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가 바라본 남한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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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성 작, 전인철 연출의 <목란언니>는 두산아트센터가 지난해부터 기획, 제작하고 있는 ‘경계인 시리즈’의 세 번째 작품이다. 첫 작품 <디 오써>가 객석과 무대, 연극과 삶의 경계를 오가며 과연 무엇이 예술과 현실을 경계 짓는지 묻는 작품이었다면 두 번째 작품 <백년, 바람의 동료들>은 실제 재일교포로 활동 중인 작가와 연출가의 목소리를 통해 역사적, 민족적으로 일본에도 한국에도 속하지 않는 ‘경계인’ 재일교포의 애환을 풀어낸 작품이었다. 그리고 이번 작품 <목란언니>는 우리에게 가장 가까우면서도 가장 먼 이웃, 탈북자의 눈을 통해 바라본 남한 사회를 그리고 있다.

평양에서 손풍금(아코디언)을 전공한 조목란은 우연한 기회에 밀수꾼을 도왔다는 누명을 쓰고 한국으로 넘어오게 된다. 본디부터 자발적인 탈북이 아니었던 데다 북한에 있는 부모를 서울로 데려와준다는 브로커에게 속아 정착금을 몽땅 사기당한 목란은 한국에서의 삶에 회의를 느끼고 북한으로 다시 돌아가기 위해 무슨 일이든 하려 든다. 우연히 룸살롱을 운영하는 ‘큰 손’ 조대자의 눈에 든 목란은 재입국 자금을 벌기 위해 그녀의 집에 간병인으로 취직하게 된다.

연극 <목란언니>

연극 <목란언니>

조대자에게는 자녀가 셋 있다. 우울증 환자인 역사학자 태산, 곧 폐과될 위기에 처한 철학과 교수 태강, 그리고 소설가의 꿈을 접은 채 시나리오 작가로 고군분투 중인 태양 삼 남매다. 무한경쟁사회의 ‘패배자’들이라 할 수 있는 이들은 목란을 만나면서 각기 다른 방식의 도움과 위안을 얻게 되고, 이에 흡족해진 조대자는 목란을 아예 며느리로 들어앉히려 든다. 하지만 사업 운영에 문제가 생기면서 조대자는 종적을 감춰버리고, 약속했던 돈을 받지 못한 목란은 결국 태강을 속인 채 조대자의 돈을 챙겨 떠난다.

탈북 입국자 2만명의 시대. 한 해에만 2000여명의 탈북자가 한국으로 들어오는 상황에서 탈북자는 더 이상 낯설지 않은, 우리 사회의 새로운 ‘경계인’이 되어가고 있다. ‘더 나은 삶’을 위해 목숨을 걸고 국경을 넘어왔지만, 차가운 무관심과 경계 의식, 그리고 각종 사기의 위험 등 이곳에서의 삶 역시 그리 호락호락하지만은 않다. 우리 사회의 가장 가까운 ‘경계인’인 그들이 바라보는 이 사회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목란언니>가 바라보고 있는 것은 바로 그 지점이다. 즉 이 작품은 탈북자 문제 자체가 아니라, 그들의 시선을 통해 바라본 우리 자신의 모습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연극 <목란언니>

연극 <목란언니>

조목란은 북한에 돌아가기 위해 무슨 짓이든 서슴지 않는 모습을 보인다. 돈을 내놓으라고 태양을 위협하기도 하고, 태강을 속여 돈을 빼돌리기도 한다. 그런 목란에게 태양은 왜 그렇게 돈을 밝히느냐고 비난을 퍼붓지만, 사실 여기 등장하는 인물 모두는 이러한 비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룸살롱 아가씨들을 무섭게 다그치는 조대자나 돈 때문에 동료를 배신하는 태양의 친구, 탈북자들의 생명 같은 돈을 집어삼키는 사기 브로커, 그리고 돈이 안 된다고 학과를 폐지하는 대학 등 조목란의 눈에 비치는 오늘의 대한민국은 ‘살기 좋은’ 낙원이 아니라 오로지 돈밖에 모르는 냉정한 사회일 뿐이다. 태양, 태산, 태강 남매의 타락 역시 자본주의 사회에서 문사철(문학, 역사, 철학)의 몰락을 비유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여신동의 무대는 이러한 작품의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구현하고 있다. 4면의 객석으로 둘러싸인 무대는 서로가 서로를 비추며 대칭적인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여기서 남과 북은 완전히 따로 나뉜 이질적인 공간이 아니라, 서로를 마주보며 각자의 치부를 드러내는 거울과 같은 공간인 것이다. 그래서일까, 마지막 장면에서 갈 곳 잃은 목란의 초점 잃은 눈동자가 삶의 방향을 잃고 부유하는 우리의 모습을 보여주는 듯해 씁쓸하다. 4월 7일까지 두산아트센터 스페이스111.

김주연<연극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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