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으로 묻는 삶의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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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하는 마음 - 숲의 심연> 편은 성기웅 연출이 꾸준히 소개하고 있는 히라타 오리자의 <과학하는 마음> 시리즈의 새로운 버전이다. <진화하는 오후>와 <북방한계선의 원숭이>, 그리고 <발칸동물원>까지 총 3편으로 이루어진 <과학하는 마음> 시리즈는 2006년부터 차례차례 소극장 무대에 올랐고, 공연마다 꾸준한 인기를 모으며 좋은 평가를 받은 바 있다. 무엇보다 이 시리즈는 연극이란 범주에서 가장 먼 세계 중 하나인 과학, 그리고 그 세계에 속해 있는 과학자들의 생생한 일상을 극장으로 가져옴으로써 연극이 다루는 소재와 범위를 한층 확장시켰다는 점에서 신선한 평가를 받았다.

연극 <과학하는 마음> / 제12언어연극스튜디오 제공

연극 <과학하는 마음> / 제12언어연극스튜디오 제공

이질적인 세계는 언제나 호기심을 자아낸다. <과학하는 마음> 시리즈는 모두 생명공학 연구소를 배경으로 과학자들의 일상을 다루고 있는 작품이다. 

우리와 다른 세계의 사람임을 증명하는 듯한 하얀 가운을 입은 인물들이 등장해 외계 언어 같은 과학 용어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주고받는다. 분명 그간의 연극 무대에 익숙해져온 관객들에게는 낯선 풍경이다. 하지만 작가 히라타 오리자는 아주 교묘하게 그들이 주고받는 과학 이야기의 범주를 제한하고 있다. 얼핏 들으면 어려운 이야기 같지만, 실제로는 우리가 중·고등학교 시절에 배운 과학 상식으로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의 이야기로 이끌어나가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처음에는 낯설게 느껴질지 몰라도 극에 서서히 익숙해지다 보면, 그런 어려운 용어들을 마치 “밥 먹었니?” 같은 일상어처럼 말하는 그들의 일상이 사실 우리의 모습과 그다지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것이 또 관객에게는 신기하고 재미있게 느껴지는 것이다. 이렇듯 무언가 다른 사람, 다른 세계의 삶을 엿보고 싶은 관객의 욕망을 아주 차분하게 자극하는 데서부터 <과학하는 마음>의 매력이 시작된다.

또한 <과학하는 마음>이 다루고 있는 담론들 역시 따지고 보면 과학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철학과 인문학에 가까운 문제들이다. 이미 공연된 3개의 작품에서도 “뇌사한 A의 몸에 의식만 있는 식물인간 B의 뇌를 이식하면 그 사람은 A인가 B인가?” “유인원에서 진화한 인간이 유인원을 실험에 사용해도 된다면, 인간복제와 무엇이 다른가?”와 같이 삶과 윤리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을 던짐으로써 관객들의 보편적인 공감과 고민을 이끌어낸 바 있다. 이번 작품 <숲의 심연> 역시 유인원과 인간의 ‘임신’을 소재로 생명의 잉태와 그에 관련된 윤리 등을 화두로 꺼내고 있다.

연극 <과학하는 마음> / 제12언어연극스튜디오 제공

연극 <과학하는 마음> / 제12언어연극스튜디오 제공

새로 무대에 오른 신작 <숲의 심연>은 아프리카 오지의 생명공학 연구소를 배경으로 유인원 연구를 둘러싼 토론을 본격적으로 다루고 있는 작품이다. 주인공과 조역이 나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등장인물 모두가 비슷한 비중으로 출연하고, 일상 그대로를 옮겨놓은 듯 조용하고 담담한 대화로 극을 이끌어나가며, 여러 개의 대화가 동시다발적으로 이루어지고, 시작과 끝이 암전 없이 이루어지는 등 이 작품 역시 <과학하는 마음> 시리즈의 특징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일본의 연구소 풍경을 그대로 옮겨왔던 전작들과 달리 등장인물이며 상황을 한국에 맞게 번안, 각색하여 관객의 친근감과 공감대를 더욱 강조하고 있다.

이전의 <과학하는 마음> 시리즈처럼 이번 작품에도 참으로 다양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등장한다. 생물학자, 생화학자, 언어학 박사, 심리학 연구자, 유전자 연구원, 유인원 사육자 등등… 각기 전공이 다르고 그에 따른 관심 분야와 가치관이 다른 만큼, 연구소의 프로젝트에 대한 그들의 시각이나 태도 역시 제각기 다르다. 하지만 연구를 통해 무언가 우리 삶에 의미 있는 결과를 찾아내고자 한다는 점에서는 그들 모두 같은 목표를 지니고 있다. 이는 연극도 마찬가지다. 일상을 다루든 역사를 다루든 과학을 다루든 간에 결국 연극이 우리에게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그 이야기 자체를 넘어선, 이러한 프리즘을 통해 바라본 우리 삶에 대한 성찰일 것이다. 10월 16일까지, 대학로 정보소극장.

김주연<연극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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