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은 모든 것을 용서할 수 있을까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뮤즈. 그리스 신화에서 예술을 관장하는 여신들을 일컫는 이 말은 한편으론 예술가들에게 창작의 영감을 주는 여인을 지칭하는 하나의 대명사처럼 사용되고 있다. 수많은 예술가 곁에는 그들의 창작열을 북돋고 힘을 실어주는 뮤즈들이 존재했다. 그런데 지금 명동예술극장에서 공연중인 피터 셰퍼 작, 구태환 연출의 <고곤의 선물>에서는 일반적인 뮤즈와는 조금 다른 모습의 뮤즈를 만날 수 있다.

연극 <고곤의 선물>

연극 <고곤의 선물>

극중 극작가인 에드워드 담슨은 피의 복수만이 이 세상을 정화시킨다고 믿는 극단주의자다. 그는 “극단적이 되는 것은 극작가의 의무요, 극단적으로 된다는 것은 관객에게 깊은 경외감을 불러일으키는 것, 그리고 필요하다면 관객을 섬뜩하게 만드는 것”이란 자신의 신념에 고집스럽게 매달리면서 글을 쓰고 있다. 이런 그에게 어느 날 헬렌 자비스란 여인이 나타난다. 그리스 고전을 연구하는 지적이고 아름다운 여성 헬렌은 첫눈에 담슨의 마음을 사로잡고, 헬렌 역시 담슨의 활활 타오르는 열정에 자신도 모르게 이끌리게 된다. 두 사람의 사랑의 결실로서 담슨은 자신의 희곡들을 완성시키고 그로 인해 극작가로서 명성을 얻게 된다.

여기까지만 보면 헬렌은 여느 작가의 뮤즈와 다를 바 없다. 연인의 창작력을 자극시키고 그 사랑의 결실을 위대한 예술작품으로 탄생케 하는 전형적인 ‘뮤즈’이다.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헬렌의 역할은 일반적인 뮤즈와는 조금 다르다. 그녀는 작가의 영감을 북돋기보다는 오히려 그 광폭한 영감을 진정시키고 달래는‘이성적인’ 뮤즈로서 행동한다. 헬렌은 철저하게 이성적인 논리와 윤리적 잣대로써 담슨이 쓴 작품을 판단하고, 몇몇 극단적인 장면들을 완화시키거나 삭제할 것을 요구한다. 담슨은 그녀의 이러한 지적에 미친 듯이 반발하지만 결국은 그녀의 조언을 받아들인다.

연극 <고곤의 선물>

연극 <고곤의 선물>

담슨의 폭발할 듯한 에너지와 헬렌의 차분한 절제가 함께 만들어낸 작품들은 열렬한 호평을 자아내며 그에게 명성과 부를 가져다주지만, 점차 담슨은 자기 작품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피의 복수, 잔혹한 폭력을 거세시키고자 하는 헬렌에게 불만을 품게 된다. “절제란 결국 회피”란 생각에 사로잡힌 담슨은 자기 작품의 극단성을 완화시키는 헬렌에게 분노를 표출하고, 결국 그녀의 도움 없이 자기가 생각한 대로 작품을 완성시킨다. 하지만 헬렌의 절제력을 벗어난 담슨의 작품은 혹독한 비판을 받게 되고, 작가로서의 명성 역시 잃게 된다.

자신의 도움을 거부한 채, 예술가로서 실패한 삶을 살아가는 담슨에게 깊은 실망과 분노를 느낀 헬렌은 그에게 이별을 통보하고, 이에 담슨은 자신의 뮤즈였던 헬렌에게 잔혹한 마지막 복수를 선사한다. “세상에 용서할 수 없는 일은 없다”는 헬렌의 주장에 도전이라도 하듯, 그녀에게 결코 ‘용서할 수 없는’ 상처를 남기고 죽은 것이다. 헬렌은 담슨의 자식인 필립으로 하여금 이 모든 비밀을 샅샅이 밝힌 전기를 쓰게 함으로써 그의 명성을 짓밟는 새로운 복수를 꿈꾸지만, 결국 이를 포기하고 그를 용서하겠다고 절규한다.

담슨이 파괴와 복수로 상징되는 인간의 원초적이고 극단적인 감정을 상징한다면, 헬렌은 서양 문명사의 시초인 ‘헬레니즘’을 연상시키는 그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절제와 질서로 상징되는 인간의 ‘이성’을 대표한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담슨이 헬렌에게 남긴 마지막 선물은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을 거부한 헬렌과 세상에 대한 복수인 한편, 합리적인 이성과 질서로 무장한 현대인들에게 던지는 질문이라 할 수 있다. 이성이 고도로 발달한 현대에도 여전히 전쟁과 테러 등 끔찍한 폭력은 되풀이되고 있다. 이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진정, ‘이성’적인 존재인가. 이성으로써 과연 모든 것을 용서하고 이해할 수 있는가. 한 예술가가 목숨을 바꾸면서 던진 처절한 질문이 막이 내린 뒤에도 먹먹하게 귓가를 맴도는 작품이다. 3월 11일까지 명동예술극장.

김주연<연극 칼럼니스트>

문화내시경바로가기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