 다루지 않던 언론들이 그의 말과 옷차림을 다퉈 보도했다. 새누리당 위원장인데도 보수성향의 정치평론가들이 더 거세게 비난의 화살을 퍼부었다. 정치 입문 일주일이 지난 이른 아침, ‘너무 구설에 시달려서 스트레스를 받지나 않았을까’란 우려와 달리 그의 태도는 언제나처럼 밝고 활기찼다.

정치에 입문하자마자 자칭타칭 ‘트러블메이커’란 별명을 얻었다.
“너무 지루하고 밋밋한 새누리당에 나 같은 트러블메이커가 활력을 불러올 수도 있지 않을까?(웃음) 지난 월요일에 홍대 앞에서 정치부 기자들과 만났는데 답답한 당사를 떠나 밝고 젊은 분위기에서 보니까 좋아하더라.”

그날 ‘경제민주화를 강제하는 것은 역사에 역행하는 것’이라고 말해 조윤선 대변인이 해명하는 일도 생겼다.
“내 화법이 정치적이지 않아 오해를 받은 것 같다. 고인 물은 썩게 마련이어서 경제민주화란 경제를 흐르는 물로 만들어야 한다는 말을 하려던 것이 오해가 생겼다. 내가 주로 논문을 쓰던 사람이어서 길게 설명하는 데 익숙하고, 정치적 단순화법을 잘 몰라서 그런 일들이 벌어진 것 같다. 물론 건전한 비판, 정확한 지적은 당연히 받아들이겠다.”

새누리당과 코드는 맞나.
“새누리당을 보고 합류한 것이 아니다. 박 후보를 믿고 선택한 것이다. 새누리당 당직자 가운데도 날 마땅치 않아 하는 이들이 많다는 것을 안다.”

왜 박근혜 후보를 선택했나.
“세 후보 중엔 최선이라고 판단했다. 문재인 후보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아바타인 것 같고, 안철수 후보는 이론에 밝아도 현실정치엔 한계가 있을 것 같고…. 두 후보의 정책을 봤는데 너무 추상적이더라. 정치엔 무식하고 문외한이지만 우리나라가 발전하려면 정치·경제·사회 전반에서 혁명을 일으켜야 한다고 믿는데, 혁명은 안정을 기반으로 일어나야 발전적 성과를 거둘 수 있다. 다른 두 후보가 불안해 보였다. 무엇보다 우리 국민의 반이 여성이고, 5000년 역사를 자랑하는데, 지금쯤은 여자 대통령이 나올 때가 아닌가. 독일도 메르켈 총리가 아니었다면 독일은 물론 유로존이 벌써 무너졌을 것이다.”

박 후보와 과거 친분이 있었나.
“공식석상에서 마주친 일은 있지만 독대한 적은 없다. 나는 정치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무식한 사람이다. 박근혜 후보와 처음 독대했을 때 ‘선대위를 맡아달라’는 말에도 ‘선대위가 뭔가요?’라고 물을 정도였다. 첫 대면에서 내가 하도 비판적이고 과격한 발언(정신차리셔야 한다 등등)을 하고 거절해서 다시는 나를 안 볼 줄 알았다. 정치적 욕심도 없으니 평소 낡고 구태의연한 새누리당에 대한 지적도 하고 박 후보의 태도에 대한 신랄한 이야기도 했다. 그런데 다시 찾더라. 많은 이들이 소통이 안 된다, 콘텐츠가 부족하다 등으로 박 후보를 평하던데 직접 대화를 해보니 포용력도 강하고 소통이 잘되는 분, 각 분야에 콘텐츠가 풍부한 분이어서 믿음이 갔다. 사흘 동안 잠 못자고 고민하다 병원에 실려갔다. 난 정치를 하겠다고 나선 것이 아니라 냉소적 지식인에서 벗어나 행동하는 지식인이 되고, 에국을 하기 위해 나선 것이다.”

