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적인 무대 ‘내 마음의 풍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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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 위 뮤지컬 세상은 소재도 다양하다. 당장 올 여름만 봐도 그렇다. 연쇄살인범에서 트랜스젠더, 환생한 서자, 꽃미남 도박사, 이중인격의 정신착란자, 그리고 고등학교 ‘짱’에 이르기까지 각양각색에 천태만상이다. 무대가 주는 환상은 일상으로부터의 일탈인 경우가 많고, 특히 요즘처럼 오빠부대나 삼촌팬이 주를 이루는 우리나라 대중문화계에서는 ‘간지 돋는’ 캐릭터만큼 쉽게 관심을 끌 수 있는 존재감도 흔치 않기 때문이다.

뮤지컬 <내 마음의 풍금> | 크레디아아트프로젝트 제공

뮤지컬 <내 마음의 풍금> | 크레디아아트프로젝트 제공

하지만 얼마 전 앙코르 무대가 시작된 뮤지컬 ‘내 마음의 풍금’은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확실히 별종인 뮤지컬이다. 물론 1999년 전도연과 이병헌이 주인공으로 등장해 화제를 모았던 바로 그 영화의 무대 버전으로, 하근찬의 소설 ‘여제자’를 각색한 것이다. 때 묻지 않은 시골 소녀의 순수함과 첫사랑의 설렘이 전원생활의 에피소드와 어우러져 잔잔한 감동을 준다.

당연히 온갖 ‘자극’들이 난무하는 요즘 우리 뮤지컬계의 다른 작품들과 비교해보면, 물러도 한참 무른 소재가 아닐 수 없다. 게다가 국내에서는 돈벌이가 쉽지 않다는 장르인 가족 뮤지컬 작품이다. 전세계에서 유일하게 디즈니의 뮤지컬 ‘라이언 킹’이 흥행에 실패한 시장이 한국이다. 상대적으로 비싼 입장권 가격 탓에 ‘진짜’ 가족들이 공연장을 찾기가 만만치 않아서다. 이렇게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몇 년씩 꾸준히 무대를 꾸미고 있는 제작사의 굳은 심지와 도전정신은 꽤나 믿음직스럽다.

사실 ‘대박’이라 불리는 공연가의 흥행은 흔히 발상의 전환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올해 부쩍 늘어난 가족 관객들을 보며 롱런할 수 있는 창작 뮤지컬의 미래를 미리 엿보는 것 같아 기쁜 마음마저 들었다.

해마다 앙코르 무대를 시도하다보니 작품도 진화한다. 주인공인 최홍연 역의 여배우들은 그 중에서도 특히 발군이다. 높은 경쟁률을 뚫고 지난 앙코르 공연부터 주인공으로 등장했던 정운선은 새롭게 가세한 상큼한 이미지의 최주리와 함께 안정적인 연기와 노래로 관객들을 매료시킨다. 올해에는 극중 홍연의 나이인 16살의 신예 이수빈도 함께 발탁됐는데, 진짜 여중생이 또래의 짝사랑을 보여줘 호평이 많다. 다만 무대에 나서는 횟수가 얼마 안 돼 일부러 일정에 맞춰 공연장을 찾아야 만날 수 있다.

뮤지컬 <내 마음의 풍금> | 크레디아아트프로젝트 제공

뮤지컬 <내 마음의 풍금> | 크레디아아트프로젝트 제공

초연무대에서 강동수 선생으로 나왔던 스타 배우 오만석이 이번에도 연출을 맡았다. 본인이 애착을 가졌던 무대였던 때문인지 등장인물의 정서나 이야기의 흐름을 매끄럽게 이어가는 섬세함이 돋보인다. 마을 사람들이 학교 운동장에서 영화를 보는 가운데 홍연의 환상이 전개되는 장면이나 총각 선생과 시골 소녀가 함께 첫사랑의 아픔을 경험하게 되는 엔딩은 여기저기서 흐느낌이 느껴질 정도로 예쁘고 아름답다.

자유롭게 놀 줄 아는 조연들도 약방의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정철호가 연기하는 정복이는 등장할 때마다 관객들이 폭소를 터트리고, 김재만이나 이건영이 연기하는 동료교사 박봉대도 유쾌하기 그지없다. 천진난만한 아역배우들도 감칠맛 난다. 중간 휴식 없이 물 흐르듯 이어지는 극 전개의 재미와 응집력은 가히 수준급이다. 창작이지만 웬만한 라이선스 뮤지컬보다 이야기의 밀도나 완성도가 월등하다.

하지만 역시 이 작품의 가장 큰 미덕은 극장을 나서며 따뜻해지는 추억을 함께 공유할 수 있다는 점이다. 자극과 비현실이 난무하는 공연가에 순수함을 추구하는 무대의 서정성이 얼마나 그리운 존재였는가를 알려준다. 칼과 총을 휘두르는 컴퓨터 게임에 중독되고, 온갖 자극과 외설이 난무하는 사이버 공간에서 살아가는 우리 아이들에겐 꼭 한번 나눠주고 싶은 체험이다. 공연장은 넓고 시원하니 가족 피서로도 좋다. 방학이 끝나기 전에 아이들과 함께 나들이 계획을 세워보길 바란다.

원종원<순천향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뮤지컬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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