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려지는 뮤지컬 <위키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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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우리나라 뮤지컬계의 전망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춘추전국시대 같다는 대답을 했다. 2008년을 전후로 세계를 강타한 경제위기는 국내 공연계를 움츠러들게 만들었지만, 금년부터는 서서히 기지개를 켜며 다양한 실험과 시도를 전개할 것으로 예측되기 때문이다.

막을 올리는 공연들의 면면만 살펴봐도 알 수 있다. 대형 라이선스 뮤지컬에서 소극장 창작 뮤지컬, 로맨틱 코미디에서 비련의 여주인공 이야기까지 그야말로 각양각색이요 천태만상이다. 치열해지는 시장환경에 제작자는 더욱 죽을 맛이겠지만, 관객 입장에선 다양한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흥겨운 변화가 아닐 수 없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치솟는 환율과 제작환경의 악화로 몇 년간 만나지 못했던 대형 뮤지컬의 내한공연이 다시 등장한다는 점이다. 

뮤지컬 <위키드> 배우 | 설앤컴퍼니 제공

뮤지컬 <위키드> 배우 | 설앤컴퍼니 제공

물론 원어를 쓴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좋은 공연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굳이 비행기 타고 현지로 가지 않더라도 그곳의 스태프와 배우들이 직접 찾아와 ‘그 모습 그대로’ 공연을 꾸민다는 것은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흥미로운 시도다.

첫 테이프를 끊은 것은 <노트르담 드 파리>의 영어 버전이고, 연말의 기대작은 오랜만에 찾아올 <오페라의 유령>이다. 하지만 뮤지컬 애호가들의 관심을 한몸에 받는 작품은 단연 <위키드>이다. 2003년 브로드웨이에서 초연된 이래 세계 뮤지컬 극장가의 절대강자로 군림한 전력도 그렇거니와, 워낙 재미있다는 소문이 자자했던 작품이라 그만큼 기대치가 높을 수밖에 없다.

뮤지컬 <위키드>는 기발한 발상의 전환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원작으로 쓰인 그레고리 맥과이어의 소설부터가 그렇다. 주디 갈란드 주연의 영화로 만들어져 한 시대를 풍미했던 프랭크 바움의 소설 <오즈의 마법사>를 정반대로 뒤집어보는 내용이다. 초록 피부의 괴상한 서쪽 마녀는 사실 거대한 권력에 저항하는 굳은 심지의 선한 마법사이고, 금발의 아름다운 요정 같던 북쪽 마녀는 자아도취가 심한 공주병 환자였다는 설정이다. 심지어 두 사람은 기숙사를 함께 쓰던 대학 동창이자 룸메이트였고, 사실은 단짝친구라는 설명도 덧붙여진다. 우리로 치자면 춘향의 원래 연인은 이몽룡이 아닌 방자였고, 제비와 박씨를 통해 얻게 된 흥부의 횡재는 동생의 자존심을 배려한 놀부의 자작극이었다는 설명과 다를 바 없다. 극적 설정만으로도 이미 눈을 뗄 수 없는 호기심을 느낄 수밖에 없다.

화려한 세트와 의상, 판타지 영화 같은 소품과 무대도 볼거리이지만, 이 뮤지컬의 감동은 무엇보다 재미있는 이야기와 중독성 강한 노래에서 출발한다. 전혀 다른 배경과 세계관을 지닌 두 여주인공이 함께 경험하게 되는 사건들과 차근차근 쌓여가는 우정의 깊이는 결국 운명의 갈림길에서 관객들로 하여금 눈물을 쏟아내게 만든다. 사랑하고 이별하며 그리워하는 이야기는 어느 뮤지컬에나 등장하는 단골 소재이지만 감동의 밀도는 작품마다 다르다. 

사랑해야 하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게 만드는 이야기의 진정성은 명작을 완성해내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1막 마지막에서 “무엇보다 네가 행복했으면 좋겠어”라며 시작하는 노래인 ‘중력을 넘어서(Defying Gravity)’는 그래서 더욱 가슴 뭉클한 감동을 남겨준다.

<오즈의 마법사>가 아이들이 즐기는 이야기였다면, 뮤지컬로 완성된 <위키드>는 어른들을 위한 동화다. 싱가포르에서 먼저 만나본 내한 프로덕션은 수준급의 여주인공들을 전면에 내세운 완성도 높은 무대라 더욱 기대를 높였다. 미국과 영국, 일본 등에서 이 작품을 여러 차례 봐왔지만 어느 캐스트에 비교해도 결코 뒤떨어지지 않는 기량과 연기를 선보여 즐거웠다. 벌써부터 우리 관객들의 반응이 궁금해진다. 5월이면 100일 남짓 남았으니 설레는 마음으로 첫 무대를 기다려봐야겠다.

원종원<순천향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뮤지컬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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