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의 통념을 비튼 아홉 난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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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매카시(67)의 작품이 한국에 온다고 했을 때 많은 이들이 엽기와 외설의 기형적 퍼포먼스와 오브제들을 떠올렸을지 모른다. 온몸에 피 칠갑을 한 산타클로스, 돼지와 섹스하는 (수많은 버전의) 부시 대통령, 인간의 눈구멍에 달린 성기, 케첩과 마요네즈·생고기·소시지 등으로 뒤범벅된 더럽고 폭력적인 이미지들…. 그러나 지금 한국 땅에 놓여진 폴 매카시의 작품은 적어도 겉으로 보기엔 그의 작품 중에서도 가장 온건한 축에 속한다. 실리콘으로 만들어진, 소프트 아이스크림 풍의 ‘아홉 난쟁이들(nine dwarves)’.

물론 폴 매카시는 폴 매카시다. 소프트 아이스크림인 줄 알았던 멍청이(Dopey), 박사(Doc), 졸림이(Sleepy), 재채기(Sneezy), 행복이(Happy) 등 파랗고 노란 난쟁이들은 기괴하다. 그들의 신체는 매끈하지 않고, 훼손되거나 덧붙여져 있다.

전시 설치 전경 | 국제갤러리 제공

전시 설치 전경 | 국제갤러리 제공

코를 과격하게 뽑은 자리에 쇠파이프를 꽂아두거나, 손이 뽑힌 자리에선 살 속의 물질들이 흘러내리고 있다. 주변으론 작품 제작과정 중에 생긴 실리콘 조각과 덩어리, 연장들이 그대로 흩어져 있고, 그의 작품에 즐겨 사용하는 남근 형태의 물건들도 뒹굴고 있다. 이 같은 난잡한 형태는 그가 회화와 조각을 행위예술로 보는 데서 비롯한다.

“언제나 시작 단계에서 구체적 아이디어는 없어요. 행위를 시작하면 그때야 ‘아, 이거구나’ 하면서 뭔가가 시작되는 것이죠. 난쟁이 작업도 조각이지만 나는 그 과정을 퍼포먼스로 봐요. 조각에 저의 행위가 반복해 가해지고, 실재와 추상이 교차하는 과정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입니다.”(폴 매카시)

폴 매카시

폴 매카시

난쟁이들은 그가 최근 선보인 ‘백설공주’ 시리즈의 일환이다. 그는 주로 디즈니 만화 캐릭터, 알프스 소녀 하이디, 피노키오 등 동화 캐릭터 혹은 상류사회 명사들 등을 이용해 가학·피학·기형적인 방법으로 미국적 신화, 남성중심 사회의 폭력성 등에 저항해 왔다. 학대, 성도착 등 금기시되어온 비도덕적 이미지들은 그 자체로 사회적 관습과 정면으로 맞닥뜨리게 한다. 난쟁이들 역시 기존의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 동화의 통념을 비튼다. 백설공주는 그냥 여자이고, 매카시의 (일곱이 아닌)아홉 난쟁이들은 일군의 집단 남성일 뿐이다. 폴 매카시는 말한다.

“우리가 당면한 큰 이슈는 평등입니다. 누가 권력을 쥐고 있느냐의 문제이죠. 나의 질문 역시 가부장의 위치가 어디인가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개인일 수도, 지배적 세력일 수도 있어요. 남성, 남근, 남근적 무기 같은 것들이죠.”
전시장 야외 정원에는 ‘사과나무 소년 사과나무 소녀(Apple Tree Boy Apple Tree Girl)’가 설치돼 있다. 높이 5m에 달하는 거대한 알루미늄 조각이다. 이것은 독일에서 유래된 ‘허멜 도자기 조각상’의 이미지다. 허멜 도자기상은 미국의 대표적 소비사회 상징물이라고 한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주둔 미군들이 기념품으로 고향에 보내면서 큰 인기를 끌었다. 원래 목가적인 이미지와 달리 그로테스크한 모습이다.

폴 매카시는 아름다움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은 추악하다고 하지만 저는 저의 이런 작품 안에서 아름다움을 봅니다. 통상적으로 생각하는 아름다움을 반복해 말하는 게 아니라 질문을 던지게 하는 게 아름답지요. 이 난쟁이들도 어떤 것에 대해 과감히 이야기를 하고 있단 점에서, 저는 아름다움을 봅니다.”

전시는 새로 연 서울 소격동 국제갤러리 3관에서 5월 12일까지 열린다. (02)733-8449

<이로사 경향신문 문화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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