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가능한 운동’은 불가능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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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송태경 민생연대 사무처장이 민주당 최재천 의원 비서관이 되었다는 소식을 접했다. 송태경은 오랫동안 민주노동당 산하 경제민주화운동본부 정책실장을 역임한, 민주노동당의 대표적인 경제 브레인이었다. 얼마 전 조선일보 정우상 논설위원이 지난 2004년 당시 원내 진출한 민주노동당을 회고하며 ‘진보의 현대화’를 고민하던 ‘독종’들로 지목한 사람 중 하나가 그다.
 

송태경 비서관 | 경향신문(왼쪽) 손낙구 보좌관 | 김기남 기자

송태경 비서관 | 경향신문(왼쪽) 손낙구 보좌관 | 김기남 기자

사실 그의 선택은 특별하지 않다. 민주노총 정책국장 출신이며, 17대 국회 당시 민주노동당 심상정 의원 보좌관을 역임한 손낙구도 작년부터 민주당 손학규 의원의 정책보좌관을 하고 있다. 심상정 의원 보좌관 당시 행정부에 요청해 얻은 자료로 <부동산 계급사회>(2008)와 <대한민국 정치 사회지도>(2010) 등의 역저를 저술한 손낙구의 경우 스스로 공채에 지원했기 때문에 손학규 의원 측에서 깜짝 놀라 정말 그 사람인지 확인할 정도였다고 전한다.
 
과거 한나라당에서도 민주노동당 당적을 가진 보좌관들이 너무 많아서 문제가 된 적이 있다. 진보정치 실현을 위해 정책연구를 하던 그 고급인력들이 진보정당에서 자리를 잡지 못해 보수정당으로 떠나는 일이 반복되고 있는 거다.

운동에 강한 애착을 가진 이들은 그들의 선택을 원색적으로 ‘변절’이라 비난하거나 혹은 좀 더 점잖게 ‘이탈’이란 말로 아쉬움을 표할 게다. 하지만 훨씬 더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나이가 들고 생계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면서, 혹은 기왕 하던 운동의 좀 더 가시적인 성과를 보기 위해 보수정당에 몸을 기탁하는 이들을 그저 비판하는 것만으론 해결할 수 없는 문제다. 그간의 진보운동은 세상의 변혁에 대한 진정성을 가진 소수 활동가의 희생을 자양분으로 성장해왔다. 이것은 몇 년을 희생하면 혁명으로 세상이 뒤집히리라 믿었던 시절에나 가능한 방식이었는데, 합법적인 진보정당 운동으로 방향을 튼 후에도 활동의 습속은 변하지 않았던 것이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제는 가정을 꾸리고 생계를 이어나가야 할, 경험이 쌓인 활동가들을 진보정당이 얼마나 붙들 수 있을까? 사실 진보정당은 그들을 활용하려는 노력을 게을리했다. 그들은 자본이 사람을 중시하지 않는다 비판했고 노조 설립을 불허한다 비판했지만, 진보정당 역시 이념만 내세울 뿐 그 이념 노선을 추진하는 노하우를 터득한 ‘숙련노동자’들을 경시했고 노조 설립에도 소극적이었다.

17대 국회 당시 민주노동당의 의원과 보좌관들은 당시 노동자 평균임금이라는 180만원만 받고 나머지 금액은 특별당비로 반납하는 문화를 가지고 있었다. 19대 국회의 통합진보당 역시 현재 노동자 평균임금이라는 230만원 정도만 받고 나머지 금액은 여전히 반납시키는 모양이다. 처음에는 노동자·농민을 대변하겠다는 ‘진정성’을 보여주기 위한 제도인 줄 알았는데, 민주노동당 분당 과정에서 수많은 정책연구원이 이탈하는 부작용이 발생한 후에도 여전히 그러는 걸 보면 보좌관들이 고액당비 납부를 쉽게 이끌어낼 수 있는 ‘봉’이라 그러는 모양이다. 한편 민주노동당 시절 상근자 노조 설립을 주도했던 이들이 다수였던 분당 이후의 진보신당은 그간 당 운영에서 상근자 노조를 인정해 왔지만 이번 총선의 등록취소 이후 국고보조금이 끊겨 상근자의 절반 이상을 퇴직시키고 월급도 반 이상 감봉해야 할 처지에 내몰렸다.

이 문제를 심각하게 고민하지 못하면 진보운동은 청년이 무모하게 뛰어들었다 연륜이 쌓이면 퇴장하는 틀을 영원히 유지할 수밖에 없다. ‘지속가능한 운동’을 고민하는 것은 개인의 탐욕을 챙기는 것이 아니다. ‘희생하는 활동가’ 모델을 떨쳐내지 못한다면 운동의 퇴적이나 성과도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한윤형<미디어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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