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에 올려진 인도로의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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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야말로 인도다! 꿈과 낭만의 땅, 엄청난 부와 엄청난 빈곤의 땅, 으리으리함과 누더기의 땅, 궁궐과 오두막의 땅, 기근과 페스트의 땅… 호랑이와 코끼리, 코브라와 정글의 땅, 100개의 나라와 100개 언어의 나라, 1000가지의 종교와 200만 신들의 나라, 인류의 요람, 인류 언어의 탄생지, 역사의 어머니, 전설의 할머니, 전통의 증조할머니, 나머지 나라들의 썩어 문드러져가는 태곳적이 그들에게는 겨우 어제인 나라.”

연극 <인디아 블로그> | 연우무대 제공

연극 <인디아 블로그> | 연우무대 제공

마크 트웨인은 자신의 여행기 <적도를 따라가며>에서 인도에 대해 이렇게 썼다. 무슨 설명이 이렇게 장황한가 싶기도 하지만, 확실히 인도란 나라를 단 몇 마디로 정의 내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어쩌면 그렇기에 이 나라는 그토록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매혹시키는 건지도 모르겠다. 더위와 먼지, 더러움과 불편함을 감수하면서도 사람들은 끊임없이 인도를 향해 떠나고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인도 여행을 다녀온 이들 사이에는 다른 곳을 여행한 사람들과는 확실히 다른, 어떤 정신적 유대감이 생기는 듯하다. 젊은 연극인들의 공동 창작집단인 플레이위드가 쓰고, 박선희가 연출한 <인디아 블로그>는 바로 그 ‘인도 여행’을 테마로 만든 본격 로드 시어터다. 34일간 배우와 연출이 직접 인도를 여행하면서 느낀 감정과 기억들을 아기자기한 에피소드로 엮어 만들었다.

몇 년 전 인도에서 만났던 여자친구의 부음 소식을 듣고 그녀의 기억을 찾아 다시 인도로 향하는 한 남자와 인도 여행을 떠난 여자친구를 찾기 위해 무작정 인도행 비행기를 탄 또 다른 남자. 인도와 참 안 어울릴 것 같은 두 청년이 우연히 만나 좌충우돌 인도 여행을 시작한다. 비행기에서 시작된 이들의 인도 여행은 인도의 지중해라 불리는 디우와 흙성이 있는 자이살메르, 사막의 도시 쿠리를 거쳐 ‘영혼을 지닌 모든 이의 정신적 고향’이라는 바라나시에서 끝맺는다. 그 여정 속에서 한 사람은 공간에 새겨진 기억을 통해 자신의 사랑을 확인하고, 또 한 사람은 기대하지 않았던 사랑을 만나면서 삶의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한다.

그다지 특별할 것 없는 단순한 이야기지만, 배우와 연출이 인도에 직접 가서 겪은 경험을 바탕으로 만든 덕에 매 장면 생생한 감각과 솔직함이 살아있는 것이 이 작품의 가장 큰 미덕이다. 중간 중간 그들이 마주치는 상황이며 도시와 거리, 인물들에 대한 묘사는 상당히 구체적이고 리얼해서 웬만한 인도 여행 책을 읽는 것보다 나을 정도다. 두 배우(박동욱, 전석호 분) 역시 실제로 자신들의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닌가 싶을 만큼 인물에 몰입된 연기를 보여주고, 인도에서 직접 찍어온 이들 배우의 영상이 잠깐씩 스쳐 지나가면서 이야기에 실재감을 더한다.

연극 <인디아 블로그> | 연우무대 제공

연극 <인디아 블로그> | 연우무대 제공

<인디아 블로그>가 지닌 또 하나의 매력은 ‘낯선 곳으로의 여행’이란 매혹적이면서 어려운 테마를 무대 위에 구현하기 위해 배우와 연출이 고안해낸 반짝이는 아이디어에 있다. 90분간의 공연 동안 관객들은 마치 실제로 인도에 와 있는 듯한 착각에 사로잡힌다. 극장에 들어가는 순간 코끝을 간질이는 아로마 향과 무대 한 구석을 가득 채운 화려한 인도의 장식품들, 공연 전 관객에게 제공하는 짜이(인도의 전통 밀크티)와 배우에게서 관객의 손으로 이어지는 디아(갠지스 강에 띄우는 촛불)까지, 인도의 감각을 오감으로 전하고자 하는 노력이 곳곳에서 엿보인다.

사방이 꽉 막힌 지하 소극장에서 지구 저 편의 낯선 풍경과 새로운 문화를 만나고 느낄 수 있는 것, 이것이 바로 연극적 상상력의 힘이다. 소박하지만 이러한 연극의 힘을 충분히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인디아 블로그>는 참 반가운 작품이다. 올 여름, 어디론가 떠나고 싶지만 여러 가지 상황이 맞지 않아 망설이고 있다면 연우소극장을 한번 찾아보길 권한다. 비행기로 16시간 이상 날아가야 비로소 만날 수 있는 인도를 이렇게 가까이서 느낄 수 있다는 사실에 깜짝 놀랄 것이다. 8월 28일까지 대학로 연우소극장.

김주연<연극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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