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트와 인디밴드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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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형태의 퍼포먼스는 그것을 접하는 이에게 늘 설렘과 흥분을 안긴다. 이제껏 경험하지 못한 포맷 덕분에 기대감은 증폭되며 과연 어떠한 모습이 나올지 상상력을 더 동원하게 되기에 두근거림은 배로 늘어난다. 흔히 볼 수 없는 색다른 공연은 대중에게 즐거운 긴장감을 공급한다.

With Indie Series - 한국 대중음악의 여왕들

With Indie Series - 한국 대중음악의 여왕들

지난 10월 15일 마포아트센터에서 있었던 주현미와 인디 록 밴드 국카스텐(Guckkasten)의 합동 공연이 그러했다. 마포문화재단 주최로 15일부터 3주에 걸쳐 열리는 「With Indie Series - 한국 대중음악의 여왕들」의 스타트를 끊은 이들의 콘서트는 두 이름이 한 자리에 나열된 것만으로도 생경함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애잔한 선율이 특징인 트로트와 전기로 증폭된 거친 사운드, 부산스러움을 앞세운 록의 조합이라니, 이 만남이 어떤 결과물을 만들지 정확히 예측하기란 누구든 쉽지 않았을 것이다. 공연의 첫 번째 관람 포인트는 감수성이나 스타일이 전혀 다른 음악이 이뤄내는 신선함이었다.

초반은 온전히 국카스텐의 무대였다. ‘Faust’, ‘거울’, ‘붉은 밭’ 등 자신들의 노래 다섯 편을 소화한 뒤 ‘Gavial’의 간주에 이르러 주현미가 등장하며 트로트 여제와 혈기 왕성한 젊은 뮤지션의 접촉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그로부터 ‘잠깐만’, ‘비 내리는 영동교’, ‘신사동 그 사람’ 등 주현미의 히트곡들이 국카스텐 특유의 몽환적인 연주로 재해석되었고 서로의 레퍼토리를 공유하며 이들은 함께 호흡했다.

처음에는 왠지 주현미의 노래와 국카스텐의 연주가 겉도는 듯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오묘하게 맞아떨어지는 흐름을 만들었다. 트로트에 내재한 비애감과 노랫말로 주로 다루는 사랑하는 사람을 그리는 애틋함이 몽롱하고 음습한 분위기를 표출하는 국카스텐의 사운드와 공통분모를 찾은 셈이다. 장내에 퍼져 있던 이질감은 그렇게 조금씩 상쇄됐다.

[문화내시경]트로트와 인디밴드의 만남

색다름의 추구, 두 장르가 어울릴 수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 공연의 전부는 아니었다. 단순한 악곡의 메커니즘적인 결합을 넘어 10대, 20대의 음악적 코드인 록과 50대 이상의 세대가 주로 즐기는 트로트를 융화함으로써 두 세대의 문화적 간격을 좁히고 정서적인 이해를 높이는 것이 이번 시리즈의 기획 의도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첫 번째보다 더 중요한 두 번째 관람 포인트이기도 하다.

실제로 이날은 중년 관람객이 대다수를 차지했다. 시작할 때만 해도 이들 대부분이 낯선 음악에 당황스러워하는 표정을 지었지만 한 곡, 한 곡 흐르면서 박수도 치며 공감하는 모습으로 변해 갔다. 나이가 많이 차이 나고 지금까지 듣고 선호하던 양식이 다를지라도 이와 같은 공간이 조성되고 기회만 만들어진다면 격차는 얼마든지 줄어들 수 있다는 것을 이번 주현미와 국카스텐의 공연이 힘주어 말했다. 음악의 힘, 왕래의 중요성을 천명한 눈여겨볼 만한 사례다.

이런 프로젝트가 단발성 기획 상품으로 끝나지 않고 지속된다면 젊은이들과 어른 세대가 함께 즐기는 문화가 점차 확장될 수 있을 것이다. 세대 간 소통을 돕고 감성의 눈높이를 맞춰주는 매개가 늘어날 때 우리 대중음악이 고르게 발전할 수 있다. 색다르고 뜻깊은 콘서트의 진수(進水)다. 22일에는 김수희와 헤비메탈 그룹 나티(Naty), 29일에는 심수봉과 레게, 스카 밴드 킹스턴 루디스카(Kingston Rudieska)의 무대가 펼쳐진다.

한동윤<대중음악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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