[유인경이 만난 사람]“지루하고 밋밋한 새누리당에 나 같은 트러블메이커가 활력이 될 수도”

진보적 여성들이 자주 글을 올리는 사이트에 들어가보니 MCM 불매운동을 벌이자는 글도 있더라. 지구촌을 무대로 움직이고, 시간이 돈인 경영자에게 이번 행보는 별로 이익이 아닌 것 같다. 무슨 말을 해도 당 내외에서 파문이 일고…. 그런 비난과 불이익을 감수하면서까지 선대위원장을 맡은 이유가 뭔가.
“출장에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우리나라와 외국 신문을 꼼꼼히 보면서 가슴이 터질 것 같은 아픔을 느꼈다. 한반도엔 여전히 전쟁위험이 남아있는데 종북세력이 강화되고 있다. 또 북한 내부 붕괴와 내부 반란으로 인한 경제파탄 위험성도 예감된다. 중국의 경제부흥으로 자칫 중국의 경제속국이 될 위험성까지 예상되는 모습이 마치 구한말의 모습과 너무 흡사했다. 당시 수구·진보파로 나뉘어 싸우다 결국 나라를 잃지 않았는가. 과거사에 함몰할 것이 아니라 안정된 기반에서 새로운 미래를 창조할 때라고 생각했다. 내 사업도 중요하지만 내 나라, 내 정부가 있어야 국민이나 기업도 발전한다는 판단에서 이번에 박 후보의 제안에 동의한 것이다. 잠시 불이익이나 비판을 받을지는 모르지만, 결국 진심과 진실은 밝혀지리라 믿는다. 그리고 내가 가진 경험을 이 시기에 풀어놓지 않으면 나중에 후회할 것 같아 선대위원장을 수락한 것이다.”

가족이나 주변의 반응도 궁금하다.
“외국에 있는 딸이 국제전화를 걸어 한 첫 마디가 ‘엄마, 미쳤어?’였다. 지인들이나 회사 직원들도 패닉상태였다. 김대중 대통령 때부터 장관, 국회의원 등 숱한 제의를 거절한 것을 알기에 더욱 그럴 것이다. 하지만 난 내가 아니라 내 딸과 그 친구들이 안심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 조금이라도 내 재능과 열정을 다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왜 재벌좌파라고 주장하나.
“재벌의 딸이 맞다. 하지만 아들만 존중하는 가풍이었는데 외국인과 결혼해 유산을 못 받았다. 미국 유학시절, 뉴욕 뒷골목에서 1센트를 아끼려고 걸어다녔고 블루밍데일 백화점에서 근무할 때는 박스를 직접 날랐다. 국내에 돌아와서도 밑바닥부터 시작해 자수성가했다. 여자의 몸으로 혼자 애를 키우면서 30개국 350개 매장에 제품을 공급하며 1000여명의 한국 직원과 15개 국적의 외국 직원을 둔 글로벌기업으로 키웠다. 한국 기업들은 접대와 향응을 하기 위해 비자금을 마련하느라 부패한다. 엘리트들이 기업에 입사해 향응과 접대로 청춘을 보내고 기업도 양심을 팔아서 돈을 벌면 그게 무슨 의미가 있으며 얼마나 큰 국가적 낭비인가. 난 그런 향응·접대를 하지 않고 건전하게 관계를 맺고, 세금도 투명하게 내고 이익금은 장학재단을 만들어 학생들의 해외유학, 북한동포돕기 등에 쓰고 있다. 부패한 관행에 타협하지 않고, 진보적인 방법으로 돈을 버니 스스로 재벌좌파라고 한 것이다.”

(인터뷰에 동석한 MCM의 한 임원이 말을 거들었다.)

“재벌 가문이고 성주그룹의 규모도 크긴 하지만, 생활은 철저히 서민이다. 집도 자기 소유의 집이 없어 언니네 집에 산다. 차도 국산차다. 해외 10개국에 현지법인이 있지만 자기 개인 명의의 집이나 건물도 없다. 집에 가보면 반찬 두세 개로 밥을 먹는다. 무척 화려해 보이지만 사실 옷도 몇 벌 없다. 늘 같은 옷만 입고 다녀 사진기자들이 ‘5년 전에 촬영할 때 입은 옷’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다만 핸드백 회사 사장이다보니 자체 광고 겸 가방만 자주 바꿔 들고 다닌다. 얼마 전 유방암 수술을 해서 최악의 건강상태에서도 잠도 안 자고 일만 하는 일벌레다. 청담동 본사의 지하 카페도 청년들을 위해 무료 제공하고 있다. 절제와 절약, 나눔이 몸에 밴 사람이니 재벌좌파라는 표현이 맞지 않는가.”

