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레스님 중광 예술세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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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레스님’ 중광(1935~2002·속명 고창률)은 기행과 파격의 예술가였다. 제주도에서 태어난 스님은 1960년 26세 때 경남 양산의 통도사로 출가했지만 불교의 계율에 얽매이지 않는 기행 때문에 79년 승적을 박탈당했다. 그러나 스님은 거침없었다. 성기가 확대노출된 동물그림을 발표했고, 나체상태의 허리에 대걸레를 끈으로 묶고 먹물을 찍어 화선지에 선화를 그리는 퍼포먼스를 공개했다. 미국 버클리대 강연에서는 여학생과 키스를 하기도 했다. 

가마 앞에 누운 걸레 스님

가마 앞에 누운 걸레 스님

77년 영국 왕립 아시아학회 초대전에서 자작시 ‘나는 걸레’ 낭송 후 ‘걸레스님’으로 불리며 갖가지 기행과 스캔들을 이어갔지만 외국에선 천진한 예술세계로 높게 평가받았다. 선화(禪畵)의 영역에서 파격적인 필치로 독보적인 세계를 구축하며 세계적인 명성을 쌓았다. 미국 뉴욕의 록펠러재단과 샌프란시스코 동양박물관, 대영박물관 등이 스님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는 사실만으로도 스님의 미술사적 위치를 가늠할 수 있다.

중광(重光) 타계 10년을 추모하는 특별전 ‘만행 卍行-중광’이 8월 21일까지 서울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에서 열린다.

전시에선 선(禪)을 키워드로 성(聖)과 속(俗), 무법(無法)과 유법(有法), 동과 서를 넘나든 스님의 삶, 예술, 종교가 작품을 통해 망라된다. 크게 주제·장르·인물 등 3개의 영역으로 구성되는데, ‘만물이 부처다’ ‘만법귀일(萬法歸一)-모든 법은 하나로 통한다’ ‘나는 누구인가’를 화두로 선화, 유화, 도자 테라코타 등 150여점의 작품이 나온다. 거침없는 삶 속에서 음주와 줄담배로 쇠약해진 스님이 98년 강원도 백담사에서 선수행을 하며 그린 달마와 학 그림도 만날 수 있다. 이외에 시작(詩作) 원고, 행위예술 영상, 영화 ‘허튼 소리’ ‘청송가는길’ 등 50여 점의 자료도 선보인다. 2000년 곤지암에 지은 ‘벙어리 절간’의 풍경도 담겨 있다.

(왼쪽)작품 <동자>, 작품 <달마>

(왼쪽)작품 <동자>, 작품 <달마>

7월 23일에는 예술의전당 아카데미홀에서 ‘한국현대미술에서 차지하는 중광 예술의 성격과 위치’를 주제로 세미나가 있었다. 어린이박물관 체험교실 ‘가갸거겨’는 매주 목~토요일 오전 11시에 전시관람, 접시에 그림그리기, 중광 오브제 모빌 만들기로 진행된다.

“미친 사람이지만 내 가슴 속에 지니고 다니는 좌우명이 하나 있습니다. 우리 민족에게 항시 발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무슨 말을 할 것 같습니까? 알아보십시오. 잠깐……천당과 극락 자리가 많이 있으니 차를 급히 달리지 마십시오….”(중광의 ‘허튼소리’)

중광은 2000년 10월 서울 가나아트센터에서 마지막 전시인 ‘중광 달마전: 괜히 왔다 간다’를 열고 2002년 3월 13일 양산 통도사의 다비식에서 자연으로 돌아갈 때까지 전방위예술가로 눈치 보지 않고 살았다. 1986년 김수용 감독이 스님의 일생을 다룬 영화 ‘허튼 소리’를 만들었을 때, 영화가 저속하다는 이유로 10개의 장면이 잘려나갔다. 중광의 삶이 뭉턱뭉턱 지워진 셈이다. 90년 이두용 감독의 ‘청송으로 가는 길’에선 걸레스님이 주인공으로 출연했는데, 함께 출연한 문성근 조형기를 제치고 대종상 남우주연상 후보로 오르기도 했다. 성인 5000원, 학생 3000원. (02)580-1300 

<유인화 경향신문 문화부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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