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계 외곽에 흐르는 샘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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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은 여전히 아이돌이다. 인터넷 신문은 아이돌 가수에 대한 대수롭지도 않은 근황을 동네 마트 전단 수준으로 뿌려대기 바쁘고, 공중파 음악 프로그램은 늘 그래 왔듯이 시청률에 도움이 될 만한 보이 그룹, 걸 그룹만을 모신다. 지난 2월 11일에 방송된 MBC 다큐멘터리 프로그램 <그날>은 ‘K-POP 세계 진출하는 그날’이라는 제목으로 외국에서 공연을 펼친 아이돌 그룹의 모습을 담았다. 훤칠한 외모를 갖추고, 화려하게 춤을 추고, 문화적 첨병이 되어야만 주목받는 상황은 오늘도 이어진다. 그 밖의 음악인들은 언제나 찬밥 신세다.

(위부터) <구골플렉스> 앨범, <스케리피> 앨범, <잠비나이> 앨범

(위부터) <구골플렉스> 앨범, <스케리피> 앨범, <잠비나이> 앨범

현실은 이럴지라도 눈길 뜸한 외곽에서는 저마다의 모양으로 다양화를 도모하며 대중음악계의 내실을 기해 줄 작품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아무도 찾지 않는 바람 부는 언덕에 이름 모를 잡초’ 같은 존재지만 이들 같은 음악인 덕분에 우리 대중음악이 수조 안의 고인 물이 아닌 끊임없이 흐르는 샘물로 여겨질 수 있다. 또한 자기 빛깔 없이 무리 지어 트렌드에 몸을 내던지거나 상업성과 철저히 결탁한 노래만이 가요의 전부가 아님을 깨닫게 해준다. 이들이 있기에 고착화된 형세에서 다양성, 새로움에 대한 낙관을 품는다.

밴드 잠비나이(Jambinai)의 첫 정규 앨범 <차연(Differance)>은 기존 음악 문법을 탈피하고 해체하는 비정형의 모습으로 독특함의 선봉에 선다. 팀은 국악 전공자로 구성되어 있지만 순수 전통음악을 고수하지 않으며, 그렇다고 클래식과 재즈를 재해석하는 뻔한 퓨전을 답습하지도 않는다. 어떤 장르로 딱 잘라 말하기에도 애매하다. 전통악기와 서양의 악기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만든 결과물은 상당히 꼬여 있는 동시에 장중하며, 기괴함과 을씨년스러움을 풍긴다. 펑크(punk), 프로그레시브 록, 아방가르드적인 요소, 국악이 버무려진 앨범은 흥미로운 혼란스러움을 제시한다. 한국에서도 신선한 실험이 행해지고 있음에 감격스럽다.

최정호와 신현진으로 구성된 듀오 구골플렉스(Googolplex)의 데뷔작 ‘Behind The Eyes’는 로파이(lo-fi, 의도적으로 음질을 안 좋게 만들어 낡은 느낌을 강조한 음악) 스타일로 차별화된 일렉트로니카를 선보인다. 이들은 음질을 떨어뜨림으로써 몽롱한 기운을 공급하는 로파이 장르의 일차적 사명을 넘어 어떠한 순간이나 기분을 연상시키는 소리의 전경을 찾아가 듣는 즐거움을 준다. 바람이 지나가면서 스산함을 일궈 놓을 때, 또는 활기를 예비한 동틀 녘의 고요함, 때로는 외로움 등이 음악을 통해 구현된다. 수록곡들에서 일관되게 드러나는 온기도 매력 중 하나다.

최근에 힙합은 전자음악과 결합하며 어마어마한 대중성을 획득했지만 한편으로는 비슷한 구성을 반복하는 폐단을 낳았다. 국내 주류 음악계도 마찬가지이기에 그와는 다른, 프로듀서 스케리피(ScaryP)의 정규 음반 ‘Producizm’은 마니아들에게 환영받을 듯하다. 더욱이 그의 작품은 1990년대 초·중반 미국 동부 힙합 신에서 꽃피웠던 붐 뱁(boom bap, 드럼 소리를 흉내 낸 의성어로 비트와 리듬을 강조한 힙합 음악의 제작 스타일을 지칭)을 추구해 그 시절의 노래를 좋아했던 애호가들의 향수를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다소 부족한 부분은 있으나 90년대의 재현이 한국에서 이뤄졌다는 사실만으로도 반가움은 크다.

한동윤<대중음악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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