과거 여성들도 군대에 가야 한다고 주장해서 물의를 빚은 적이 있다.
“내 상징적 소신이다. 난 한창 머리와 몸이 뜨거운 청춘에 남성들만 군대에 가서 억울함을 느끼는 것은 모두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남성들은 1년만 의무복무하고 여성들은 자원입대하는 것이다. 군대의 개념도 바뀌어야 한다. 그저 청춘을 가둬두는 곳이 아니라 지도자 양성소로 만들어 IT능력, 국가경영능력 등을 익히게 해 남녀 누구나 가고 싶은 곳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다보스포럼을 비롯, 해마다 주요 국제행사에 참여하며 대통령이나 총리 혹은 경영자들을 만난다. 정치나 기업에서 지도자의 제일 중요한 자질과 덕목은 무엇인가.
“무엇보다 ‘정직함’이 중요하다. 우리 정치가 가장 부족한 것이 신뢰다. 정치인들이 너무 수시로 말을 바꾸고 자기 당의 당론조차 부정한다. 그 다음이 ‘열린 마음과 유연성’이다. 지도자는 원칙을 지키되 포용력을 가져야 한다. 넬슨 만델라 남아공 대통령의 경우, 자신을 감옥에 보낸 이들까지 포용하는 관용의 미덕을 보였다. ‘독자성’도 지도자의 자질이다. 싱가포르 리콴유 전 총리의 경우 친중친미가 아니라 용중용미를 해서 그 작은 나라를 발전시켰다.”

앞으로 어떤 일을 할 것인가.
“내가 자신있는 것은 여성과 글로벌이다. 쉽게 말하면 여성들이 아이를 키우며 가정의 행복을 느끼면서도 자신의 재능과 역량을 사회에서 발휘하는 새누리당의 여성정책을 널리 알리는 일을 하겠다. 1999년에 맥켄지코리아가 분석한 우먼코리아란 한국 국가경영 보고서가 아직도 여성정책에 활용된다. 한국이 선진국에 진입하려면 여성인력의 활용이 가장 필요하다는 내용인데, 당시 그걸 만드는 데 온힘을 쏟았다. 다음 정부에서 일자리 창출이 가장 큰 과제인데 우물 안 개구리로 머물 것이 아니라 글로벌 감각을 키워야 한다. 글로벌 감각이란 영어를 잘하거나 해외에 많이 진출하는 것이 아니다. 과거의 세계화가 안에서 밖을 보는 것이었다면 글로벌은 밖에서 안, 즉 우리를 보는 것이다. 우리 자신을 잘 모르고 남들에게 잘 소개할 줄 모르는 것이 약점이다. 사업을 하건, 취업을 하건 그저 학연·지연에만 얽혀 돌아간다. 난 그걸 조직의 근친상간이라고 부르는데, 그걸 과감히 끊어야 사회 곳곳에서 인재들이 실력을 제대로 발휘해 몇 배의 효과를 내게 된다. 청춘들이 글로벌 인재로 세계로 뻗어나가는 데 일조하고 싶다.”

대선이 끝난 후에도 정치활동을 할 것인가.
“대선까지만 선대위원장으로 일할 예정이다. 그 후엔 내 사업장으로 돌아간다. 해외시장 진출계획도 많은데 사업을 잘 해 이익을 내고 직원을 더 많이 고용하는 것도 내 방식으로 애국하는 길이다.”

‘딱 두 달만’이라고 못박았지만 그는 아침 햇살을 받은 나팔꽃처럼 화사하고 즐거워 보였다. 어쩌면 정치가 그의 DNA이자 적성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김성주의 애국심과 발칙한 혁명이 새누리당을 구할 수 있을까….

<글·유인경 경향신문 선임기자 alice@kyunghyang.com>
<사진·김석구 기자 sg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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