뭉개진 형체에 드러난 진실한 정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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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화란 무엇일까. 유현경 작가(28)는 지금 자신이 그리는 인물화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모델을 앞에 두지만 그를 묘사하는 것에 치중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를 그리기 위해 노력한다.”

알듯 모를 듯한 이 말은 직접 그의 그림을 대면하면 보다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의 그림은 인물의 형태를 가까스로 붙잡고 있지만, 캔버스 위를 배회하는 것은 모델과 만난 순간의 그의 정서다. 말하자면 그는 그의 앞에 놓인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을 응시하고 있다. 그것은 아마 대체로 자기 자신일 것이다.

착한 사람 50x40cm oil on canvas 2011 | 학고재갤러리 제공

착한 사람 50x40cm oil on canvas 2011 | 학고재갤러리 제공

4월 29일까지 학고재 갤러리에서 열리는 유현경 개인전 ‘거짓말을 하고 있어’는 한 작가의 망설임과 진실한 현실에의 대면을 보여준다. 그에게 이상적인 회화는 ‘머리가 인식하는 것보다 더 빨리 손으로 그려내는 것’이라고 한다. 그렇지만 결과물에 대한 확신이 없다. 그는 늘 직접적으로 분출하기를 망설이고, 지우고 그리기를 반복하면서 어떤 진실에 가까이 가려 하지만, 결국은 자신의 그림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번 전시는 소격동 학고재 갤러리 전관을 털어 진행되고 있다. 중심은 지난해 10월부터 5개월 동안 독일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플뤼쇼브라는 독일 동북부의 작은 마을에 머물렀을 때 그린 마을 사람 8명의 초상화들이다. 이외에도 100명의 모델을 1~2시간 내에 빠르게 그려낸 2008년의 ‘100인의 초상화’ 프로젝트, 풍경화 등 100여점의 작품이 걸렸다.

작가는 독일에 머물면서 한 달 이상 지속적으로 만난 사람들을 그렸다. 얼굴들은 대체로 지워지고 뭉개어져 있다. 색들은 무채색과 섞여 지워지고 덧칠되면서 ‘더러워져’ 있다. ‘어린 사람’, ‘어른 여자’, ‘차분한 사람’, ‘가난한 사람’과 같은 단출한 제목은 그림에 대해 최소한의 추상적 정서를 제공할 뿐이다.

들판에 서서 120x160cm oil on canvas 2011 | 학고재갤러리 제공

들판에 서서 120x160cm oil on canvas 2011 | 학고재갤러리 제공

그러나 그림들을 하나 하나 보다보면, 자연스럽게 어떤 정서들이 덩어리로 일어나기 시작한다. 이들은 차분하고, 조용히 슬프고, 격정이 있다 해도 여러 차례 덧칠한 붓질 속에 감추어져 있다. ‘들판에 서서’의 사람은 바람에 흩어지고 있다. ‘착한 사람’의 고통스러운 얼굴은 더러운 색으로 지워져 있다. ‘죽은 사람’의 얼굴은 산 사람과 다를 바 없어 보인다. 계속해서 형체를 죽여버리거나 흩뜨리는 붓질과 무채색을 향해 가는 색깔은 흩어지는 순간을 캔버스 안에 가까스로 잡아두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그러다 ‘생각’(2011)이란 이름의 붉은 색 덩어리의 그림을 만나면, 지금까지 본 모든 얼굴들이 실은 ‘생각’의 형태일지 모른다는 각성이 일기도 한다.

작가는 때때로 모델을 앉혀 두고, 모델을 그리지 않았다. 이를 테면 ‘착한 사람’ 작업을 진행할 때도 그랬다. 당시 작가는 착한 사람을 그리워하고 있었고, 그래서 기억나는 표정을 손이 가는 대로 그렸다고 한다. 작가 노트에도 그런 말이 자주 나온다.

’나는 그를 앞에 두고 그를 그리지 않을 때도 있었다. 그래도 그가 앞에 있어야 했다. 그는 종종 그를 보지 않고, 그림에 몰두해 있는 나를 보고 가도 되는지를 물었다.

-그냥 있어줘
나는 즉각 대답하였다. 나 역시 그 심리에 대해 의아해 했지만, (…)그가 가지 않길 바랐다.’

그림은 그것을 그린 사람 그 자체다. 유현경의 작가 노트를 보면, 피상적인 단어들에 머무는 게 아니라 자신의 진심에 밀착하고 그것을 전달하려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의 그림은, (당연하지만) 그의 글 같다.

인물화 외에 풍경이나 정물화도 인상적이다. 대체로 대작이 걸렸는데, 인물화에 비해 검은 활기가 넘친다. 전시 문의 (02)720-1524

<이로사 경향신문 문화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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