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캣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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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에서 가장 오래 산 고양이는?
정답은 뮤지컬 <캣츠>다. 1982년 초연돼 장장 19년간 주 8회씩 공연되며 롱런을 기록했다. 보험 같은 뮤지컬이라는 별칭의 <캣츠>가 다시 막을 올렸다. 이번에는 강남의 샤롯데 극장에서 연말까지 무대를 이어간다. 벌써부터 이번에는 얼마의 수익을 기록하게 될지 관심이 모아진다. 전세계적으로 <캣츠>는 3조8000억원이 넘는 매출을 기록한 헤비급 뮤지컬로 정평이 나 있다. <아바타>나 <스타워즈>도 능가하는 기록으로 한때 남미 볼리비아의 연간 예산과 같다고 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첫 공연이 웨스트엔드에 올려진 지 벌써 30여년의 세월이 흘렀건만, 아직도 향기를 잃지 않고 은은하고 품위있게 자태를 유지하고 있는 모습이 신비롭기까지 하다.

뮤지컬 <캣츠> | 설앤컴퍼니 제공

뮤지컬 <캣츠> | 설앤컴퍼니 제공

<캣츠>를 보고 스토리가 뭔지 잘 모르겠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작품을 제대로 간파한 관객이다. 이 뮤지컬에는 사실 뚜렷한 스토리라인이 존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원작이 시집이기 때문이다.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던 T. S. 엘리엇이 자신의 손자들에게 편지로 써주었던 고양이에 대한 재미난 상상력이 담긴 시들을 모아 1939년 발간한 시집이 뮤지컬의 시발점이 됐다. 우리말로는 <지혜로운 고양이가 되기 위한 지침서>라 번안되기도 했지만 원래 의미와는 조금 다르다. 

이 시집의 영어 제목은 「Old Possum’s Book of Practical Cats」로 직역하자면 ‘늙은 주머니쥐의 고양이에 대한 보고서’쯤 된다. 사실 이 제목 안에도 재미난 작가의 말장난이 담겨 있다. ‘늙은 주머니쥐’는 T. S.엘리엇의 별명이기 때문이다. 결국 시집은 늙은 주머니쥐라 불렸던 작가가 바라본 고양이들의 세계라는 중의법적 말장난이 담겨 있는 셈이다. 할아버지가 손자들에게 들려줬던 재미난 이야기가 아기자기한 언어의 유희를 통해 맛깔스레 꾸며지고, 여기에 다시 춤과 노래를 붙여 화려하게 버무려놓은 것이 곧 뮤지컬인 셈이다. 세계적인 흥행의 이유를 미루어 짐작할 만하다.

뮤지컬 <캣츠> | 설앤컴퍼니 제공

뮤지컬 <캣츠> | 설앤컴퍼니 제공

가장 유명한 노래인 ‘추억(Memory)’에 얽힌 일화도 흥미롭다. 원래 엘리엇이 발간한 시집에는 이 노래를 부르는 늙은 고양이 그리자벨라에 대한 내용이 없다. 뚜렷한 줄거리가 없음을 고민하던 영국 작곡자 앤드루 로이드 웨버에게 미망인이었던 발레리 엘리엇 여사는 세상에 발표되지 않았던 몇몇의 시들을 추가로 전달해줬고, 그 중 하나가 바로 늙은 여자 고양이 그리자벨라에 대한 시였다. 번뜩이는 영감에 로이드 웨버는 단숨에 메모리의 선율을 떠올리게 됐고, 하룻밤 만에 노래를 완성했다. 이튿날 연출을 맡았던 천재 감독 트레버 넌이 이 노래를 처음 듣는 순간 곁에 있던 사람들에게 몇 시 몇 분 몇 초인지를 기록해두라고 말했다는 일화도 유명하다. 직감적으로 그는 범상찮은 음악을 만났음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의 예감처럼 정말 이 노래는 가장 성공적인 뮤지컬 노래라는 명성을 누리게 됐다.

우리나라에서는 그리자벨라를 두고 창녀 고양이라 말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명백한 오해다. 창녀였던 고양이가 과거의 추억을 그리워한다는 내용은 도덕적으로나 윤리적으로도 설득력이 약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녀는 그저 늙고 지치고 병든, 그래서 젊은 시절을 그리워하는 고양이쯤으로 해석하는 편이 낫다. 산전수전 다 겪고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그래서 지나온 자신의 삶을 관조적으로 되돌아볼 줄 아는 늙은 고양이인 셈이다.

요즘 <나는 가수다>에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인순이가 홍지민, 박해미와 함께 이 배역으로 무대에 등장해서 세간에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너무 잘 어울리는 캐스팅이라 놓치면 아쉬울 것 같다. 아직 <캣츠>를 보지 못한 독자라면 이 기회에 동참해보길 추천한다. 극장을 나서며 고양이를 한 마리 키워보고 싶어진다면 제대로 만끽했다는 신호라는 점은 미리 기억해두길 바란다. 

원종원<순천향대 교수/뮤지컬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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